호국보훈의 달, 6월 우리가 몰랐던 충무공을 만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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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현충사
충남 아산시 현충사를 학창시절 수학여행지로만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 탄신 480주년인 올해, 그것도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현충사를 찾을 이유는 너무나 많다. 아산시는 이순신 장군이 스무 살 무렵 상주 방씨와 혼인하며 이주한 곳이다. 여진족 토벌에 나서 승리를 거두고도 명 받은 ‘백의종군’을 끝낸 후 그는 이곳에서 마음을 추슬렀다. 많은 시간을 보낸 만큼 현충사 일대에는 그가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한 활터, 살림을 꾸린 고택 등 인간 이순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마침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마다 선정하는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현충사가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5월 말 방화산 자락 아래 푸름이 가득한 현충사를 찾았다. KTX 천안아산역에서 택시로는 15분가량 걸린다. 입장료는 무료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 뻐꾸기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평일 오전 시간이라 단체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을 제외하면 방문객이 많지는 않다.
장대한 높이를 자랑하는 소나무들을 감상하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경주 천마총처럼 푸른 잔디가 식재된 둔덕 모양의 지붕을 인 형태다. 기념관은 전시관과 교육관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전시관은 충무공이 각종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활약상은 물론 골목대장 시절, 백의종군 당시의 이야기, 난중일기를 통해 들여다본 인간적인 면모 등 충무공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터치스크린, 미디어아트 등 오감을 이용해 충무공을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어린이들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생생한 미디어아트로 마치 배에 탄 듯
전시관에는 난중일기, 천자총통, 장검, 선무공신교서, 거북선과 판옥선 모형 등이 있다. 이 중 국보인 장검 두 자루는 이순신이 전장에서 실제 사용한 칼은 아니고 항상 곁에 두고 마음을 가다듬는 용도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길이가 각 2m에 달할 정도로 커 위용을 자랑한다. 보물인 선무공신교서는 1604년 10월 이순신을 선무 1등 공신에 올리면서 선조가 내린 교서다. 선조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게 하고 벌을 준 게 잘못이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순신의 가장 큰 업적인 임진왜란 전투를 다룬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사방으로 수많은 배가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미디어아트가 펼쳐져 비장함을 더한다. 전시관 한쪽에선 폭포 영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폭포 아래쪽에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 노량대첩 등의 글자가 떠다니는데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해당 전투 화면이 펼쳐진다.
전시실에서 실감영상실로 가는 길목에선 가로 7m, 세로 3.33m 크기의 ‘한산전양해전도(閑山前洋海戰圖)’를 만날 수 있다. 이 그림은 1592년 7월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격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압도적인 규모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기념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이다.
전시관 뒤편으로는 어린이 활쏘기 체험장이 있다. 나무판으로 만든 과녁 3개를 화살로 맞히는 놀이형 체험 시설이다. 활쏘기 체험은 주말 및 공휴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된다. 7~8월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활쏘기 체험장에는 지붕이 따로 없기 때문에 뜨거운 햇볕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기념관을 나와 본전(本殿)으로 가기 위해선 충무문을 거쳐야 한다. 충무문에 들어서니 넓고 곧은길이 죽 뻗어 있다. 길 끝에 소나무과인 아름드리 ‘반송’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잘 정돈된 잔디와 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방문객을 호위한다.
구 현충사부터 현재의 현충사까지
반송으로 향하는 길 왼편에는 구 현충사가 있다.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으로 현재의 현충사가 세워지기 전 현충사다. 원래 현충사는 1706년 아산 유생들의 건의로 충무교육원 부근에 세워졌다. 숙종이 이듬해 현충사 현판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고 그 자리에는 유허비(遺墟碑, 선인들의 자취가 남은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가 세워졌다. 1931년에는 종가의 형편이 어려워져 이순신 묘소와 제사 비용 마련을 위한 토지인 위토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이때 민족적 모금 운동이 일어나 그 빚을 갚고 이듬해인 1932년에 세워진 곳이 구 현충사다.
현충사는 반송에서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세워진 홍살문과 충의문을 차례로 거쳐야 볼 수 있다. 방화산 정상을 등에 업은 현충사의 앞마당은 널찍하면서도 잘 정돈돼 있다. 향로에 피운 향냄새와 정면으로 보이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이곳이 사당임을 실감케 한다. 향로 뒤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 또는 재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사당 안쪽 벽면으로는 이순신 장군 일대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영정을 등에 지고 아래쪽을 바라보니 탁 트인 풍경이 장관이다. 층층이 쌓인 계단 끝에 오른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멀찍이 보이는 배방산·설화산 자락과 시내 풍경이 정겹다.
사당에서 조금 내려오면 이순신 장군이 지낸 고택을 만날 수 있다. 서울 태생인 이순신 장군은 혼인 후 외가와 처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주했다. 고택은 1960년대까지 후손들이 대대로 살며 400여 년간 고치고 늘렸다.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방이 대여섯 개 있는 구조다. 집 뒤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집안 내 사당이 있다. 매년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날인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낸다.
이순신 장군이 마신 물 맛은?
집 바로 옆에는 충무정이라는 우물과 활터가 있다. 충무정은 이순신 장군과 그의 가족, 후손들이 실제 사용한 곳이다. 현재도 물을 마실 수 있는 바가지가 있다. 활터는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한 자리다. 이곳의 은행나무들은 수령이 약 570년으로 각각 높이가 22m, 20m에 이른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활터 옆으로는 중학생 이상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활쏘기 체험장이 있다. 체험장은 4~10월 사이 매주 목요일에서 일요일 및 공휴일에 이용이 가능하다. 운영 시간은 어린이 활쏘기 체험장과 같다. 날이 매우 더운 7~8월 및 우천·폭염·강풍 시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체험장 한쪽에는 활과 화살, 시위를 잡는 법과 함께 활쏘기 자세를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다만 과녁과의 거리가 3~4m 정도에 불과한 어린이 활쏘기 체험장과 달리 가장 가까운 과녁도 20~30m 밖에 있어 맞히기 쉽지 않다. 가장 먼 과녁은 145m 떨어진 곳에 있다. 이순신 장군은 200m 거리에 과녁을 두고 연습했다고 한다.
활터 뒤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장인·장모 묘와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 공의 묘소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묘는 현충사에서 9㎞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에 있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11월 19일 남해 관음포에서 전사했다. 유해는 마지막 통제영인 전남 완도군 고금도에 모셔졌다가 아산시 금성산을 거쳐 이곳으로 이장됐다. 묘는 부인 상주 방씨와 합장묘다.
현충사는 본전이 있는 꼭대기까지 휠체어, 유모차를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길이다. 길이 널찍해 여럿이 걷기에도 좋다. 다만 경내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길은 그늘이 없다. 더울 때 방문한다면 모자, 양산 등을 챙길 것을 추천한다. 매점 또한 없으므로 물은 싸오는 것이 좋다.
현충사는 하절기인 3~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오전 9시~오후 5시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고유선 기자
아산에 왔다면 놓칠 수 없는 재미들
곡교천 따라 은행나무길 산책
현충사를 찾았다면 그 앞을 흐르는 곡교천을 따라 조성된 은행나무길을 산책할 것을 추천한다. 현충사 성역화 사업에 맞춰 조성된 이 길은 1973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으며 조성됐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물결이 황금터널을 이뤄 장관을 연출한다. 길 주변으로 샛노란 유채꽃을 비롯해 수국, 코스모스 등으로 봄, 여름, 가을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내 찾는 이가 많다.
타임머신 타고 외암민속마을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외암민속마을도 아산의 빠뜨릴 수 없는 관광명소다. 500여 년 전 형성된 이 마을은 현재까지 옛 가옥을 보존해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마을 내 가옥은 반가의 고택부터 초가집까지 다양하다.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물길 따라 걷다 보면 소란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을에선 감자 및 고구마 수확, 강정 만들기, 고추장 빚기 등의 체험도 제공하니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도 좋다.
외암민속마을은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장승제를 지내고 10월에는 짚풀문화제, 11월에는 동지 행사를 개최한다. 마을 앞 조선시대 장터인 저잣거리에선 먹거리 및 다채로운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장터에 빠질 수 없는 국밥을 비롯해 파전, 김치전 등 각종 전과 국수, 묵무침, 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민박도 운영해 마을에서 하룻밤 묵으며 옛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도 있다. 민박 예약은 외암민속마을 누리집(oeam.co.kr)에서 할 수 있다. 외암민속마을은 매일 오전 9시 문을 열어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하절기에는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일부 시설이 휴관한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1000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아산시에서 평택시로 넘어가는 바닷가 인근에는 천주교 순교성지 공세리성당이 있다. 지어진 지 135년 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아름다운 외관과 분위기로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이곳을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성당 정원에는 수령이 350년 이상인 보호수가 네 그루 있다.
공세리성당은 상처와 종기에 특효인 ‘고약’을 처음 만들어 보급한 곳이기도 하다. 1895년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가 프랑스에서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해 고약을 만든 뒤 피부질환으로 고생한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그 비법을 당시 신부를 도운 이명래가 전수받았고 여기에 민간요법을 더해 만든 것이 현재의 ‘이명래 고약’이다.
여행 피로 씻어줄 온양온천
관광을 마쳤다면 피로를 풀 차례. 온양온천역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온천이 즐비하다. 온양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백제·통일신라시대를 거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세종대왕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행차한 후 여러 임금이 이곳에 휴양과 치료를 위해 행궁(行宮)을 짓고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수온은 58℃ 내외이며 약알칼리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수질이 좋아 예로부터 휴양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60~1970년대에는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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