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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에서 한류까지 '문화 역수입과 자국 정체성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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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역수입은 그 순환의 한 국면이며, 문화의 미래는 그 회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화 정책 역시 이 점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 안의 것'이 세계로 나갔다가, '세계의 것'이 되어 돌아왔을 때-그것을 다시 재발견할 수 있는 비전과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문화는 자국에서 시작되지만, 때로는 타국에서 빛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진가를 발휘한다. 

이른바 '문화 역수입(Cultural Reimport)' 현상이다. 

본국에서 외면받던 것이 타국에서 찬사를 받으며 재발견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아르헨티나 탱고, 일본의 우키요에가 대표적이다. 때때로 한류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단순한 인기의 역전이 아니라, 문화 정체성의 회복이자 문화 정책의 방향성을 되묻는 계기다.

가령 탱고는 아르헨티나 부두 노동자들의 삶에서 비롯된 춤이다.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 일대의 이민자·노동자 집단에서 다양한 유럽과 아프리카의 민속춤이 섞이며 탄생한 이 춤은, 초기에는 하층민의 저속한 오락으로 간주되었다. 

남녀 성비의 불균형 탓에 남성끼리 추는 문화로부터 시작되었고, 뒷골목의 음악으로 분류되며 사회적으로 천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감정, 억눌린 열망, 그리고 몸의 언어로 표출되는 저항이 담겨 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상류층이 탱고의 관능적 리듬과 감정의 밀도를 발견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부두와 거리의 춤이 살롱과 무도회의 무대로 진입하고, 포르테뇨들의 리듬은 유럽적 감수성과 접속하며 예술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후 자국에서 재평가된 탱고는 문화 역수입의 대표 사례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탱고는 국가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벽화에 그려진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필자 제공)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벽화에 그려진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필자 제공)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재발견을 계기로, 자국 내에서의 미술사적 위상이 뒤늦게 복권되었다. 실제로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우키요에가 '예술'로 주목받기 전까지, 일본 내에서는 대중적인 인쇄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9세기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일본 도자기를 포장하기 위한 쿠션용 종이 부자재로 우키요에가 사용되었는데, 우연히 이를 본 프랑스 예술가들이 그 파격적인 구도와 과감한 색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포장지 혹은 충격 방지용으로 쓰였던 '종이 뭉치'에서 예술을 발견해 낸 것이다. 이는 일본의 시각문화가 세계 예술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하나의 사건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구에서 우키요에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받은 이후, 일본 내에서도 이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전시 활동이 활발해졌다.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전문 박물관이 설립되며 체계적인 보존·전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민적이고 통속적인 것으로 취급받았던 이 목판화가, 유럽 근대미술의 혁신에 영감을 주며 다시 일본 내부에서 조명받게 된 과정은, 문화 역수입의 전형적 사례다. 

고흐, 모네, 드가 등이 남긴 수많은 작품 속에 우키요에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일본은 이를 통해 자국 문화의 미학적 가치를 되찾고, 세계 예술사 속에 '자포니즘(Japonisme)'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각인시켰다.

한류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최근 중남미, 동남아, 중동 등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제주도 방언 제목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다. 이 작품은 K-POP이나 액션 중심의 글로벌 콘텐츠 흐름과는 다르게, 한국 고유의 정서와 가족주의, 이른바 'K-신파'적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부연하자면 '감성 중심의 한국형 정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 먼저 이 정서에 감동한 시청자들이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감정의 DNA'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단지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니라, 정서적 공명력(共鳴力)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눈물과 헌신, 어머니와 고향, 세대 간의 단절과 화해 같은 서사가 K-가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었고, 강인한 여성의 서사로도 주목받았다. 

이러한 '정서의 수출'은 결국 한국 내부에서의 정체성 회복으로 이어졌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반향이 컸는데 어느 대목에서인가 스토리와 플롯이 주는 공명의 힘이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다는 분석도 있다. 

K-팝과 드라마의 전개 과정을 보면 대체로 해외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후 국내 언론과 정책 차원에서 '국가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류가 단지 '전파'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자국 내에서 의미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소비되었을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그것을 '한류'라는 이름으로 인식하고 자부심을 부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일종의 문화적 자기 확인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인정욕구, 즉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통해 내부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가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한국인만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세계 대부분의 사회가 일정 정도 공유하는 문화 심리학적 보편성이기도 하다. 

자국 문화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외부의 찬사를 통해 그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경향은 글로벌 시대의 문화 흐름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문화 역수입은 그 욕구가 긍정적으로 승화되는 사례이자, 동시에 우리 문화 인식의 구조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다. 

한동안 유행했던 '두유 노우 000?' 시리즈는 그 단적인 에피소드다. 

문화 역수입은 '해외 반응에 기대는 전략'이 아니라, 내부 자산을 외부의 거울로 비추어 재해석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다. 

그 밑바탕에는 때로 자국 문화에 대한 집단적 콤플렉스나 자신감 부족이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찬사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치를 깨닫는 현상은 영욕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형성된 자학 사관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그래서 역수입은 단지 수출의 귀환이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이자 인식의 반전이 된다. 자문화에 대한 관점을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이는 자존감의 문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역수입은 외부로부터 '되돌아온 타자'이지만, 그를 환대하는 방식은 '나'를 새롭게 구성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외부의 시선을 품위 있게 내부화할 수 있는 문화적 자존감. 

둘째,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한 정책과 생태계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외부에서 인정받은 가치를 국내 시스템 속에서 구조화하지 못하면, 그것은 일시적 복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문화 역수입이 '문화 자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과 담론적 축적이 병행되어야 한다.

문화는 외연의 확장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순환과 회귀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체성의 재구성이 중요하다. 

문화 역수입은 그 순환의 한 국면이며, 문화의 미래는 그 회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화 정책 역시 이 점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 안의 것'이 세계로 나갔다가, '세계의 것'이 되어 돌아왔을 때-그것을 다시 재발견할 수 있는 비전과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정길화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전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

MBC 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의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다.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MBC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K-콘텐츠와 한류정책을 연구하면서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 yons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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