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1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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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중에는 전설에만 등장하는 ‘불사조(不死鳥)’가 있다. 문자대로 그대로 번역한다면 ‘죽지 않는 새’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새다. 이집트의 신화에 의하면 불사조는 500년을 산 후에, 불속에 뛰어 들어가 죽은 다음에, 그 재 속에서 다시 탄생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새는 고대인들에게는 영원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 새를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Φοίνιξ(포이닉스), 고대 로마사람들은 Phoenix(포이닉스, 푀닉스)라고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페니체(fenice)라고 한다.
이탈리아에는 바로 불사조의 이름을 딴 라 페니체(La Fenice)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페라극장이 베네치아에 있다.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오페라극장은 외관은 수수하지만 주옥같이 화려한 내부와 뛰어난 음향을 자랑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뛰어난 예술품이며, 예로부터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이 흠모하는 무대다.
이 오페라 극장은 1792년에 개관 한 이래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도니젯티, 로시니, 벨리니, 베르디의 작품들이 초연되었다.
그 중 베르디(G. Verdi 1853-1901)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3월6일에 초연되었으니 2023년은 170주년 되는 해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오늘날 라 페니체 극장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공연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홀로 사랑을 고이 지키다 사라져간 한 여인의 애절한 삶을 그리고 있는데 배경은 19세기 중엽의 파리다. 한편 이탈리아어 ‘라 트라비아타’에서 라(La)는 여성형 정관사, 트라비아타(Traviata)는 ‘길을 벗어난 여인’이라 뜻이다. 이 오페라는 사회의 비정함과 사회로부터 유린당하는 한 가련한 여인의 사랑과 애절한 삶과 죽음을 그리고 있다.
이 오페라의 원전은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가 1848년에 출간한 자전적 소설 《동백꽃의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백꽃의 여인’은 실존 인물 알폰신 플레시(1824-1847)다.
그녀는 노르망디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5세 때 파리로 무작정 상경하여 세탁소, 모자가게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그후 부유한 상인의 애첩이 된 다음부터는 화려한 생활에 젖게 되었고 더 나아가 파리 사교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는데, 사교장에 갈 때는 항상 동백꽃을 가슴에 꽂았다. 어느 날 뒤마 피스는 그녀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으며 두 연인의 관계는 1844년 9월부터 약 1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후 그녀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귀족과 두 번의 결혼까지도 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귀족스럽게 보이도록 ‘마리 뒤플레시’(Marie Duplessis)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는 1847년 2월 7일 불과 2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절명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나중에 접한 뒤마 피스는 비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그녀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동백꽃의 여인》이다. 5년 후 그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하여 1852년 2월 파리에서 초연했는데 당시 파리에 체류하던 베르디는 이 연극을 보고 크게 감동받아 이를 즉시 오페라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에 돌아와 대본작가 피아베가 각색한 대본에 따라 오페라 작곡을 완료했고 《라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으로 1853년 3월 6일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베르디와 피아베는 시대적 배경을 원작에 따라 동시대, 즉 19세기 중반으로 설정했지만 당국에서 이것을 18세기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당시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열과 간섭이 심했던 것이다.
게다가 극장 매니저가 캐스팅한 주인공 비올렛타를 맡은 소프라노는 뛰어난 가수였지만 폐병으로 죽어가는 20대 초반의 연약한 주인공의 모습과는 달리 체격이 당당한데다가 나이도 30대 후반이었다.
초연은 대실패로 끝났고 언론과 평론가들은 악평을 쏟아냈다. 이에 베르디는 “이 오페라가 다시 무대에 올려 지면, 후에 나의 대표작이 될 테니 두고 봐라!”라고 응수했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일부 수정하고 또 새로운 소프라노를 캐스팅하여 다음해 5월 6일에 라 페니체 극장이 아닌 베네치아의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다시 공연했다.
이번에는 대성공, 이를테면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 오페라는 곧 마드리드, 비엔나, 런던, 뉴욕에서 공연되는 등 세계적인 명작 오페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베르디와 대본작가 피아베가 원했던 시대적 배경에 맞게 이 오페라를 공연하게 된 것은 초연 후 약 30년이란 세월이 흐른 다음인 1880년대였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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