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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정원 따라 쉼과 여유가 한강에서 만나는 작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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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뚝섬한강공원 ‘회복의 시간’
도심 속 정원은 인간과 자연이 맺은 작고도 강력한 평화조약이자 마지노선이다. 인간에겐 과밀한 도시에서 더 이상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자연의 입장에선 인간에 내어주는 작은 평화다. 최근 한국 도시들에 새롭게 등장한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정원 만들기다. ‘개발’, ‘성장’이라는 단어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던 한국 사회가 숨 고르기 하면서 ‘회복’, ‘치유’, ‘힐링’ 같은 가치들에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월의 어느 봄날 작지만 의미 있는 정원 한 곳을 보러 서울 뚝섬한강공원을 찾았다. 공원에 들어서니 탁 트인 한강 너머로 서울의 오래된 랜드마크 잠실종합운동장과 새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가 나란히 보였다. 잔디밭은 신록으로 눈부셨지만 사이사이 인공 구조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강변북로를 달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이곳에서 조용한 쉼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싶던 그때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지면보다 조금 낮은 곳으로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화단이 겹겹이 쌓여 있다. 위에서 보면 아메바처럼 비정형의 곡선이 이어진다. 꼬마들이 신기한 듯 정원 사이 굽은 길을 따라 요리조리 뛰어다닌다. 그 옆으로 중학생쯤 돼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이어폰을 낀 채 ‘하늘멍’을 하며 쉬고 있다.
처음엔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고요함이 있는 ‘동중정(動中靜)의 공간’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보니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공간’이기도 하다. 정원 한 켠에 있는 팻말에 적힌 이곳의 이름은 ‘회복의 시간’. 영어명은 ‘Immersive Resilience’였다. 번역하자면 ‘몰입을 통한 회복력’쯤 되겠다.



‘일상의 과속 방지턱’
“사람들이 자연에 입체적으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 온전히 몰입해 정서적으로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아내인 정원 디자이너 이진 씨와 함께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이창엽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가 정원 이름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설명했다. ‘회복의 시간’은 2024년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제1회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 국제 공모를 통해 조성된 정원이다.
두 사람은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 10여 년 동안 살았다. 이 교수는 서울 용산구 노들섬 프로젝트를 맡으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국의 스타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이진 디자이너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 뒤 런던에서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식물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며 조경가의 길을 걷게 됐다. ‘회복의 시간’은 부부가 귀국하자마자 한 첫 프로젝트였다.
서울시가 제시한 키워드는 ‘정원이 가진 회복력’과 ‘정원과의 동행’이었다. 뚝섬한강공원 안에 있는 250㎡ 작은 땅이 주어졌다. 두 사람은 단순히 바라보며 감상하는 관상용 정원은 지양했다. 대신 자연에 360도 둘러싸여 주변 인공 구조물과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해법은 지면보다 낮은 선큰(sunken) 구조의 원형 정원을 만들어 360도 파노라마 뷰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정원의 중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밖을 보면 정원의 작은 화초, 공원의 아름드리나무, 한강이 겹겹이 쌓여 보인다. 자연의 중첩된 풍경이 서울이란 도시를 색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한강공원에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수변을 따라 선형으로 걸어다녀요. 사람들을 머물게 하고 느리게 걷게 하는 장소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나무 밑에서 지친 영혼을 달래기도 하고 자연과 연결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일상의 과속 방지턱’인 셈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지는 정원
이 정원에서 식물은 배경이 아닌 서사의 주체다. 단지 예쁜 꽃이 아니라 사계절을 관통하는 생태적 서사를 담고 있다. 이진 디자이너는 식물의 개화 시기와 색깔, 구조적 리듬을 염두에 둬 봄부터 겨울까지 다채로운 장면이 펼쳐지도록 식재를 설계했다. 라운지형으로 만든 공간에 섬세하게 식물을 식재해 시각, 촉각, 감성적으로 풍부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특히 다년생 초화류를 많이 써 해가 거듭될수록 더 깊고 풍성한 풍경이 펼쳐진다. 대개 한국의 공공 정원에 쓰이는 일년초는 봄이나 가을에 꽃을 보기 위해 심어졌다가 개화기가 끝나면 버려진다. 낮게 깔린 이끼류, 강한 색보다는 촉감과 밀도로 설계된 구역들은 감각적인 몰입을 유도한다. 식물 생장에 담긴 시간성이 도시인의 감각과 병렬로 배치돼 회복을 돕는다.
정원에는 직선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곡선만 있는 비정형 공간이다. “일부러 의도한 형태는 아니었어요.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서로 ‘밀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형태가 나왔어요.” 빠듯한 예산 안에서 복잡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활용했다. 컴퓨터로 곡률 등을 정교하게 계산해 구조를 표준화시켜 이케아 가구처럼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지에 6~8m 간격으로 무질서하게 있는 나무들도 그대로 살렸다. 싹둑 베기보다 뿌리 형태를 살려 배수가 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땅을 아래로 팠다. 그 결과 자연스레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가 생겼다. 정원은 중앙의 벤치를 중심으로 세 겹의 링으로 구성돼 있다. 안에서 밖으로 갈수록 키 큰 식물을 심었다.

인공을 압도하는 자연의 마력
이 교수는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구글 본사 건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설계 등에 참여했다. 헤더윅의 트레이드 마크인 비정형의 독특한 형태가 정원에서도 느껴진다고 하자 이 교수가 답했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설계할 때 ‘콘셉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어요. 개별 프로젝트가 지닌 본질에 집중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중시해요. 조건에 따라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독특한 형태가 도출되는 거지 독특한 형태를 처음부터 생각하고 출발하지 않습니다. 헤더윅의 이런 접근 방식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회복의 시간’은 그의 건축적 사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정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연에는 인공을 압도하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다 만들어놓으니까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곤충들도 찾아옵니다. 세상에 뭔가 좋은 일을 한 것만 같아 뿌듯해지더라고요(웃음).” 그의 뒤로 정원의 단골손님이라는 길냥이가 살며시 다가왔다.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정원을 만드는 과정은 그에게도 ‘회복의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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