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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하며 전업육아일기 “박사경력 아쉽냐고? 육아는 결코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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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출신 육아웹툰 작가 이대양 씨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이제부터 도로에 나가 다른 차들을 상대로 승리하세요.” 뭐? 고작 이거 하고 운전을 하라고? 이거 튜토리얼(기초안내) 똥망이네!’
웹툰 ‘닥터앤닥터 육아일기’에선 처음 육아를 맞닥뜨린 부모의 심정을 ‘마치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마쳤을 때의 기분과 같다’며 이같이 묘사한다. 어렵게 수면교육에 성공하더라도 신생아는 ‘내 머릿속에 지우개’ 신공을 발휘해 내일이면 자는 법을 까맣게 잊고, 철저한 시간 계산과 오차 없는 계량으로 수유를 해도 ‘레이저 토’를 발사하고 ‘연속 똥’ 공격으로 부모를 한 방에 ‘K.O’시킨다.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주면 더 잘 먹겠지?’라는 생각이 산산조각나는 것은 순식간. 입 꾹 닫은 채 그저 해맑게 웃는 아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난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만 봐도 배불러, 헤헤.’
도베르만 아빠(‘베르’)와 판다 엄마(‘안다’), 레서판다 아들(‘레서’)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측불가 좌충우돌 육아일상을 담은 이 작품은 2019년부터 2년 3개월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고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지금까지도 초보 ‘육엄빠’의 필독서로 읽힌다. 인기의 비결은 ‘웃픈’ 유머와 공감. ‘육아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라는 걸 공학박사 아빠와 산부인과 전문의 엄마의 생생한 체험담으로 증명해보인다. 육아를 하기엔 최적의 조합 아니냐고? 이대양 작가(필명 ‘닥터베르’)는 세간의 기대에 한마디로 반격의 스매싱을 날린다. “직업이 육아에 끼치는 영향이요? 그냥 고학력자죠, 하하.”
2015년 첫아이 출산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이 작가는 휴학 후 3년간 주 양육자로 아이를 키웠다. 박사학위 취득을 눈앞에 두고 결정한 일이었다. 어렵게 복학해 학위 취득은 성공했지만 긴 공백 탓에 취업이 쉽지 않았다. 낮엔 대학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밤엔 웹툰 작가로 살며 그린 작품이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다.
“어차피 취업이 어렵게 됐으니 아내가 육아웹툰을 그려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대학생 때 웹소설을 써서 꽤 인기를 얻은 적이 있거든요. 이미 수많은 육아웹툰이 나온 터라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한마디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박사 출신 아빠가 전업 육아를 하면서 경력단절까지 겪은 이야기는 없지 않냐’고요.”
애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던 웹툰은 ‘아빠가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방향을 틀었다. 웹툰 연재가 결정되고 한 달 뒤 이 작가가 혈액암 4기 진단을 받으면서다. 항암치료를 받은 2년 6개월은 웹툰을 연재하던 시기와 대부분 겹친다. 투병을 하면서 그 힘들다는 웹툰 작가의 삶을 어떻게 버텨냈냐는 질문에 그는 “무엇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을 때 오직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만이 힘이 돼줬다”고 했다.
이 작가는 올해 3월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대화 내내 웃는 얼굴로 주위를 밝히면서도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웹툰 말미에 분위기가 무거워져버려 아쉬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또 다른 위로를 줄 수 있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하다. 박사학위 취득을 코앞에 둔 상황이라 더욱 쉽지 않았을 텐데.
잃어보기 전엔 소중함을 모르는 것들이 있다. 월급, 건강, 가족 등. 나는 그것이 아이였다. 아내가 임신 5개월에 첫아이를 유산한 뒤 부모가 될 준비가 너무 미흡했구나 싶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보육기관이나 부모님께 맡기고 주말에만 육아를 하면 되겠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게 무척 미안했다. 다시 아이가 찾아와준다면 꼭 내 품에서 직접 돌보고 싶었다.

공학박사 아빠와 산부인과 전문의 엄마의 어설픈 육아일기가 무척 위로가 됐다(미소).
나는 뭐든 책을 통해 배운다. 그런데 책으로 배우지 못한 게 딱 두 가지다. 수영, 그리고 육아다. 하하. 육아서에선 아이는 서너 시간 간격으로 ‘먹(기)-놀(이)-잠(자기)’ 순서로 돌보면 된다고 배웠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현실에서 이런 이론은 전혀 안 통했다. 아내 역시 그 어려운 임신·출산 관련 지식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신생아 속싸개 하나를 싸는 데 쩔쩔맸다. 심지어 아이가 나를 훨씬 더 잘 따르는 걸 보며 몹시 좌절하기도 했다.

웹툰에서 ‘육아는 대단한 게 아닌 사소한 것이 숨 막히게 한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큰 일을 볼 때 화장실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신생아 땐 아이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지 않나. 난생처음 변비를 앓았다. 밥 한 숟가락 뜨는 것도 왜 그렇게 어려운지. 여성들이 높은 옥타브의 소리를 더 잘 듣는다는 것도 근거 없는 얘기다. 우리 집에선 새벽 아이 울음소리에 나만 깼다. 그게 그렇게 억울하더라(웃음).

결국 육아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무엇이 가장 힘들었고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서 너무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힘들었다.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던 내 고민은 아이가 분유를 몇 밀리미터 먹었는지, 똥은 얼마만큼 눴는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들로 쪼그라들었다. 아이가 잠들면 나의 막막한 현실이 눈을 떴다. 그나마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게 큰 낙이었다. 책을 소리 내 연기하듯 읽으면 아이는 그걸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지금 내 발음이 좋은 게 그 덕분이려나?

그럼에도 독자에게 다양한 육아정보를 주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웹툰에는 논문 출처까지 등장한다).
육아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무척 많다. 임신 후기엔 운동을 삼가야 한다거나, 출산 직후 찬 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등. 웹툰을 연재하면서 아내에게 많이 물어봤다. 논문까지 뒤져가며 공부한 것도 아내 덕이다.

전업 육아 아빠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어땠나?
동네에선 나를 두고 백수라는 둥 애 엄마가 없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전과자라 취업이 안돼 애만 보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충격이었다. 문화센터나 키즈카페에 가도 쉽게 친해지는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았고 외출할 땐 기저귀갈이대가 여자 화장실에만 설치돼 있어 애를 먹었다. 어딜 가도 육아하는 아빠는 ‘주변인’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미혼부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게 됐다. 친자확인까지 하고도 미혼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현실을 웹툰에 그렸고 이후 미혼부지원단체와 함께 관련 법 개정에 힘을 보탰다.

3년간의 육아 후 박사학위 취득은 성공했지만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남성도, 고학력자도 육아 후의 경력단절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체감되는 사례다.
연구원으로 취업을 하려면 3년간의 연구성과를 제출해야 하는데 난 그 시간 육아에 전념했으니 쓸 말이 없었다. 취업이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사회제도도 갖춰져야 하지만 부모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성공과 더 많은 돈을 향해 내달리던 와중에 맞이하게 되는 출산과 육아는 나만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면 이전의 삶을 잠시 멈추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육아는 결코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도 후회가 없다는 뜻인가?
사람들은 공학박사로는 실패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세상엔 성공과 실패만 있지 않다. 그사이에 무수한 성장이 있고 보람과 행복도 있다. 육아를 안 했더라도 항암치료를 하며 학업을 이어가긴 어려웠을 거다. 대신 남다른 경험 덕분에 육아 웹툰 작가가 되는 행운도 누렸지 않나. 주 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며 아빠로서 특별한 행복도 맛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세상의 전부, 감동의 존재가 돼보는 경험은 정말 귀하다.

웹툰에선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하겠다는 후배에게 말을 아끼던데(웃음).
아내와 5대 5로 육아를 분담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노동도, 휴식도,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완벽한 반반은 불가능했다. 주말에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외출하면 5분도 안돼 휴대폰이 울리기 일쑤였다. 하루 종일 혼자 아이를 본 뒤 퇴근한 아내를 보면 왜 그렇게 울분이 나는지, 하하. 행복한 육아의 조건은 칼 같은 역할 분담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서로의 노력을 알아봐주고, 내가 조금 더 해도 괜찮다는 배려가 없다면 결혼과 출산이 행복을 저절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육아(兒)는 육아(我)의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는 아이를 키우며 겸손을 배웠다. ‘나도 과거엔 이렇게 무력한 한 명의 인간이었구나, 혼자 어른이 된 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덕분에 부모님과의 관계도 무척 좋아졌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가진 게 많지 않음에도 자식에게 정말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단 걸 이제야 알았다.

항암치료를 하며 쓴 웹툰은 아들에게 남기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제 열한 살이 된 아이는 뭐라고 이야기하나?
다섯 살에 처음 만화를 본 느낌과 지금 보는 느낌이 다르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은 안하지만 뭔가를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배를 만들게 하려면 나무를 다듬는 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는 것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파도를 만나도 노를 젓는 법을 배우고 밤에 길을 잃어도 별자리를 읽는 법을 터득한다는 뜻이다. 독자들은 나에게 절망의 순간 어떻게 포기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데 고난을 뛰어넘는 힘은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삶 속에서 수많은 연습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실패해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란 걸 아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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