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개구리·상괭이·강치… “왜 인기없는 동물만 만드냐고요? 알아야 지킬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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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동물 조형작가 정의동
매끈한 초록빛 피부에 손을 대면 ‘스윽’ 하고 미끄러질 것 같다. 정교하게 조립된 수십 개의 뼈마디는 곧 “뻐드득”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달릴 듯하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취재진을 반기는 개구리와 공룡의 생생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깜짝이야’ 하고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해요. 내가 잘 만들었다 싶어서요. 물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제대로 동물을 알려야죠.”
정의동 작가의 작품은 최대한 본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작품 주제는 동물. 특히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거나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멸종위기동물들이다. 그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우리나라 토착종에 관심이 많다. 개구리,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가 작품의 주요 모델이다. 이 밖에도 거북이, 도롱뇽, 장수풍뎅이 등 익숙한 듯하면서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토착종을 세상에 소개한다.
“곰, 코끼리, 사자같이 큰 동물들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나마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잖아요. 저는 우리 땅에 살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에 더 눈길이 가요. 시골에서 자라 어릴 땐 개울에서 송사리 잡고 뒷산에 가면 고라니를 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죠. 더 많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 땅의 동물들을 작품으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올해로 8년 차.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정 작가는 이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멸종위기동물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의류업체와 손잡고 토종고래를 알리는 데 나서는가 하면 청개구리·대왕고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개인전도 열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전국의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생태관 등에 전시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실제와 흡사한 모습 덕에 작품을 넘어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까지 인정받고 있다. 국내 생물종 연구기관에서는 멸종위기종 복원 모형 제작을 의뢰해오기도 한다.
정 작가는 그간의 작품활동을 담아 2024년 11월 ‘사라져가는 존재는 말이 없다’는 제목의 에세이를 펴냈다. 그는 “사람도 동물도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곧 멸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정 작가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취미로 동물 피규어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고.
동물 피규어를 수집하다 독학으로 공부해 피규어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만의 조형작가 스킨크의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대개 동물을 캐릭터화한 피규어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실제 동물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더욱이 대만의 토착종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런 작품도 있구나, 작품활동을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구나’ 싶더라. 그때부터 나도 한국의 토착종, 그중에서도 멸종위기종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멸종위기동물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생기진 않았을 텐데.
어린 시절 영향이 크다. 강원도 시골에 살며 동물을 가까이 보고 자란 데다 아버지께서 매주 수요일 밤마다 KBS ‘환경스페셜’을 꼭 보게 하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반도의 마지막 황새 부부’ 얘기였다. 텃새로는 단 한 쌍 남아 있던 황새 수컷이 1970년대 밀렵꾼에 의해 죽고 암컷이 혼자 남아 20여 년간 무정란만 낳다 죽은 사연이었다. 인간에 의해 멸종된 황새를 보면서 멸종위기동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하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사라져가는 동물이 멸종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알려보자고 생각했다.
맨 처음 만든 작품이 ‘금개구리’다. 개구리가 멸종위기종인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구리만 참개구리, 청개구리 등 14종에 이른다. 그중 금개구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14종 가운데 멸종위기 보호종은 3종 정도지만 문제는 ‘확산 속도’다. 내가 살았던 경기 하남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변이 다 논밭이었다. 여름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들을 수 없다. 양서류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이동이 제한적이다. 즉 서식지의 환경이 파괴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 살 수 없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거기 살던 개구리는 다 죽는거다. 개발속도만큼이나 개구리가 사라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알리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의류 브랜드와 협업할 기회가 생겼는데 인기 동물보단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물을 해보자 싶었다. 상괭이는 우리나라 연안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고래인데 웃는 듯한 표정이 무척 귀엽다. 반면 국내에서 혼획으로 가장 많이 죽는 고래이기도 하다. 고래는 보호종이기 때문에 어획이 금지돼 있는데 무분별한 어획으로 한 해 2000마리에 가까운 상괭이가 죽음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 서식 개체 수가 1만 마리가 안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언제든 멸종될 수 있는 거다. 보호 대책이 절실하다.
멸종위기동물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나?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관심 있는 동물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간다. 영상, 사진, 논문 등 자료조사만 1~2주 정도 걸린다. 생김새부터 자세, 행동, 먹이, 서식지까지 공부한다. 자료를 구하기 어려울 땐 현장 조사를 나가기도 한다. 말 그대로 멸종위기종이기 때문에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는 때도 많다. 찾아 헤매던 동물과 마주했을 때 기쁨은 말로 할 수 없다. 생태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와 자세히 관찰한다.
구체적인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70개의 뼈마디를 하나하나 이어붙여 4개월에 걸쳐 만들었다는 ‘도도새’ 작업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던데.
3D 프린터로 골격을 만든 뒤 레진, 우레탄 등의 소재로 출력해 색을 칠하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3D 프린터를 이용한다고 하면 단번에 뚝딱 성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뼈마디, 근육의 질감, 피부결 하나하나 일일이 펜 마우스로 직접 구현해야 한다. 때문에 컴퓨터 작업에만 한두 달이 걸린다. 이후 출력에 몇 주, 도색에 수개월이 소요된다. 덩치가 큰 녀석들은 완성까지 6개월이상 걸리기도 한다.
작품을 보면 진짜 살아 있는 동물처럼 느껴진다.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게 작품 원칙이라고.
해부학 공부까지 했다. 근육과 뼈의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겉만 비슷하게 만든 것과 직접 공부해 만든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다만 해부학적으로 연구가 안 돼 있는 동물이 많아 어렵다. 그럴 땐 비슷한 종의 다른 동물 사진을 보면서 연구하는 수밖엔 없다.
이렇게까지 ‘실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내가 하는 작업은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동물을 복원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나의 작품이 그 동물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줘 동물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전시장 바닥에 배치한 개구리를 보고 ‘진짜인 줄 알았다’며 감탄하거나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관객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웃음). 앞으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보다 곁에 두고 싶게 만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오래 볼수록 관심도 커지지 않겠나.
멸종위기동물을 작품으로 재현하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땅에 이런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동물보호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앞에 맹꽁이 서식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보호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알아야’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만드는 작은 동물들은 서식지 이동 등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운 종들이 많다. 게다가 동물의 멸종 원인은 인간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을 보호하는 일은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그들이 사는 곳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더 소개하고 싶은 동물은?
‘헤엄’이라는 주제로 물 속 동물들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특히 관심이 있는 동물은 ‘독도강치’다. 일제강점기에 기름을 얻을 목적으로 일본인들이 모두 잡아간 탓에 우리나라에선 절멸했다. 바다사자 중엔 가장 몸집이 큰 종이다. 우리 땅에 이런 동물도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또 그간 작업해온 작은 동물들을 사람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대형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다만 대형작품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기관이나 기업의 협업 없이는 어렵다.
과거 “멸종위기종을 만들다 내가 멸종할 뻔했다”고 한 말하기도 했다.
예술로든 환경보호활동으로 보든 이 일은 큰돈을 벌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 쉽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박물관, 전시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이러다 내가 멸종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도 작가로 활동하는 건 쉽지 않지만 아무도 나서서 하지 않는 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으로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우리나라 토착종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지 않겠나.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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