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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주름, 눈썹 한 올까지… 인체조각의 거장 ‘론 뮤익’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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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같아.”
곳곳에서 감탄사가 쏟아진다. 핏줄이 비쳐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 모공과 주름, 미세한 털까지 실제같이 묘사된 인체 형상들이 펼쳐진 곳,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 중인 ‘론 뮤익’전의 풍경이다. 호주 출신 조각가인 론 뮤익의 첫 내한 전시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주요 조각 작품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 다큐멘터리 필름 등 총 24점을 소개한다. 4월 11일 개막 이후 첫 주말에만 1만 5000여 명이 다녀갔다.
뮤익은 피부 힘줄과 작은 주름까지도 묘사하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조각가다. 놀랍도록 정교한 조각적 테크닉과 작품 크기를 실제 인체보다 과장되게 크거나 작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의 문을 여는 작품 ‘마스크 II(2002)’는 실제 인간 얼굴의 네 배 크기로 초입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가는 잠든 자신의 얼굴을 확대해 볼 모공과 턱수염 한 올까지 구현해냈다. 조각 앞면은 바닥에 뺨을 기댄 채 눈을 감은 모습인 반면 뒷면은 텅 비어 있다. 진짜처럼 보이던 남성의 얼굴이 작품 이름처럼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로 650㎝, 세로 395㎝의 대형 설치 작품 ‘침대에서(2005)’는 이불을 덮고 벽에 기댄 채 누워 있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침대는 사적인 공간이지만 여성의 시선이 관객과 닿지 않아 관객의 존재가 그를 방해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뮤익의 초기 작품인 ‘유령(1998·2004)’은 수영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가 벽에 기댄 형상을 확대했다.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인물 작품들도 있다. 암탉과 마주한 중년의 남성을 표현한 ‘치킨/맨(2019)’이나 등을 뒤로 젖힌 채 짐의 무게를 짊어진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지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쇼핑하는 여인(2013)’ 등이다. ‘치킨/맨’은 처진 살, 눈썹, 검버섯이 드러난 노인이 주먹을 꽉 쥐고 암탉 한 마리와 대치 중이다.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누가 먼저 눈을 깜박이거나 덮칠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답은 없다. 관객은 원하는 만큼 이 장면을 곱씹으며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현실의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쇼핑하는 여인’도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생기 없는 얼굴의 여성은 커다란 외투 속에 아기띠로 아주 작은 아기를 안고 있다. 동시에 두 손에는 묵직한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아기는 손가락을 여성의 가슴 위에 얹고 여성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여성은 생각에 잠긴 듯 어딘가를 응시한다. 이 작품을 보는 동안 현실의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작가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뮤익은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를 말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의 상황 및 주변 인물들을 연상하게 한다. 극사실적 인물에 놀라고 정교한 기술에 감탄하며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천장까지 쌓아 올린 두개골 100개
팔을 모아 벗은 몸을 간신히 가린 한 남성이 보트 뱃머리에 앉아 무언가를 살피고 있다. 뮤익의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배에 탄 남자(2002)’이다.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분위기, 깊은 고독감이 엄습해온다. 미술 평론가 저스틴 페턴은 작품 속 인물을 두고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내면의 세계로 물러서거나 떠내려가는 듯하다”고 이야기했다.
뮤익의 어떤 작품은 관객이 작품과 거리를 두도록 유도한다. ‘어두운 장소(2018)’가 그렇다. 관객이 좁은 문을 지나 작품이 놓인 어두운 공간 안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작품에 근접해 살피기보단 작품이 전하는, 혹은 관객이 찰나에 느끼는 감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m에 달하는 거대 두개골 형상 100개를 쌓아 올린 ‘매스(2016~2017)’다. 전시장 바닥부터 천장까지 층층이 쌓인 두개골 앞에서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매스(Mass)’가 더미, 군중, 종교의식을 뜻하는 것처럼 두개골의 상징도 다층적이다. 뮤익은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며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뮤익은 전시 장소의 건축과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성하기 때문에 ‘매스’는 전시될 때마다 새로운 구조로 관객을 만난다.
이밖에 뮤익의 창작 과정과 예술가로서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작업실 사진 연작 12점과 다큐멘터리 2편도 함께 전시된다. 25년간 뮤익의 작품이 제작되고 설치되는 과정을 기록해온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볼롱드의 작품이다. 뮤익은 30여 년간 활동했지만 작업마다 수개월, 수년이 걸리다보니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은 총 48점에 불과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현대 조각 거장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경험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6전시실에서 7월 13일까지 이어진다.

이근하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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