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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게임 30년 한우물 40대 아재들의 희망으로 “인생에서 늦은 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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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스트리트파이터5 금메달 김관우
“류, 켄, 춘리는 왜 안 늙나요?” “오락실에서 등짝 스매싱 맞고 끌려나가던 때가 생각난다.” “한 판에 50원에서 100원으로 오를 때가 인생의 첫 번째 위기였다.”
때아닌 ‘오락실 키즈’들의 간증이 이어지고 있다. 추억의 게임 ‘스트리트파이터(이하 스파)’를 둘러싼 이야기다. 1987년 일본 캡콤이 개발한 이 게임은 전 세계 대전 격투 게임의 시초로 불린다. 누구나 집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PC게임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1990년대 동네 오락실은 스파를 하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이들이 한 켠에 쌓아둔 동전들과 오락기계가 휘청일 만큼 흔들어대던 막대사탕 모양의 컨트롤러, 인기 캐릭터 ‘달심’의 긴 팔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갈 때마다 모두가 함께 외치던 ‘요가파이어’까지. 스파는 그 시절 청소년의 주류 문화였다.
잠들어 있던 오래전 기억을 소환한 이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관우다. 그는 9월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센터 주경기장에서 열린 스파5 결승전에서 풀세트(4대 3) 접전 끝에 대만의 샹위린을 꺾고 시상식 단상 맨 위에 올랐다. e스포츠 종목에서 나온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이었다. e스포츠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많은 이의 관심이 이상혁(페이커) 등이 출전하는 리그오브레전드(LoL)에 집중돼 있던 탓에 김관우의 우승은 뜻밖의 낭보였다. 이번 대회 전 종목을 통틀어 입장권이 가장 비쌀 만큼 인기가 높은 LoL과 달리 스파5는 국내 중계조차 계획돼 있지 않았다. 김관우가 결승에 진출하면서 방송사들은 긴급하게 편성을 꾸리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어릴 적 추억의 게임이 아시안게임에 등장한 것에 한 번, 올해 44세인 금메달리스트의 나이에 또 한 번 놀랐다. 김관우는 1979년생이다. 10~20대가 즐비한 e스포츠 선수단에서 단연 최고령이다. 더욱이 그는 2000년대 이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국내 게임시장의 주류가 된 상황 속에서도 30년 넘게 격투 게임 한 우물만 팠다. 김관우의 우승을 두고 누리꾼들은 ‘고인물(오래된 고수를 뜻하는 게임계 은어)의 반란’이라고 했다. 김관우 스스로도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한때 동네를 평정했던 오락실 꼬마는 이제 ‘40대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건 기분이 어떤가?
귀국 후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고 굉장히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금메달을 따긴 땄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평생 격투기 게임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은 언제부터 했나?
초등학교 1~2학년 때 오락실에 처음 갔다. 격투기 게임을 좋아하게 된 건 4학년 때쯤이다. 그때가 게임 한 판에 50원이었다. 고등학교 땐 한 자리에서 89연승까지 했다. 밥도 안 먹고 6시간가량 게임만 한 거다. 100연승을 못 채운 게 지금도 아쉽다.

오락실에서 교장 선생님께 끌려간 적도 있다고.
오락실에 갔다 걸리면 학교에서 혼이 났다. 처음 한두 번은 담임선생님께 꾸지람 듣는 걸로 끝났지만 그게 잦아지니 교장실까지 끌려갔다. 그 시절엔 오락실에서 게임을 잘하면 형들에게도 혼났다. 어린애가 자꾸 이기니 형들이 ‘너 그렇게 얍삽하게 하지 마라’면서 뒤통수를 한 대씩 때리고 갔다. 게임 좀 했다는 사람들은 다 이런 기억이 있을 거다. 그럼에도 오락실에 가는 건 아무도 막지 못했다.

스파를 추억의 게임 정도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프로리그가 있는 줄도 몰랐다.
스파는 계속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올해 스파6가 나왔다. 하지만 국내 프로리그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 프로 선수는 5명 정도다. 국가대표 선발전도 5명이 치렀다. 30년 넘게 게임을 했지만 프로 제의를 받은 것도 불과 1년 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서다. 국내에선 격투 게임이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시장이 매우 작다.

별다른 지원 없이 지금껏 어떻게 게임을 해왔나?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낮엔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 후 게임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회사를 관뒀다. 온라인 개인방송을 하며 지내다 국가대표 선발전에 초청돼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하게 됐다. 현재는 성남 스피릿제로에 소속돼 전업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사실상 게임을 잘 하는 일반인에 가까웠다.

메달 기대주도 아니었다. 스스로는 우승을 예상했나?
스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금메달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국제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선 이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승할 수 있었던 건 e스포츠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합숙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훈련을 하는 등 처음으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특히 국가대표팀 강성훈 감독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사용하는 주캐릭터를 분석해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각 캐릭터를 가장 잘 사용하는 전국의 고수들을 찾아 대전을 치를 수 있도록 해준 거다. 스파5에 등장하는 캐릭터만 30개 정도인 데다 올해 스파6가 출시된 상황이라 파트너를 찾기 무척 어려웠다. 그럼에도 지방에서 올라와 대전을 해주고, 감을 찾기 위해 몇 달간 연습을 하고 오는 등 모두가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금메달도 없었다.



격투 게임 최고 권위 대회인 에볼루션 챔피언십 시리즈(EVO)에서 2022·2023년 각각 우승한 가와노 마사키(일본), 린리웨이(대만)를 이번 대회에서 모두 이겼다. 위기는 없었나?
쉬운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경기에서 맞붙은 가와노 마사키 선수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다. 첫 번째 세트 마지막 라운드에서 죽기 직전 과감한 공격으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자칫 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대담한 시도였다. 첫 세트를 내줬다면 다음 세트도 졌을 가능성이 크다. 최종 스코어는 2대 0이었지만 결승으로 가기까지 최대 관문이었다. 결승 상대였던 샹위린과는 이번 대회에서 두 번 싸웠다. 워낙 유명한 선수인 데다 나이도 같다. 이미 대전을 치렀기 때문에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앞서 맞붙은 린리웨이와도 같은 국가 출신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공유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샹위린과 여러 번 맞붙었지만 내가 이긴 건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오직 ‘베가’ 한 캐릭터만 쓰는 걸로도 유명하다. 강한 캐릭터도 아닌 데다 한 캐릭터만 고집하면 상대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나?
승리를 위해서라면 강한 캐릭터를 쓰는 게 유리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쓰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베가는 일단 잘생겨서 좋다(웃음). 베가로 계속 플레이를 해오면서 상대가 누구든 내가 잘만 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상대가 캐릭터를 바꾸면 이에 대응해 공격 타이밍, 기술, 전략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까다롭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캐릭터를 바꿔 쓰려면 나 스스로 다양한 캐릭터에 적응해야 한다. 한 캐릭터를 고수하는 게 무조건 불리한 싸움은 아니다.

‘40대 게이머’라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다.
스파는 99초 동안 일대일로 겨루는 게임이다. 그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상대와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 종종 선수가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서 대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소리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만큼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이처럼 심리전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젊은 선수가 무조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또한 스파는 1초에 60개 프레임이 돌아가는 무척 스피디한 게임이다. 즉 60분의 1초마다 바뀌는 한 프레임 내에서 어떻게 공격과 방어를 할 것인지 아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그걸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스파뿐 아니라 격투 게임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균 연령이 높다. 물론 40대 선수가 흔한 건 아니다. 30대 선수가 제일 많다.

20~30대에 비해 반응속도가 느려졌다거나 체력이 달린다고 느끼진 않나?
평소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산다. 물론 반응속도는 젊은 선수들이 확실히 빠르다. 어렸을 때도 반응속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나이가 들어 느려진 거라고 느끼진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능력치가 골고루 분배돼 있다는 게 나의 장점이라고들 한다. 반응속도도 어중간하고 거리싸움, 대공, 심리싸움 다 특출난 건 없지만 여러 능력치가 골고루 평균 이상은 되니 균형이 맞는다는 거다.

여전히 게이머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금메달을 딴 후 달라진 시선을 느끼나?
애초에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살았다. 신경을 썼다면 게임을 오래 하지 못했을 거다. 결국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인생인데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 울컥한다. 어머니 입장에선 게임만 하는 아들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을 거다. 살면서 한 번은 나로 인해 기쁜 순간을 만들어드려 다행이다.

이제 스파6에 도전하는 건가? 앞으로 계획은?
지금 이 인터뷰를 잘하자(웃음). 너무 멀리 보지 않고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좋아서 한 게임으로 금메달까지 딴 것처럼 말이다.
스파6든 다른 격투게임이든 게임은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 하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굉장히 오래 해왔다. 물론 늘 불안함은 있다.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e스포츠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다.

뭐든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의 힘이 느껴진다.
복잡하게 계산하고 미래에 대해 계획을 짠다고 해도 결국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 생각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게 됐다. 40대 동년배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하라고. 남들보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우린 할 수 있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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