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주도권 싸움 이제 시작이다 인재 양성이 가장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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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제안했다. 행렬역학은 원자 내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양자역학 분야에서 최초의 수학적 이론으로 간주된다. 이로부터 양자역학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엔은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 및 기술의 해’로 지정했다. 정부도 2월 5일 ‘세계 양자과학 및 기술의 해 한국 선포식’을 열고 대한민국 양자기술·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만 간주되던 양자역학이 사실은 인류의 미래를 뒤바꿀 기술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물리 현상을 활용한 양자컴퓨터는 지금껏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많은 일을 해낼 것으로 전망된다. 인류가 수백·수천 년이 걸려도 풀지 못할 난제를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순식간에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예측이 앞다퉈 쏟아지고 있다.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양자기술단장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까지 10년은 남았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지금부터 양자컴퓨터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양자컴퓨터가 양자물리학의 두 번째 ‘퀀텀점프’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퀀텀점프란 양자세계의 현상을 빗대 순식간에 도약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반도체, DNA, 레이저 등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것이 양자물리학을 통한 첫 번째 퀀텀점프라면 두 번째 퀀텀점프는 양자컴퓨터에 의해 촉발될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1990년대부터 양자컴퓨터를 연구해온 한국 양자컴퓨터 1세대 연구자 이 교수에게 양자컴퓨터 시대에 대해 들어봤다.
왜 양자컴퓨터가 주목을 받고 있나?
우리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암호체계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데 이 암호체계를 풀어버릴 수 있는 것이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암호체계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신약, 신물질의 개발도 좀 더 손쉬워진다. 인공지능(AI)의 성능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최적화 문제도 양자컴퓨터는 빠르게 대답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어떤 능력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연산속도가 매우 빠르다. 예를 들어 여덟 자 암호를 만들려면 56비트가 필요하다. 이걸 풀어낸다고 했을 때 1초에 100만 개씩 무작위로 넣어서 암호를 통과하려고 하면 고전컴퓨터로는 2000년 넘게 걸린다. 양자컴퓨터로는 4분 정도면 된다.
어떤 원리로 처리속도가 그렇게 빠른 건가?
양자세계가 가진 ‘중첩’ 성질 때문이다. 컴퓨터 연산으로 얘기를 하면 이진법을 사용하는 고전컴퓨터에서는 한 개의 비트는 0 아니면 1의 값을 가진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에서 쓰는 한 개의 큐비트에서는 0과 1이 동시에 존재한다. 중첩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동의 중첩까지 설명해야 하지만 중첩 현상이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현상은 ‘얽힘’이다. 얽혀 있는 두 물체 중 하나의 상태가 변하면 즉시 다른 상태도 변한다. 태초에 얽힌 상태로 태어난 광자 두 개가 있다고 하자. 서로 우주 반대편으로 날아갔다고 하더라도 한 광자를 측정하면 그 즉시 다른 광자의 상태도 알 수 있다. 우주 안의 모든 물체가 얽혀 있다.
중첩현상으로 얼마나 더 빨라지나?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의 세 개의 큐비트는 2의 3제곱, 8가지 값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10개 큐비트는 2의 10제곱, 즉 1024개 비트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 큐비트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계산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걸 ‘병렬연산이 가능하다’고 표현한다.
중첩 현상을 어떻게 양자컴퓨터로 만드나?
얽힘을 활용한다. 큐비트는 그저 중첩된 상태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얽혔다 풀렸다 해야 양자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다.
이론과 실제 적용은 다를 것 같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로 큐비트를 만들어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큐비트 사이에 상호작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온덫 방식이 있다. 이온이란 원자에서 전자가 하나둘 더 붙거나 떨어져나간 상태를 말한다. 막대기들을 평행하게 배열한 후에 플러스·마이너스 전압을 걸어주면 이온들이 덫에 걸린 것처럼 잡혀 있게 되는데 여기에 레이저를 쏘아 상태를 조절한다. 현재로서는 32개 이온까지는 잘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안정적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이온덫 방식의 과제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초전도체 양자컴퓨터를 더 많이 개발하는 것 같다. 초전도체 방식은 어떤 것인가?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로 고리를 만들어 전류를 흘려 보내면 전류가 영원히 돌게 된다. 이런 현상은 원자에서 핵 주위를 도는 전자와 비슷하다. 그래서 초전도고리를 큐비트로 사용할 수 있다. 초전도 현상은 아주 낮은 온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섭씨 영하 269℃에서 액화되는 헬륨을 계속해서 채워줘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큐비트를 계속해 늘려나갈 수 있는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오류가 잘 발생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오류 없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오류없는 양자컴퓨터가 없다니 아직 양자컴퓨터는 상용화되기까지 한참 남은 것 아닌가?
양자기술의 근간이 되는 얽힘에 관한 연구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1930년대 양자 물리가 첫 번째 퀀텀점프를 가져오는 동안 약 60년간 정체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 이를 이용한 기술을 개발해냈다. 그때부터 IBM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슈퍼컴퓨터에도 성능의 한계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자료 사진 등을 통해 슈퍼컴퓨터를 봤겠지만 슈퍼컴퓨터는 물리적으로 규모를 키워가며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병렬연산을 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상용화된 양자컴퓨터가 10~20년 내 개발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 같다.
양자컴퓨터로 인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운 양자컴퓨터가 개인용으로 개발돼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양자컴퓨터는 이온덫이든 초전도체 방식이든 특수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데다가 엄청난 양의 연산을 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에 고전컴퓨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슈퍼컴퓨터를 노트북으로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가 개발된다면 바이오·화학 같은 업계에는 대변혁이 일어난다. 신약을 개발할 때 물질의 분자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계산과 데이터가 필요한데 지금은 임상시험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맞는 결합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몇 달·며칠 만에 분자구조를 분석하고 예측해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제약업계에서 양자컴퓨터 개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인류가 풀지 못했던 복잡한 문제를 양자컴퓨터 시대에는 풀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가 줄어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암호체계도 쉽게 풀릴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암호체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각국에서 양자컴퓨터 시대를 지금부터 준비하는 거다. 암호를 풀어버리는 양자컴퓨터 자체도 엄청난 무기지만 양자내성암호를 만들어 구축하는 것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문제다. 그래서 지금 국제적으로도 양자내성암호 표준체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암호체계의 변경에만도 10년, 20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흐름을 우리나라도 따라잡고 있다고 보나?
사실 우리가 양자컴퓨터 기술을 선도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잡고 어느 부분에서는 우수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결국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양자컴퓨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이를 연구해왔지만 최근 들어 양자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늘어난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구글이나 IBM 같은 기업에서 양자컴퓨터를 잇따라 발표하고 세계 각국이 수백 억 달러의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그런 것 같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을 수행할 인재를 기르는 거다.
양자컴퓨터 시대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하는 것 같다.
그렇다. 어떤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지, 어떤 소프트웨어가 탑재될 것인지, 데이터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김효정 기자
양자과학기술 생태계를 키워라
2025년 전용 예산 1980억 원, 24개 사업 진행
정부는 국내 양자과학기술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고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2025년 전용 예산 1980억 원을 편성해 24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15개 사업, 32건의 과제는 2025년 새롭게 추진되는 것이다.
성능이 검증된 양자컴퓨터를 국내에 설치하고 양자컴퓨팅 기술의 상용화를 가속화할 기반을 마련하는 ‘양자컴퓨팅 서비스 및 활용체계 구축’ 사업을 비롯해 양자통신 소재의 국산화와 기술 개발의 자립화를 추진하는 ‘양자 정보통신(퀀텀 ICT)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통신)’ 사업도 추진된다.
국제협력도 강화된다. ‘양자과학기술 국제 동반관계(글로벌 파트너십) 선도 대학 지원’ 사업을 통해 세계적 선도대학 간에 국제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고 양자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인력 양성에도 초점을 맞춰 ‘양자 온라인 체제 기반(퀀텀 플랫폼) 사업’도 실시하고 ‘개방형 양자 공동연구실’을 운영해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한 양자 핵심인력 양성과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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