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봄, 팬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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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가시자마자 어김없이 도심 화단에 등장하는 꽃이 있다. 팬지다. 요즘엔 수선화, 조생종 수국, 디모르포테카 등 새로운 원예종 꽃들에 밀려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팬지는 초봄 화단을 대표하는 꽃이다.
팬지는 유럽 원산의 제비꽃 종류를 근연종(近緣種)과 교잡시켜 만든 꽃이다. 꽃잎은 다섯 개지만 꽃잎 모양이 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다. 팬지(pansy)라는 이름은 프랑스어 ‘팡세(pensée)’, 즉 ‘명상’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꽃 모양이 명상에 잠긴 사람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팬지보다 꽃이 좀 작은 비올라(viola)도 도시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비올라는 흰색·노란색·자주색 등 3색이 기본색이라 삼색제비꽃이라고도 부른다.
팬지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에서 난장이의 딸 영희를 상징하는 꽃으로 나온다. 소설에서 영희는 팬지 꽃 앞에서 ‘줄 끊어진 기타’를 치는 열일곱 살 아가씨다. 난장이 가족이 아파트 입주권을 팔 때도 ‘영희는 팬지 꽃 두 송이를 따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았다’. 영희가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집을 나갔을 때 오빠 영호는 ‘영희가 팬지 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는’ 꿈을 꾼다. 영희를 상징하는 팬지 꽃이 폐수 속에 던져지는 것은 영희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팬지와 함께 피튜니아, 마리골드, 베고니아, 제라늄도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길거리꽃’이다. 이 꽃들의 공통점은 우선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100일 이상 핀다. 또 매연에 강하고 건조해도 잘 견디는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꽃값도 싸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이 꽃들을 볼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꽃만 잘 기억해도 도심 꽃의 상당 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김민철
야생화와 문학을 사랑하는 일간지 기자. 저서로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문학 속에 핀 꽃들’, ‘문학이 사랑한 꽃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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