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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나를 도와준다는 믿음 주는 것이 우리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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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슬픔, 분노, 상실감, 죄책감, 무력감….
대규모 재난 뒤에는 이렇듯 다양한 심리적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이 고통이 길어진다면, 더욱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라면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건복지부 소속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존재하는 이유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국내 첫 최대 규모의 재난심리지원 전담기관이다. 국립서울병원 심리위기지원단을 모태로 2018년 4월 문을 열었다. 2019년 강원 산불·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대규모 재난 발생 시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재난경험자의 심리적 회복을 도왔다. 2024년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재난경험자에 대한 지원도 한창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현재 희생자 유가족 대부분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재난심리 회복 과정 중에 있다.
이번 통합심리지원단은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발생 바로 이튿날부터 현장에서 매일 두 번씩 유가족 셸터(구호텐트)를 돌았다. 현장 상담소를 설치해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올 수 있도록 했고 현장에 있지 않은 유가족에게는 전화를 걸어 동의를 받은 뒤 심리지원 과정을 안내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가족의 상황을 살피며 또 다른 지원 방향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이 있었다.
심 센터장은 2018년 국내 최초로 ‘마음안심버스’를 도입, 재난현장에 ‘찾아가는 심리지원 상담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재난 정신건강 위기대응 표준매뉴얼’을 만들어 모든 국민이 안정적인 재난심리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권역별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재난대응 모의훈련을 실시해 전국 단위의 재난 정신건강서비스 역량을 강화했다. 재난심리지원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2018년부터 운영해온 교육과정 수강생은 현재까지 2만 3902명에 이른다. 심 센터장은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 1월 ‘제10회 대한민국 공무원상(홍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국가 차원의 재난심리지원은 왜 필요한지,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등을 심 센터장에게 물었다.

재난심리지원이란 무엇인가?
재난으로 인한 심적 타격은 당사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대응 인력(소방관, 응급대원 등), 일반국민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알아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가 나서 임시거주시설·의료·장례를 지원하듯 심리지원도 하나의 ‘구호’인 것이다.

재난심리지원에도 골든타임이 있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과거에는 재난심리지원 시기가 한없이 뒤로 밀리다 흐지부지 끝난 적도 있다. 2016~2017년에 환경부 의뢰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심리지원을 진행했는데 “진작 연락해주지. 그때(사고 당시) 이렇게 도와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시더라.

우리 사회가 재난심리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때 화상 같은 신체적 부상이 없는데도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고 고기도 구워먹지 못하는 등 연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회피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관찰됐다. 당시 많은 학회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구호 차원의 심리회복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0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재난심리 상담의 근거가 마련됐고 2013년 국립서울병원에 심리적 외상관리팀이 발족했다. 결정적으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민 재난심리 회복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분명해졌다. 공공부터 민간 학회까지 전국의 심리지원 전문가들이 나섰지만 안정적인 상설체계가 없다보니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재난 피해자를 반드시 도와야 한다’고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재난심리지원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
먼저 심리지원 관련 기관과 시·도 재난대응 담당자 등으로 통합심리지원단을 꾸린 뒤 심리지원의 전개방향을 정하고 역할 분장을 한다. 재난 규모와 성격에 따라 참여 기관은 달라진다. 유가족을 1차 심리지원 기관과 연계하고 3개월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역정신건강센터로 연계한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경우 장기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처음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했다.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가능한 한 조문도 다녀온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유가족에 대한 지원책을 찾기 위해서다.

고위험군이라면?
두 가지 차원을 고려한다. 공황, 불면증 등과 같은 현재 증상과 더불어 예후를 가늠할 수 있는 요인을 살핀다. 이를테면 이전에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있다거나 극도의 스트레를 받고 있거나 해결해야 할 행정적 문제가 산적한 경우다. 지금은 괜찮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의 지지체계도 중요한 부분이다. 미성년자가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주변에 돌봐줄 사람도 없는 경우라면 고위험군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장례식장에 가야 이러한 배경까지 파악할 수 있다.

사고 당사자나 유가족이 아닌 제3자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나?
재난 경험자는 1~5차로 구분된다. 당사자와 유가족, 재난지원인력, 지역사회, 전 국민 순이다. 1~3차는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4·5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집중적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정신건강 위기상담 번호(1577-0199)로 전화해 상담을 요청하면 해당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결된다.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크게는 기본·심화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재난상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 신체적 통증, 소화불량, 수면부족 등과 같은 이상반응을 일으킨다. 그럴 때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기본 치료를 ‘마음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신체적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교육, 복식호흡, 심상 기법 위주로 구성됐다. 무료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제작해 우울감,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인지행동 치료가 더해진 것이 심화 프로그램이다. 유가족에겐 갑작스러운 이별 자체가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애도’ 과정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납골당에 가는 것조차 겁내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생각의 틀이 바뀌기도 한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다는 의심, 안전에 대한 의심에 몸과 마음이 압도당해버린다. 악플로 인한 2차 가해를 겪은 사람은 주변에 대한 믿음까지 현저히 떨어진다. 심화 프로그램은 트라우마와 애도를 다룬다.

국내 첫 마음안심버스를 도입했다고.
재난현장과 임시거주시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다. 재난으로 잔뜩 긴장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보기만 해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버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곳곳에 담았다. 정신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공간, 트라우마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반응에 대한 교육공간, 휴식공간 등으로 꾸며졌다. 버스 이름도 같은 마음에서 붙였다.

심 센터장의 정수리 머리카락 길이는 유난히 들쑥날쑥했다.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원형탈모를 겪다보니 그새 자란 머리칼이 군데군데 솟았다. 심 센터장은 홍조근정훈장을 받고도 웃음 지을 수 없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유가족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센터장이기 전에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 또래의 유가족 얼굴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수능을 치른 아들을 보며 2018년 강릉 펜션 사고가 기억났다는 이야기를 하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과정에서 본인이 겪는 어려움도 상당할 것 같다.
재난현장에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정이 동화되는 게 사실이다. 모두가 힘들 수밖에 없지만 빨리 (감정적으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소방관은 자신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호소하더라. “당신이 그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거다. 단순히 일로만 여겼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을 거다. 그러나 자신을 대리 외상으로부터 보호해야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해줬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재난 경험자들에게 건네는 조언들을 내게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현장 경험이 쌓일수록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 같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거시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사회 전체가 재난에 강해져야 한다. 올해는 ‘트라우마 이해 기반 케어’라는 개념으로 조직이나 기관 차원에서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재난은 집단 트라우마다. 지난 10년의 통계를 봤을 때 우리나라는 한 해에 20번의 재난을 겪었다. 방재가 잘되면 가장 좋지만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완전한 방재는 어렵다. 그럼에도 사회가 나를 도와줄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다면 재난의 불안감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 공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재난심리지원 전문인력도 중요한 공적 기반이 될 수 있겠다.
전국에 정신건강복지센터 300여 곳이 분포해 있다. 약 2년 전부터 센터마다 재난심리지원 담당자 두 명을 지정해왔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재난이 일어났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상시 인력이 있다는 뜻이다. 대형 재난에는 부족한 인원이지만 상시 인력이 존재한다는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간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성과를 수치화한다면?
심리지원을 받은 분과 받지 않은 분을 비교할 수도 없고 재난심리지원을 통해 ‘이 정도’까지 회복됐다고 이야기하긴 어려운 것 같다. 대신 지역이 보유한 재난심리지원 관련 역량, ‘대비역량’이란 지표를 만들었다. 어느 곳에서 재난이 일어나도 표준적인 재난심리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역할이다. 해마다 17개 시·도와 4개 권역 트라우마센터의 평가지표를 점수화해 얼마나 개선됐는지 살피고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고통이 시작된 것도 길어진 것도 당신 탓이 아닙니다. 트라우마의 속성일 뿐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 고통이 길어지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근하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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