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자들의 필수품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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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이었다. 스코틀랜드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에 도착해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에 올랐다. 날이 밝아오자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눈에 ‘사람들은 키가 크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걸어서 위엄’이 있어 보였다. 남자들은 모두 ‘시커먼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피라미드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갓이라 부르는 모자가 괴상하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차차 점잖게 보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9년,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하는 사극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 그 시리즈물을 본 세계인들은 스토리보다 극중 인물들이 착용한 모자에 더 큰 관심을 가졌고 얼마 후 쇼핑몰 아마존닷컴에 등장해 히트상품이 됐다.
국내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기획한, 흑인 모델이 곰방대를 물고 갓을 쓴 모습을 촬영한 화보는 새롭게 부상한 한국의상의 폭발적인 인기를 반증한 것이다. 갓은 캐롤리나 헤레라, 에드워드 크러칠리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줘 패션쇼의 아이템으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100년 전에 언급한 갓은 흑립(黑笠)이다. 흑립은 ‘검게 옻칠을 한 갓’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성인 남자가 머리에 쓰던 모자(冠帽·관모)다. 갓을 뜻하는 립(笠)이라는 한자에 대나무(竹)가 들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갓은 대나무나 말총(말의 꼬리털) 등으로 만든다. 갓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머리를 넣는 총모자, 차양 부분인 양태(凉太), 갓끈으로 구성된다. 대나무를 쪼개 만든 죽사립(竹絲笠)을 들여다보면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가늘고 촘촘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나무껍질을 머리카락 절반 정도의 가늘기로 잘라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나무실이라는 뜻으로 죽사(竹絲)라고 부른다. 죽사로 엮은 갓은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검은색으로 옻칠을 한다. 그래서 갓을 흑립이라고 부른다. 갓을 만드는 과정은 워낙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태장, 총모자장, 입자장이 각 부분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정도다. 총모자와 양태 부분이 완성되면 마지막으로 갓끈을 연결시킨다. 갓끈은 갓이 바람에 날리거나 벗어지지 않게 천으로 만드는데 그와 함께 옥, 마노, 호박, 산호, 수정 등을 장식으로 달았다. 갓의 총모자와 양태가 비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을 가려주는 실용성이 목적이라면 갓끈은 장식성이 특징이다.
갓의 역사는 고구려의 약수리고분과 감신총에서 갓 쓴 인물이 등장한 것을 통해 삼국시대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거의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의상인 셈이다. 조선시대 남자 초상화를 보면 맨머리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갓 외에도 사모, 정자관, 익선관, 전립, 패랭이, 주립 등 다양하다. 개항기에 조선에 왔다 간 서양인들의 기록을 보면 조선사람들의 다양한 모자를 보고 놀라워하며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평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남자는 왜 갓을 썼을까. 과거 문헌을 찾아보면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라는 문장이 자주 나온다. 여기에서 의관은 ‘옷과 갓’을 지칭하는 말로 남자가 정식으로 옷차림을 갖춰 입었다는 뜻이다. 의관을 정제했다는 말은 단순히 옷만 잘 입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이 속한 사회질서에 편입돼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남자아이가 관례를 치를 때 상투를 틀고 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생이나 사대부는 춘하추동 항시 의관을 정제한 후에 사회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갓은 실내에서도 벗지 않았다. 이것은 갓이 단순히 햇볕을 가리는 차원을 떠나 사회적 신분을 상징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갓 대신 무엇을 쓰고 있을까.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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