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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회 건네는 삼각형 도서관 닫혀 있던 청소년의 마음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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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세컨찬스라이브러리
경기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 한적한 시골 마을에 SF 영화 속 불시착한 우주선 같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을 한 이 건물의 정체는 도서관이다. 모습만큼이나 건물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세컨찬스라이브러리(Second Chance Library).’ 우리말로 풀이하면 ‘두 번째 기회를 건네는 도서관’이다. 2023년 말 개관했는데 스페인 교육기관 MTA(Mondragon Team Academy)에서 견학 올 정도로 해외에도 알려졌다. 대체 어떤 사연을 품은 도서관일까.



‘경계에 선 아이들’을 품다
세컨찬스라이브러리가 두 번째 기회를 건네는 대상은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는 청소년들이다. 도서관은 법원으로부터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위해 사단법인 세상을품은아이들(이하 세품아)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안에 있다. 세품아는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의 가치를 되찾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는 단체다. 6호 처분은 소년원에 갈 정도의 중범죄는 아니지만 일정 기간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 세품아 캠퍼스에선 6개월간 30여 명의 아이가 머물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
세품아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후원하면서 특별한 도서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씨앗 재단은 우주로, 티티섬, 라이브러리 피치 등 청소년들을 위한 색다른 유형의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재단이다.
두 단체가 뜻을 모은 뒤 씨앗 재단은 도서관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완성도 높은 건축을 실현해줄 건축가를 찾아나섰다. 이 과정을 거쳐 선정한 건축가가 오즈앤엔즈 건축사사무소 최혜진 소장이었다. 최 소장은 경기 용인시 수지에 있는 대안학교 ‘수지꿈학교’ 등을 설계하면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진지하게 모색해온 건축가다.
최 소장은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넘어지고 그릇된 선택을 한 아이들이 새로운 나, 새로운 타인, 새로운 세상에 닿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건축 의뢰를 받았을 땐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좋은 일을 하겠다며 찾아오는 재단들을 막상 만나보면 진심이 안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어요. 그런데 외진 곳에서 숙식하며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세품아 선생님과 프로젝트에 정성을 다하는 씨앗 재단 분들을 보니 정말 진심이 느껴졌어요. 작은 힘이나마 보태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다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의미에만 무게중심이 쏠린 따분한 건물이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건축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서관이 들어선 곳은 캠퍼스 초입의 주차장 부지였다. 위치상 도서관은 캠퍼스의 입구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접점이 된다. 세상의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들의 상황과 묘하게 닮았다.
이 건물에 또렷한 존재감을 불어넣는 요소는 삼각형 형태다. 건축적으로 처음부터 의도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땅의 형태에 맞췄더니 자연스럽게 삼각형 매스가 도출됐다. 마침 아이들이 세상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창을 넓게 배치하고 싶었는데 삼각형은 면적 대비 외부와 접하는 변의 길이가 긴 도형이었다. 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에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세상으로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도서관은 330㎡(10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알차다. 삼각형 지붕의 중앙을 들어올려 단층의 단조로운 공간에 개방감을 준 덕에 내부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단순한 도서관을 넘어 공연장, 회의실, 무대 등 다양한 쓰임으로 무한 변신한다. “성장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내면을 넓혀주는 ‘거실 같은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씨앗 재단의 바람을 담은 디자인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반전이 펼쳐진다. 외벽은 천연 슬레이트 돌로 마감했지만 내부에는 밝은 잣나무 계열의 스프러스 목재를 사용했다. 최 소장은 “겉은 딱딱하고 거칠지만 내면은 따뜻하고 보드라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외부는 차가운 돌과 콘크리트로, 내부는 목재로 했다”고 말했다. 삼각형 형태를 따라 커다란 보 세 개와 기둥 다섯 개가 전체 공간을 구성한다. 목 구조와 도서관 책장을 일체화해 천장에서 벽면을 타고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실험정신을 인정받아 이 건물은 ‘2024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대상을 받았다.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이후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처럼 공간이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이 도서관도 아이들을 변화시켰을까. 최 소장이 일화를 들려줬다. “매일 공사 현장에 와서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가 있었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부모님이 타일공이어서 건물 짓는 데 관심이 많다는 거예요. 기특해서 도면을 보여줬더니 모형을 뚝딱 만들어왔어요. 닫혀 있던 아이의 마음이 열리고 자기 얘기를 시작했어요.” 마지막 조경 작업을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자 퇴소한 아이들이 자진해서 돌을 나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호칭은 모두 ‘작가님’이다. 운영하는 도서관마다 성격에 맞게 프로그램을 달리하는 씨앗 재단의 아이디어였다.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시설에 들어온 문제아가 아니라 창작자라는 다른 정체성을 줌으로써 새 삶을 개척하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한 아이는 퇴소 한 달을 남기고 도서관이 개관하자마자 와서 자기 얘기를 쏟아내 책을 만들었다.
물리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었지만 프로그램을 채워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세품아와 씨앗의 몫이었다. 세 주체가 삼각형의 꼭짓점이 돼 진심을 다해 함께 만들었기에 세컨찬스라이브러리는 진정 두 번째 기회를 건네는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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