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광부들 점점 사라져 더 늦기 전에 그들의 헌신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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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세계한인의 날’ 국민훈장 목련장 파독광부기념회관 김계수 명예관장
“글뤽아우프(Glückauf).”
1960년대 파독(派獨) 광부들은 탄광에서 매일 이 단어를 외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독일어로 ‘행운을 빕니다’라는 뜻이다. 지하 2000m 깊이의 갱도에서 오늘도 동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원이자 격려였다.
1963년 12월 16일 한국과 독일은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체결했다. 그해 12월 22일 파독 광부 123명이 처음 독일 땅을 밟았다. 파독 광부 1진을 시작으로 1977년 파견이 종료되기까지 75차례에 걸쳐 7936명의 한국인 광부가 독일에 갔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간호조무 인력은 1만 1057명이다. 1960~70년대 약 2만 명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1억여 달러를 고국에 송금했다. 당시 한국 총수출액의 2%에 달하는 규모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 4일 파독 근로 6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240여 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60년대, 70년대 이역만리 독일에서 약 2만 명의 광부와 간호사분들이 보내온 외화를 종잣돈으로 삼아서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며 “여러분의 땀과 헌신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었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파독 근로자만을 따로 초청해 오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들은 이날 행사를 계기로 파독 근로자의 역사가 잊히지 않고 처우가 더욱 개선되길 바랐다.
파독광부기념회관 김계수(88) 명예관장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독일 중부의 옛 공업도시 에센에 있는 파독광부기념회관은 파독 광부들의 쉼터이며 그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2009년 12월에 설립된 기념회관 1층엔 파독 광부들의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당시 쓰던 기구, 복장, 월급명세서, 신문, 영상자료 등이다. 김 관장은 파독 광부들이 교류하고 현지에서 한국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기념회관을 운영하고 건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재정을 지원해왔다. 사실 그는 광부가 아니다. 내과 의학박사로 독일에 유학온 뒤 정착한 의사다. 60년 가까이 독일에 거주하며 파독 광부와 간호사, 재독 한인을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은퇴 후에는 고령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과 건강 세미나를 열었다.
이런 공로로 김 관장은 10월 5일 ‘제17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김 관장과 파독 광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파독 근로자 초청 오찬과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참석차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김 관장을 만났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옛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독일에서 60년 가까이 살았는데 어떻게 독일에 가게 됐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약학을 전공한 뒤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에 갔다. 1966년 독일 기센대학 생화학연구실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의학을 전공했고 197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기센 의대 강사,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다 1982년 뒤셀도르프에서 내과의원을 개원했다. 32년간 병원을 운영하다 은퇴했고 독일에서 계속 살고 있다.
파독 광부·간호사와 비슷한 시기에 건너갔다.
기센은 독일 중부에 있는 도시인데 내가 처음 갔을 때 한국인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뒤셀도르프에 가면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만났다. 독일에 진출한 대기업 직원들도 있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가 형성돼 있었다.
뒤셀도르프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많았나?
뒤셀도르프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며 라인강에 접해 있는 독일 최대의 광역 도시권인 라인·루르 지방의 중심 도시다. 유럽 최대 광산 도시였던 에센과 가깝고 탄광이 발달한 도시가 많았다. 철강과 기계 등의 공업이 발달해 자원과 사람이 몰렸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에 뒤셀도르프에 정착한 사람이 많았다. 한국 식료품점이 있어서 향수병을 달래기 좋았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동질감이 컸겠다.
같은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마음을 열진 않더라. 독일에서 유학한 의사와 파독 광부·간호사 사이에 마음의 거리가 있다고 할까? 서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어울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동창회 같은 단체를 만들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해 서로 만나고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었다. 결국 같은 음식과 문화를 나누며 끈끈해졌다.
파독 광부들의 생활은 어땠나?
파독 광부는 지하 2000m로 내려가 석탄가루가 섞인 공기를 마시고 식사를 했다. 매일 수백 ㎏의 무거운 짐을 들고 끌어야 했다. 독일인은 꺼리는 일이었다. 골병이 드는 게 이상할 게 하나 없는 고된 일이었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은 대부분 한국에 송금했다. 파독 광부들의 당시 월급은 평균 650∼950마르크(당시 원화가치 기준 13만∼19만 원)로 국내 직장인 평균의 8배에 달했다. 그런데도 광부들은 독일 생활에 여유가 없었다. 파독 광부들이 생명을 걸고 정말 힘들게 번 돈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종잣돈이 됐다. 그걸 기억하고 돕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파독광부기념회관 운영과 지원에 나선 건가?
독일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 행사와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1983년 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궁중의상발표회를 주선하고 1988년에는 재독한국문화회를 창립했다. 재독 청소년 80명으로 최초의 청소년합창단을 만들어 왕성하게 공연을 펼쳤다. 1992년 뒤셀도르프에서 한국문화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이밖에도 재독대한체육회, 광부단체인 재독글뤽아우프회, 간호인 단체인 재독한인간호협회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런 경력과 의사라는 직업 덕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파독광부기념회관 운영을 맡게 됐고 재정을 지원했다. 다만 광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관장이라는 직함 대신 명예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파독광부기념회관은 어떻게 설립됐나?
한국 출신 광부들을 고용했던 독일 광산회사에서 퇴직보험금으로 적립한 돈이 있었다. 이 가운데 퇴직보험금을 찾아가지 않아 돈이 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돈에 이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퇴직보험금 상환 마지막 시한이 지나자 독일 측은 우리 정부에 기금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주인을 찾지 못한 퇴직보험금 17억 원에 3억 원을 보태 20억 원을 전 세계에 거주하는 파독 광부들을 위한 여러 복지사업에 사용했다. 독일에서 기념회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던 글뤽아우프회도 그 금액 일부를 책정받았다. 재독글뤽아우프회는 에센의 옛 천주교회 건물을 매입해 기념회관을 마련했다. 2009년 12월 문을 연 뒤 파독 광부들의 쉼터이자 행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재독한인문화회관을 겸하고 있어 문화·예술 행사도 열린다.
파독 광부 60주년 행사도 열렸다.
지난 5월 6일 파독 광부 60주년을 기념해 파독광부기념회관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1963년 12월 22일 한국인 광부로서는 처음으로 독일에 도착한 파독 광부 1진 유재천·김근철·유한석 씨 등 5명을 비롯한 파독 광부와 우리 동포, 독일 현지 주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재 독일에는 파독 광부가 800명 정도 살고 있다. 그중 절반인 400여 명이 건강상 이유로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제도 부고장을 받았다. 부고장을 받을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70주년, 80주년 행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안 되는 광부들이 남은 인생, 외롭지 않게 생을 마칠 수 있길 바란다.
나이든 분이 많으니 아픈 분도 많겠다.
워낙 고된 일이지 않았나. 젊었을 때는 견딜 수 있었다. 간호사랑 결혼한 광부들은 그나마 건강을 챙길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병이 생기고 거동도 힘들어진 분들이 많다. 의사이다 보니 그런 분들의 건강이 더 마음이 쓰이고 챙기게 된다.
정부가 파독 광부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을 약속했다고.
파독 광부 60주년 기념식에서 재외동포청을 출범시켜 파독 광부들의 헌신에 보답할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과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10월 4일 파독 근로자 초청 오찬에서 “여러분의 땀과 헌신을 국가의 이름으로 예우하고 기억하겠다. 지난 6월 출범한 재외동포청이 여러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도록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한 만큼 파독 근로자들은 물론 재독동포사회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간의 공로로 상도 많이 받았는데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대한민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나. 이를 기회 삼아 우리의 문화·체육·관광이 더욱 부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고 싶은 일보단 바라는 게 있다. 2022년 파독광부기념회관 뒤뜰을 사비를 들여 녹색 정원으로 만들었다. 내 이름을 따 ‘계수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계수정원에선 꽃과 나무가 자라고 한국의 상추와 깻잎도 자란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형성한 재독한인사회는 현재 5만명에 달한다. 유럽 최대 규모다. 세대를 이어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이 이 정원에서 뛰어놀고 쌈 채소를 먹으며 교류하고 만났으면 좋겠다. 다들 이곳에서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강정미 기자
박스기사
제17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윤 대통령 “750만 동포 뛸 운동장 넓힐 것”
10월 5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제17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열린 이날 기념식은 지난 6월 재외동포청이 출범한 이후 첫 번째로 열린 행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재외동포청을 중심으로 전 세계 동포들을 더욱 꼼꼼하게 살피고 세계 곳곳에 우리 기업과 국민, 750만 동포가 힘을 모아 뛸 수 있는 운동장을 넓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120년에 걸친 우리 동포들의 해외 진출은 그 시작이 미미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위대한 한국인의 이민사, 경제사를 써왔다”면서 “이는 대한민국의 역량을 뒷받침하는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며 “동포들이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배효준 아시아파운데이션 이사장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오유순 밴쿠버 무궁화재단 이사장에게는 국민훈장 모란장, 임호성 아프리카·중동 한인회총연합회 수석부회장에게는 국민훈장 동백장, 김계수 파독광부기념회관 명예관장에게는 국민훈장 목련장, 김수진 보라카이 한인회장에게는 대통령 표창이 각각 수여됐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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