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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빗장걸이 복은 들이고 화는 막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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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해 6월이었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집성촌)에 가게 됐는데 더위에 지쳐 잠시 동안 섬돌 끝에 앉아 있었다. 그때 우연히 잘생긴 두 마리 거북이가 눈에 들어왔다. 대문 빗장의 양옆에 붙은 거북이었다. 대문 양쪽을 닫으면 그 문이 열리지 않게 중앙에 빗장을 가로지르는데 거북이는 가로지른 빗장을 받쳐주는 빗장걸이다. 그 빗장걸이를 둔테라고 한다.
둔테는 뭉툭한 나무토막을 양쪽 문짝에 붙이고 그 가운데에 구멍을 파서 빗장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따라서 빗장과 둔테는 한 세트로 제작돼야 잠금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육중한 대문’이라는 표현처럼 굳게 닫힌 대문에 잠금장치까지 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정감과 단절감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빗장에 걸린 해학적인 거북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의 유쾌한 기억 덕분에 답사를 가면 한옥 대문 안쪽을 유심히 보게 된다.
둔테는 흔히 대부분의 목재 대문에서 보듯 단순하게 나무토막을 잘라서 만든다. 오로지 실용성만을 중요시하면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둔테의 모습을 거북이로 바꿔놓은 순간 대문이 들어선 공간은 보는 재미와 그 안에 투영된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된다. 낡은 집에 살면서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지 않아도 문고리, 경첩, 수전, 스위치 등 사소한 소품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집 분위기를 새롭게 바꿀 수 있다.
‘거북이빗장걸이’도 마찬가지다. 거북이의 몸은 둥그스름하게 깎았을 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북이의 머리를 보면 한 마리는 목에 주름이 많고 다른 한 마리는 주름이 없다. 목에 주름이 많은 쪽이 수컷이다. 암수를 구별해놓은 섬세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둔테로 쓰는 거북이는 반드시 두 마리를 만든다. 두 마리가 있어야 빗장걸이로 쓸 수 있기 때문이지만 암수 짝을 이루게 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옛 그림이나 조형물에서 새나 짐승을 형상화할 때 반드시 쌍으로 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옥에서 둔테는 거의 거북이로 제작하는데 그 모양은 매우 다양하다. 등에 귀갑문을 그려넣어 진짜 거북이 같은 둔테가 있는가 하면 자라처럼 생긴 둔테, 새처럼 생긴 둔테, 심지어는 도다리처럼 생긴 둔테도 있다. 어떤 것은 거북이 흉내만 냈을 뿐 거북이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추상적인 거북이도 있다. 거북이라고 해서 다 같은 거북이가 아니다.
둔테의 형상을 거북이로 선택한 이유는 거북이에 깃든 상서로움 때문이다. 거북이는 용, 봉황, 기린(목이 긴 기린이 아니라 날개 달린 신령스러운 동물)과 함께 사령(四靈)이라 부른다. 네 마리 영험한 동물이라는 뜻이다. 사령 중 거북이만 유일하게 실존하는 생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거북이가 그만큼 신묘한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 신묘한 능력 중 대표적인 것이 장수(長壽)다. 사람들은 거북이가 천년을 산다고 믿어 십장생으로 여겼다. 거북의 껍질을 이용해 길흉을 점쳤던 것도 장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고구려고분벽화의 사신도에도 거북이가 등장한다. 제왕의 출현을 기원한 ‘구지가’에도 거북이가 등장하고 비석과 탑의 받침에도 거북 형상을 쓴다. 청자와 백자는 물론 벼루, 연적, 필통 등의 문방구류, 문갑, 서안, 책장 등의 가구, 베갯모와 혼례복의 문양으로도 사용된다. 이순신 장군이 전함의 형상으로 굳이 거북을 선택했던 것도 당시 사람들의 믿음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빗장을 열다’라는 표현이 있다. 사람이나 단체가 마음이나 문호를 개방한다는 뜻이다. 반대말은 ‘빗장을 지르다’이다. 사람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감출 때 쓰는 말이다. 여는 행위가 공감과 소통을 뜻한다면 지르는 행위는 단절과 고립을 뜻한다. 대문은 열어야 할 때가 있고 닫아야 할 때가 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는 무엇을 위해 대문을 열고 또 무엇을 위해 대문을 닫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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