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인생밭이 나의 런웨이” > 정책소식 | 정보모아
 
정책소식

“82년 인생밭이 나의 런웨이”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btn_textview.gif



미스 유니버스 대회 세계 최고령 출전 최순화 씨
“1등을 했어야 했는데…. 멕시코에 못간 게 아직도 아쉬워요.”
지난해 가을, 최순화 씨의 목표는 국제 미인 선발대회인 미스 유니버스에 대한민국 대표로 서는 것이었다. 미스 유니버스 코리아를 뽑는 본선에 진출해 ‘베스트드레서상’을 거머쥐고도 그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 세계에 ‘K-그랜마더’의 저력을 과시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지난해 11월 멕시코에서 열린 ‘제73회 2024 미스 유니버스’ 출전권은 못땄지만 최 씨는 우승자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회 내내 그를 따라다닌 ‘지구촌 최고령 참가자’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그는 1943년생, 올해 나이로 여든 두 살이다. 대회 주최 측이 지난해 28세 이상 출전 금지 규정을 72년 만에 없앴음에도 80대 참자가는 최 씨가 유일했다. 미국 CNN, 영국 BBC, 프랑스 AFP 등 해외 유수 언론이 앞다퉈 그를 조명했다. ‘한국에서 가장 멋진 할머니(BBC 보도)’를 찾았다고. 최 씨의 매니저는 “며칠 전엔 일본 언론에서 인터뷰를 왔다”면서 “대회가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취재 열기가 계속되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올해로 8년 차 시니어 모델이다. 촬영차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 씨는 한눈에도 ‘모델 포스’를 풍겼다. 키 170㎝에 몸무게 55㎏.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는 물론이거니와 경력을 가늠케 하는 다채로운 포즈까지. 사진기자의 한마디에 척 하면 척, 디렉팅이 따로 필요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세월의 함박눈을 통째로 맞은 듯한 백발의 쇼트컷, 희고 얇은 피부가 드러나는 투명 메이크업, 표정에 따라 유연하게 굴곡지는 얼굴의 주름들까지 어느 것 하나 인위적인 것이 없었다. 머리 손질, 의상 코디도 모두 직접 한다고 했다. 평소 동대문에서 쇼핑을 한다는 그는 “비싼 옷은 안 사지만 오늘만큼은 좋은 옷을 입고 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소를 띤 주름진 얼굴에 볼우물이 깊게 파였다.



누가 봐도 모델입니다. 평소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요?
이 일 하면서 빵을 완전히 끊었어요. 그전에는 하루에 두 개씩 먹는 ‘빵순이’였어요. 어느 순간 뱃살이 두둑해져 있더군요. 지금은 한 달에 한 개나 먹을까. 집에선 스트레칭을 많이 해요. 내 나이엔 헬스 같은 건 힘들어 못하니까요. 대신 최대한 많이 걸으려고 하죠. 아무리 추워도 대중교통으로 다닙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매니저가 일곱 시간을 함께 걸어다닌 날 먼저 뻗었죠. 하하.
미스 유니버스 코리아 대회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화보도 찍고요. 할매 열정이 막 살아나요. 대회 나가길 참 잘했다 싶어요.
80대가 대회에 출전한 건 그야말로 이슈였습니다.
모델 에이전시에서 참가를 제안했어요. 처음으로 나이 제한이 없어졌다는데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구나 했죠. 망설임이요?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더 늙기 전에 나가야겠다,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주최 측에서도 고령자 참가를 환영했고요.
손녀뻘 참가자들 사이에서 기가 죽진 않았나요?
기가 죽긴요. 너무 재밌었어요. 나 다음으로 나이 많은 참가자가 50대 중반이었어요. 나이로는 내가 독보적이었죠. 속으론 ‘왜 할머니가 나왔나’ 생각했을진 몰라도 다들 너무 상냥하게 잘 대해줬어요. 60세 차이 나는 참가자랑 짝꿍이었는데 나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고 하더군요. 뿌듯했죠.
대회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요즘은 20대도 피부과 시술은 기본이라던데요.
S자로 워킹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모델이라도 평소에 연습을 안해두면 몸이 뻣뻣해지거든요. 특히 표정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외국 참가자들 보니까 이야, 표정이 너무 멋있어요. 혼자 거울 보면서 카리스마 있게도 했다가 밝게도 했다가 표정 연습을 많이 했어요. 시술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입술 옆의 주름을 당기며) 나도 이거 없애고 싶죠. 근데 내 눈에 예뻐보이면 뭘 해요. 남들 눈에 80대 할머니가 주름 하나 없으면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거예요. 20~30대 젊은이들이 피부과 시술을 뭣 하러 받아요. 아무거나 입고 발라도 예쁠 나이인데. 예쁜 걸 자기만 몰라요.
베스트드레서상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닐 텐데요.
대회에선 무작위로 드레스를 주고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봤어요. 내가 받은 건 흰색 레이스 드레스였는데 이게 너무 작은 거예요. 나보다 한참 마른 사람이 입었던 거래요. 수선을 했는데도 몸에 너무 꽉 껴요. 그걸 한 시간 넘게 입고 힘들었지만 표정은 밝게 했죠. 난 너무 높은 하이힐도 못신으니 최대한 허리를 꼿꼿하게 하고요. 자세만 발라도 몸매가 훨씬 예뻐 보이거든요. 다들 어깨, 허리 펴고 다니세요.
‘대한민국을 일으킨 건 한국 여성의 강한 정신력’이라는 연설도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딱 30초였어요. 그 짧은 시간에 뭘 말할까 한참 고민했죠. 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사를 온몸으로 다 겪었어요. 특히 우리 땐 나라가 너무 가난했어요. 길에 구걸하는 사람이 널렸고 굶어죽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죠. 지금 50~60대도 상상 못할 정도였어요. 그런 빈곤한 나라를 지금의 부강한 국가로 만든 건 한국 여성의 강인한 정신력, 정직한 도덕성 덕분이라는 걸 메시지에 담았어요.





평생 ‘사모님’ 소리만 듣고 살았을 법한 외모와는 딴판으로 그의 인생은 자갈밭이었다. 학교도 끝마치지 못한 채 취직한 방직공장에선 월급 1만 원을 벌기 위해 매일 12시간을 일해야 했고 평범한 행복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남편의 외도로 두 아들을 홀로 책임져야 했다. 인생 역전의 기회는 나이 일흔이 넘어서야 찾아왔다. 1억 원이 넘는 빚을 갚느라 간병인으로 일하던 때였다. “모델 한 번 해보세요”라는 한 환자의 말에 세월 속에 파묻혔던 꿈이 번개처럼 머릿속에 번쩍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 매일 밤 홀로 워킹연습을 했다. 어둠 속 터널 같던 병원 복도가 어느새 런웨이로 변했다.

젊은 시절 삶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쓰러지고 열아홉 살에 방직공장에서 일할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양털에서 실을 뽑는 일이었는데 12시간을 꼬박 서 있어야 했거든요. 그마저도 뒷돈으로 5000원은 줘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팔이 너무 아파서 2년밖에 하질 못했어요. 그 뒤에 소아과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는 건 좀 낫더라고요. 한때 장래희망이 간호사였거든요. 새하얀 옷이랑 모자 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그렇게나마 꿈을 이룬 것 같아 좋았어요.

그땐 모델할 생각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모델, 영화배우를 동경했어요. 내가 원조 ‘오빠부대’예요. 신영균·김지미 같은 배우들 촬영장엘 졸졸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도 내가 배우 할 생각은 못했어요. 그때만 해도 정식 오디션이란 게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 기준으론 미인도 아니었어요. 일단 눈이 작잖아요. 그땐 여자가 키가 큰 것이 흠이었고요. 결혼한 뒤엔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바빴죠.

몇 년 전까지 간병인으로 일했다고요.
50대에 이혼하고 혼자 애들 키우려고 간병인으로 일했어요. 간호보조원 경력이 있으니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더 늙어선 그만뒀는데 중간에 빚을 1억 원 넘게 지면서 그 돈 갚으려고 다시 시작했어요. 10년 넘게 한 것 같아요. 매일 환자 몸을 일으키고 눕히고. 일이 고될 때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어요. ‘세상의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보지 말자’ 하고. 그랬더니 다시 꿈이 찾아왔어요.

꿈이 어떻게 찾아왔나요?
내가 돌보는 환자가 어느 날 “모델 한 번 해보세요” 그러는 거예요.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간병인한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잘할 것 같다면서 권했어요. 고민만 1년을 했어요. 그러다 KBS ‘아침마당’에 시니어모델이 나온 걸 보고 곧장 모델학원에 등록했죠. 그때 월급이 150만 원이었어요. 학원비를 내며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생활에 엄청난 활력이 되더군요. 소리 안 나는 운동화를 사서 밤마다 병원 복도에서 워킹연습을 했어요. 외래병동은 밤이 되면 불이 다 꺼지거든요. 그러다 누가 나타나면 손 모으고 기도하는 ‘척’ 했죠.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저 여자는 왜 맨날 저러고 있나 하고(웃음). 빚더미 삶에서 날 일으킨 건 꿈이었어요.

70~80대에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몸이 재산인 일인데 힘들진 않나요?
몇 년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신진 디자이너들을 모아 패션쇼를 했는데 무대에 섰던 게 참 재미있었어요. 여자 시니어모델은 저 혼자였는데 젊은 친구들을 제치고 피날레를 장식했어요.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단 게 엄청난 복이죠. 제 무기는 ‘나이’예요. 이 나이에도 건강하게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모델워킹을 할 수 있다는 거요. 외신 기자들은 정신건강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봅니다. 사람이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면 정신도 늙잖아요. 내 비법은 ‘마음 청소’예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은 바로 털어버리고 해낼 수 있는 일은 바로 해버려요. 남들은 웃을 일만 있는 줄 알죠.

갈수록 수명은 늘어나는데 사람들은 늙는 걸 두려워 합니다.
시니어들이 나이듦의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하는데 사회는 점점 더 젊어져라, 예뻐져라 하고 강요해요. 누구나 저처럼 모델이 될 수는 없지 않냐고요? 세상이 나를 주목하는 건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에 그 이유가 있는 거죠. 은퇴 후에도 뭐가 됐든 일을 해야 해요. 봉사활동도 좋고요. 뭐든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인생에 즐거움이 와요. 삶을 긍정하고 작은 것에도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몸은 누구나 다 늙어요. 마음이 젊어야 돼요.

남은 인생, 최 씨의 목표는 해외에 진출해 외국 모델들과 나란히 서는 것이다. 올해 94세인 미국의 세계 최고령 현역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가 그의 롤모델이다. 몇 살까지 활동하고 싶냐는 물음에 최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정해진 때는 없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나이에 상관없이 무한대로!”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