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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최강 무기는 仁義禮智 어떤 세상 만들어갈지 함께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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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 최재붕 교수가 말하는 디지털 권리장전
9월 25일 정부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디지털 권리장전이란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제정돼야 할 윤리·규범을 규정한 헌장이다. 왜 지금 이런 헌장이 필요한 것일까?
책 ‘포노 사피엔스’를 쓴 국내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기계공학부 교수)은 먼저 디지털 권리장전의 전문을 짚었다.
“지금 인류는 디지털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이 이끄는 문명사적 변혁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사회 모습에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면서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규범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신기술로 인해 새로운 표준, ‘뉴노멀’이 형성됐다. 자유와 인권이 나날이 신장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그저 기술의 발전만 꾀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중시하며 발전을 이끌 것인지 질문을 던질 시점이 됐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을 제정하기 위해 마련된 각종 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물론 전문가 논의체인 ‘디지털 소사이어티’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다. 시간을 쪼개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까지 디지털 신질서를 정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명확하다. “결국은 우리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가?
인류는 늘 발전해왔지만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질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에는 소수의 기성세대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리더 역할을 했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시민이 유사한 권력을 지니고 힘을 나눠 갖는다. 이 상황에서 여러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짜로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그저 내버려두지 말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디지털 신질서가 우리 사회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가?
거기에 더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고 있는지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 한 가지 물어보자. 디지털 시대가 마냥 반가운가? 두렵지 않나?

조금 두렵기도 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사회를 반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규제가 생긴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맨 처음 차량 공유 서비스가 도입됐을 때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각종 규제로 서비스 도입을 막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는 일이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표준’이 바뀐 것이다. 바뀐 표준이 바로 디지털 시대다.
미래지향적으로 보자면 바뀌고 있는 우리 주변의 환경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도입할 것인가? 도입한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입할 것인가? 그런 문제에 대해 국민적인 이해와 설득, 합의가 필요한데 디지털 권리장전이 기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권리장전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디지털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그 기간 동안 개인의 인권은 나아졌을까? 나빠졌을까?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갈등이 거듭되고 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그 갈등마저 이슈가 되지 못했다. 인종차별은 당연한 것이고 여성에 대한 폭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디지털 사회에서는 감출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됐다.
인류 역사 전체를 볼 때 자유는 점점 확장돼왔다. 특정인이 권력을 갖고 대중을 지배하는 정치 형태에서 시민의 힘이 강해지는 민주주의로 성장해온 것이다. 디지털은 그 흐름 속에 탄생한 것이고 그 흐름을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디지털이 더 확산될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결국 인류는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에는 보장받아야 하는 자유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한편으로는 디지털을 두려워하는 대다수의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디지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관련, 디지털 격차 문제가 디지털 권리장전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디지털 격차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최근 10년간 디지털 전환을 가장 강력하게 이끈 것은 코로나19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세 가지다. 굶주림과 전쟁, 그리고 질병. 코로나19는 생존의 문제로 디지털을 일상 속에 끌어들였다. QR코드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르신들이 QR코드를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비대면 거래 방법을 익혔다. 코로나19가 뉴노멀을 만든 것이다.
디지털 격차는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이 익숙해질 수 있는 이런 뉴노멀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 권리장전과 같은 지침이 필요하다. 디지털 신기술을 발전시키되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뉴노멀이란 무엇인가? 팬데믹에서 벗어나 ‘엔데믹’을 선언한 지금 코로나19로 생성된 뉴노멀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나?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요즘 첨단산업을 이끌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도심지)이 슬럼화됐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서울 광화문 같은 도심지의 빌딩 공실률이 40%에 달하고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로 촉발된 것이다. 코로나19는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했다. 비싼 샌프란시스코의 월세를 감당하면서 굳이 도심지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라고 본다.
재택근무는 이제 보상같이 주어진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려면 좋은 근무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재택근무는 그 조건 중 하나다. 그렇다면 재택근무 환경에 수반되는 비대면 소통방식, 탈중앙화된 근무지 같은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찬가지로 챗GPT 같은 인공지능(AI) 비서는 점차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요즘은 비서를 두지 않는 리더도 많다. 커피야 본인이 타서 마시면 되는 거고 스케줄 관리는 AI가 대신 해준다. 취향은 세분화된다. 사람들은 각자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인다.
이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연대감을 주고 공통의 목표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권리장전이다.

연대의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인의예지(仁義禮智)다. 디지털 시대에도 인의예지 덕목은 필요하다. 아니 더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디지털 시대에는 특정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예전에는 사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권력자이거나 언론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나 다 사건 내용을 접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권력을 얻으려면 언론이 아니라 대중을 통제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권력을 가질 수 있는데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선한 영향력’이다. 선한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성의 기본이 되는 인의예지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를 들어 재능이 뛰어난 스포츠 스타가 있다고 하면 예전에는 실력만으로 다른 인성 문제를 덮을 수 있었다. 보도만 안 되면 넘어갔다. 그러나 이제는 스타의 인성, 휴머니티를 보고 대중이 팬덤을 접어버리는 상황이 가능하다. 학교폭력이나 음주운전 문제에 더 민감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인의예지를 중시하게 되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인의예지가 예전 사회의 인의예지와 같은 것인가?
도구는 달라져도 인간의 심성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의예지 덕목은 더욱 강조된다. 인의예지가 맨 처음 등장한 사회에서는 인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유가 확장되고 권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휴머니티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 녹음 한 번, 촬영 한 번으로 폭로되는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에 맞는 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예전 사회에 맞는 교육 방법, 그 사회에서 보장받는 권리 같은 것은 헌법에 나와 있다. 디지털 시대의 헌법은 바로 디지털 권리장전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규범과 달라져야 하는 규범을 챙겨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의 제정, 즉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것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보인다.
우리가 환경 문제를 얘기할 때 ‘자손들이 쓸 환경을 우리가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니 깨끗하게 쓰고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도 그와 같다.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게 될까?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모들은 종종 아이들이 디지털을 가까이 하는 것을 염려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요즘 아이들의 롤모델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테슬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다. 챗GPT를 만든 회사 Open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다. 샘 올트먼은 8세부터 코딩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이미 천재 프로그래머였다. 또 있다. 루미나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1995년생 오스틴 러셀은 얼마 전 미디어그룹 포브스를 인수했다. 오스틴 러셀은 10세 때 소프트웨어 컨설팅을 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디지털이 통제되거나 조절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이 디지털에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쓸 수 있는지를 정하는 것이 디지털 권리장전이라는 얘기인가?
바로 그렇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우리가 회피하고 있었던 논의와 합의를 진행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디지털을 두려워한다. 기존의 산업 영역을 침범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돼야 하는지, 스타트업이 진출하는 분야의 규제를 없애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해 기준점을 마련해주는 것이 디지털 권리장전이다.

디지털 권리장전을 제정하는 것이 진정한 디지털 사회로 가는 시작점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길이 험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인의예지, 즉 휴머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한국어는 감정 표현이 매우 풍부하다.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고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데 한국만한 문화권이 없다. 그게 요즘 K-컬처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사회를 열고 번영을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우리가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권리장전을 통해 뉴노멀을 정착시키고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효정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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