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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도심이 만나는 곳 시선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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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불암산 엘리베이터 전망대
새해가 되면 더 높이 올라가고픈 인간의 심리가 강해진다. 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이런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지 산에 올라 세상을 조망하며 희망찬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신년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게 정초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를 꼽을 때 전망대를 빼놓을 수 없다. 전망대는 뚜렷한 목적성을 띤 공간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공간이다. 인생을 비추는 거울처럼 우리에게 높은 곳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광각의 시야를 주고 대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임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일차적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장소라는 기능이 강조되는 시설이지만 최근 들어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개성 있는 전망대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전망대 자체가 명소가 된 곳들이다. 몇 해 전 서울 노원구에 들어선 ‘불암산 엘리베이터 전망대’는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고정관념을 깨다
불암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자락에 위치한 불암산 힐링타운 둘레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이 전망대는 여러 면에서 고정관념을 깨는 건축물이다. 우선 네모반듯한 형태를 벗어난 디자인부터 파격적이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된 데크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아메바처럼 생긴 높이 10m 남짓한 비정형 구조물이 등장한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전망 데크의 하부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돼 있어 산책로를 걸을 때는 보이지 않는 주변 풍경이 비친다. 공간감이 확장되며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미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덕분에 작은 규모의 건물(대지면적 277.117㎡, 연면적 143.57㎡)이지만 멀리서도 존재감을 또렷이 발산한다. 이 전망대는 독특한 조형미와 기능성을 갖춘 훌륭한 건축작품으로 인정받아 ‘2021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불암산 전망대는 기하학적 형태와 실험적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그룹 운생동(대표 장윤규·신창훈)의 작품이다. 운생동은 2001년부터 24년간 문화 콘텐츠로서 건축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구하는 ‘개념적 건축’을 선보여왔다. 대표작으로 예화랑, 생능출판사, 서울대학교 건축대학, 서울시립대 법학과, 성동문화복지회관 등이 있고 아키텍추럴 리뷰 어워드(Architectural Review Award), 건축문화대상, 서울시 건축상, 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한 한국 대표 건축그룹 중 하나다.



산속 문화예술 놀이터
불암산 전망대의 키워드는 ‘산속 문화예술 놀이터’다. ‘전망대는 자연을 만나고 도시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유희와 조망을 위한 공간이라는 기능적 역할뿐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이 깃든 파빌리온’이라는 콘셉트에서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전망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파빌리온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색다른 풍경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프로젝트의 영문 타이틀 ‘IMAGINATION CIRCLE(상상력을 담은 원)’에는 이 같은 설계 의도가 담겨 있다.
프로젝트를 발주한 노원구에서 건축가에게 명확히 요구한 사항은 딱 하나였다. 장애인도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외출에 제한이 있는 장애인에게 산은 요원한 꿈의 장소다. ‘보행이 불편한 이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전망대’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생동은 “무(無)장애 전망대”라는 개념을 상정했다.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엘리베이터를 공간의 중심에 둬야 했다. 편의성을 위한 장치지만 건축적으로 볼 땐 디자인 제약이 있었다.
고심 끝에 완만한 나선형 계단을 엘리베이터 양쪽으로 링처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통 계단을 하나만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망대에 계단 두 개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오를 때와 내릴 때 서로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유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산책의 즐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게 하고 싶다”는 건축가의 의도가 담긴 디자인이다. 여기에 전망대를 지지하는 구조 기둥과 전망대 하부의 반사형 스테인리스 천장은 불암산 풍경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조리개로 작동한다.
건축가들이 중점을 둔 또 하나의 요소는 지역 커뮤니티였다. “산책로를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공간이면서 지역주민도 애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생각했다. 산책로의 정점에 설치되는 불암산 전망대는 가벼운 산책의 종점이면서 자연과 도심이 새로운 시각에서 연결되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이다. 특히 주민들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놀이터면서 숲속을 거니는 파노라마형 수직 산책로라고 생각했다.” ‘숲과 하늘을 담고 즐기는 시적 공공 파빌리온이자 신비로운 조형으로 자연을 품은 매력적인 산속 전망대’라는 기본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다.



“공공 건축의 목표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전망대 데크는 산, 하늘, 도심과 교감하는 장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10m 정도 높이 전망대에 올라가면 불암산의 장엄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암산(佛岩山)’은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여승의 모자를 쓴 부처 모습 같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남산서울타워, 북한산, 도봉산, 잠실 롯데월드타워 등 서울 도심의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불암산은 낮지만 육중한 돌산이며 골짜기의 선과 나무 군집이 다채롭다. 불암산과 도심 뷰를 최대한 확보하고 가까이 접근하게 하기 위해 전망 데크를 유선형으로 했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자연과 감상자의 거리가 줌인·줌아웃 되면서 다양한 각도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섬세하고 감성적인 접근 덕에 불암산 전망대엔 ‘시적(poetic)’이라는 수식이 따른다.
운생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는 동시에 매년 두세 개의 소규모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공공 건축의 목표는 관광명소를 짓는 것이 아니다. 전시행정을 위한 건축도 아니다. 규모는 작을지라도 지역 커뮤니티가 색다른 건축을 경험하게 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공공 건축이다.” 산속 작은 전망대가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이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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