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핑계가 될 수 없어 비보이에게 넘어짐은 익숙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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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 비보이’ 김완혁
“극복했다는 표현보단 수용했다, 혹은 적응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장애’하면 주로 극복이란 단어가 붙는데 장애에 대한 편견을 무의식적으로 키우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장애를 입은 지 올해로 11년차인 ‘외발 비보이’ 김완혁입니다.”
2013년 5월 새벽이었다. 김완혁(33) 씨는 산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중고 스쿠터를 몰고 강원도 원주 집에서 나와 강변도로를 내달렸다. 갑작스럽게 만난 커브길에서 시속 100km를 넘긴 스쿠터를 멈춰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대로 인도 경계석을 밟고 튕겨 나가 전봇대에 다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오른쪽 다리를 잃어버렸다.
병원에 입원한 두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다. “의족만 착용하면 다리 한 쪽 없는 것을 감추고 걸어 다닐 수 있다더라”는 이야기가 주였다. 완혁 씨 또한 그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족 뼈대를 가리기 위해 ‘커버’를 씌우자니 의족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어려웠고, 의족 뼈대를 드러내고 다니기엔 그가 감내할 시선의 무게감이 너무 컸다. 조금이라도 땀을 내면 의족이 툭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퇴원 이후 1년을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떠올렸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 프로 비보이 선수를 꿈꿀 만큼 춤을 좋아했던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원래 생활하던 공간으로 오니까 알겠더라고요. 일상 곳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의족에 적응하기 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어요.”
“춤을 추려면 돈을 벌자”
고민 끝에 서울행을 택했다. 직장을 구하든 비보잉을 하든 서울에 가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 관련 학과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웹디자인 기능사와 포토샵 자격증부터 땄다.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춤을 추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수업 현장을 촬영하는 영상 기사로 일하면서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연습실로 향했다.
“제 잘못으로 사고를 내서 다친 거잖아요. 춤추러 서울로 가겠다는 얘기를 가족들에게 꺼내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2년 동안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일을 구하겠다면서 부모님을 설득시켰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 비보이 팀에 들어갔다. 2014년 SBS <스타킹>, <세상에 이런 일이> 섭외를 계기로 2015년 KBS <아침마당>, 2018년 등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모 기업 광고까지 찍었다. 2017년 전국 아마추어 비보이&걸스 힙합페스티벌 우승, 2018년 원주 다이내믹 댄싱카니발 최우수상 등 여러 대회에서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가 내내 비보이를 해온 건 아니다. 학창시절 유난히 내향적인 성향이었지만, 텀블링처럼 난이도 높은 동작을 보여줬을 때 깜짝 놀라는 친구들의 표정이 반가워 비보잉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유명한 비보이’를 목표로 춤을 추다가 대학생이 된 뒤로 “내 삶의 일부, 개성 정도”로만 춤을 췄다고 했다.
“다리를 잃어 불쌍한 사람, 안타까운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해보고 싶었고 그 중 가장 강력하게 하고 싶은 게 춤이었어요. 어느 정도 할 줄 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떠올린 면도 있지만, 장애를 가진 해외 비보이들을 많이 본 기억도 났어요. 다치기 전에 소아마비 비보이를 보면서 ‘저 사람은 다리가 가벼우니까 저런 동작들이 가능하겠구나’ 했었는데, 제가 핸디캡을 안고 보니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동작은 상체를 거꾸로 세우는 형태다. 의족을 착용하기 전과 착용한 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동작이기도 하다. 반대로 제일 어려운 동작은 리듬을 타야하는 스텝이다. 그가 착용하는 의족의 체감 무게는 4~5kg 정도다.
“처음부터 다리가 하나였다면 좀 더 자연스러운 춤을 출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20여 년간 두 다리로 춤을 췄기 때문에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요. 여전히 꿈에선 두 발로 춤을 춰요. 한편으론 비보잉을 한 덕분에 의족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비보이에게 넘어지는 건 익숙하잖아요. 과감하게 걸었던 것 같아요. 이제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
‘시선’은 여전히 힘들지만…
그는 계단 오르내리기, 속도 높여 걷기, 게다가 외발 비보잉까지 익숙해졌지만 ‘시선’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의족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고 등 뒤에서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어요. 가장 최악은 맞은편 승객이 제 다리를 보면서 본인 발목을 시큰거려 하거나 갑자기 발목 스트레칭을 할 때에요. 그러면 저는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잊으려고 노력해요. 일부러 챙이 깊은 모자를 써서 제 시야를 가리기도 하고요.”
그는 비보이 활동 외에도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유튜브 채널(곰감동님) 등을 통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그에게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하나, 그는 “무엇을 하든 장애를 핑계 삼고 싶진 않다”고 했다.
“누구나 살다보면 힘든 날도 좋은 날도 생기잖아요. 제게 장애는 수많은 굴곡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5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외발인 내가 엄청난 춤 기술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일까,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 제가 주위 시선을 굉장히 신경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웃음). 결론은 제가 진심으로 즐기고, 저를 보는 사람들이 덩달아 즐겁다면 그게 정답 아닐까요?”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섰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두 팔을 땅바닥에 단단히 붙인 후 물구나무 자세로 두 다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의족이 훤히 드러났다.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모습에 집중했다. 놀란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던 김 씨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한 ‘정답’의 순간인 것 같았다.
이근하 기자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제도는?
“보조기기 구입비 90%까지 지원”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등록된 장애인인 가입자 및 피부양자가 장애인보조기기를 구입할 경우 그 금액의 일부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보험급여비로 지급한다. 해당 품목은 보조기기 8분류 75개 품목, 소모품 12개 품목으로 구입금액의 9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전동보조기기(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이동식 전동리프트), 자세보조용구는 기준액, 고시금액, 구입금액 중 최저금액(지급기준금액)의 90% 해당하는 금액이 지원된다. 국민건강보험 전국 각 지사 및 출장소에 방문하거나 우편, 팩스로 접수할 수 있다.
보조기기
8분류 75개 품목
의지·보조기, 휠체어, 전동스쿠터, 자세보조용구 등
소모품 12개 품목
전동휠체어·전동스쿠터용 전지, 넓적다리, 무릎관절, 종아리, 발목의지 소켓(일반형, 실리콘형), 실리콘 라이너
자료 국민건강보험 누리집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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