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할머니 고집이 손녀로 이어져 대기업 명함 던지고 ‘100년 가게’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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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소상공인 파이널 오디션’ 오른 임국희 용마루 대표
예나 지금이나 이 식당의 상차림은 변한 게 없다. 다만 상을 내오는 사람만 바뀌었다. 할머니를 꼭 닮은 손녀로.
50여 년 전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에는 ‘빅3’ 식당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중 한곳에서 찬모로 일했다. 요즘으로 치면 ‘헤드 셰프’다. 자신의 손맛 때문에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할머니는 1971년 직접 식당을 열었다. 그리고 백반과 닭볶음탕, 백숙을 팔았다. 닭볶음탕에는 엿기름을 우려내 직접 담근 고추장을 썼다. 백숙 육수는 하루 네 시간씩 다렸다. 시래기, 취나물 등 각종 나물과 반찬 역시 직접 담근 된장·간장으로 무쳤다.
임국희(38) 용마루 대표는 “생전 할머니는 굉장히 엄격하고 대쪽 같은 분이셨다”면서 “그 고집과 장맛이 3대째 이어져오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어깨너머로 가게 앞마당에 놓인 20여 개의 장독대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대신 ‘안녕하세요’
남한산성면에 자리한 용마루는 닭요리 전문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테이블 8개의 아담한 식당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약 반세기의 대장정을 품고 있다. 2022년 ‘백년가게’로 지정됐다. 백년가게는 고유의 사업을 장기간 계승·발전시키는 업력 30년 이상의 소상인을 대상으로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매년 업력, 경영철학,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라 가업승계, 사회공헌 등 다양한 부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깊은 역사만큼 단골도 많다.
“며칠 전에는 여든 살 넘은 손님이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30대 때 남한산성을 올라왔는데 눈이 많이 와서 다른 집은 다 문을 닫았더래요. 그런데 할머니만 가게 문을 열어놓으신 거죠. 지금 밥 먹을 수 있냐고 했더니 할머니가 우선 숨 좀 돌리시라며 직접 담근 식혜를 내어줬대요. 손님께선 그 식혜 맛을 일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임 대표는 “할머니의 유산처럼 식당 운영에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접객”이라면서 “맛은 기본값”이라고 했다. 이날 추운 날씨를 뚫고 온 손님들에게 임 대표는 일일이 따뜻한 잎차를 내주며 ‘몸 좀 녹이시라’고 했다.
“맛은 우리의 정체성으로 절대 타협이 있을 수 없어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다? 아니요. 맛은 트렌드화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저희 음식이 입에 맞아 계속 와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요. 맛은 기본이고 손님들이 환대 받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손님이 오셨을 때 ‘어서 오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래야 손님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넬 수 있거든요.”
외국계 회사 나와 가업 승계 결심
임 대표는 한때 외국계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직원이었다. 2013년 첫째, 2015년 둘째를 낳았고 스피치코치로 2막을 열기도 했다. 남한산성면에서 나고 자라 대도시의 삶을 꿈꿨지만 어쩐지 자꾸 용마루가 눈에 밟혔다고 한다.
“가업 승계의 무게감은 컸죠. 거듭된 고민 중 친구들의 조언이 크게 한몫했어요. 회사에서 쌓은 10여 년의 경력은 단순히 10년일 뿐이지만 할머니의 뜻을 잇는다면 그 가게는 100년이 갈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2021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비단 임 대표뿐만이 아니다. 할머니의 고집을 지키기 위해 앞서 어머니가 먼저 터를 잡고 있었다. 임 대표가 경영과 테이블 담당이라면 어머니 백승옥 씨는 음식을 담당한다. 정식 11찬에 기본반찬 6가지까지 17가지는 어머니가 전담한다. 결코 남의 손은 빌리지 않는다. 임 대표는 “엄마는 여섯 명의 며느리 중 할머니의 식당에서 버텨낸 유일한 분”이라면서 “그렇게 약 30년간 할머니의 식당을 도우며 음식을 배우셨다”고 했다. 백 씨는 “어머니는 매일 새벽 6시면 식당에 나와 음식을 준비하셨다”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뒤끝은 없으셨다”며 웃었다.
모녀가 함께 운영하다보니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 어머니가 양보 못하는 건 ‘홍보’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블루리본 서베이에 수록됐지만 이를 미디어에 알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포털 리뷰 이벤트 포함 광고는 일절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손님과 우리는 함께 맞춰가는 관계인데 광고만 보고 왔다가는 그 기대치를 따라야 하고 그러다보면 분명히 실망하는 지점이 생긴다는 거죠. 제가 오고 나서 방송에 딱 한 번 나갔는데 엄마의 오랜 애청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마저도 2주일간 설득했답니다.”
강한 소상공인 파이널 오디션
임 대표는 “힘든 길 가기 싫어 가업을 이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2024년 9월에는 소상공인 성장지원 사업(강한 소상공인 파이널 오디션)에 ‘백년가게·소공인 유형’으로 참가해 최종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기부가 유망한 소상공인들을 발굴해 창작자, 스타트업과 협업해 독특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임 대표는 이를 통해 용마루의 경쟁력과 상생경영을 알렸다. 그는 “용마루는 계약 재배를 통해 농가의 판로를 확보 중이며 지역의 젊은 일꾼을 고용 중”이라면서 “과거 아버지가 남한산성면 마을 이장과 상인회장을 하며 지역 아동들의 장학금을 조성하고 남한산초등학교의 폐교위기도 막은 만큼 용마루 가족의 지역사회 기여도 또한 크다”고 했다. 그 결과 노후화 인테리어 및 밀키트 패키지 디자인 비용 42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오디션에 참가해보니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정진하는 소상공인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서로 경쟁하지 않고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정부에서 꾸준히 관심만 가져준다면 소상공인들은 나이가 적든 많든 업종이 뭐든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을 사람들이에요.”
용마루는 앞으로 ‘찐’ 100년 가게를 목표로 한다. 임 대표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장성하면 가게를 물려줄 생각도 있다고 한다. 임 대표는 “아이들이 식당에 학교 선생님들을 모시고 오고 바쁠 때는 카운터도 본다”면서 “‘용마루 손주’가 적힌 명찰도 만들어줬다”고 했다.
“앞으로 세대를 거듭하더라도 ‘든든한 밥집’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힘들 때 혹은 기쁠 때 언제든 오시면 두둑한 밥 한 끼는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3대가 경영하려면 3대가 모두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해요. 엄마가 가끔 말씀하세요. ‘네 할머니 덕에 이런 손맛을 배웠고 그걸 물려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요. 그 말을 듣는 저도 뭉클해지면서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박지현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
미슐랭·블루리본 넘보는 브랜드로 키운다
백년가게는 고유의 사업을 장기간 계승·발전시키는 업력 30년 이상의 소상인과 중소기업을 의미한다. 백년소공인은 장인정신을 가지고 한 분야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있는 업력 15년 이상의 우수 소공인을 일컫는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매년 업력, 경영철학, 제품·서비스뿐만 아니라 가업승계, 사회공헌 등 다양한 부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한다. 백년가게와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되면 현판과 성장스토리가 담긴 스토리보드를 지원받고 온라인 판로와 시설 개선 등 성장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온라인 판로 지원사업을 통해 입점 지원, 라이브커머스 등 온라인 진출 관련 기초교육부터 입점판매 전반에 대한 전문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2024년부터는 지속가능한 백년가게·백년소공인 혁신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선도형(재지정)’이 신설돼 지원 금액도 높아졌다. 스마트오더, 디지털사이니지 등 스마트기술 도입과 프랜차이즈화 지원 등 지원내용도 확대됐다.
중기부는 2018년부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소상공인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백년소상공인 제도를 추진 중이다. 지난 7년 동안 지역의 대표 맛집, 전통공예 소공인 등 2313개의 백년소상공인을 발굴·지원하며 우수 소상공인의 대표 모델로 현장에 안착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대국민 상표(브랜드) 인식조사 결과에서는 ‘백년가게’ 상표가 미쉐린가이드나 블루리본, 착한가게 등 유사 인증제도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것으로 나왔다”면서 “백년소상공인 정책이 우수 소상공인의 대표 상표로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기부는 앞으로 백년소상공인 지원체계 고도화, 지역대표 상표화 및 대국민 인지도 확산, 국제화(글로벌화) 촉진, 민·관 상생협력을 통한 상표 역량 강화, 현장소통 및 성과 확산 강화, 제도 기반 확충 등 네 개의 세부 전략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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