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과 정약용의 실학이 만났다 세계적 걸작에 숨은 비밀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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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다시 보기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은 조선의 22대왕 정조(이산)의 도시다. 정조가 작정을 하고 만든 곳이자 조선시대 문화의 전성기에 탄생한 곳이다. 이야기는 영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론의 힘을 얻어 왕위에 오른 영조는 나이 마흔에 장조(사도세자)를 얻었다. 3세 때 이미 <효경>을 외우고 7세 때 <동몽선습>을 떼었을 만큼 영특했던 장조는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됐다. 10세가 되던 때부턴 정치에 관심을 보이며 집권세력인 노론들의 신임사화(1721년 신축옥사와 1722년 임인옥사를 이르는 말)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비극적인 운명의 시작이었다. 1761년 소론을 비호했던 장조를 내몰기 위해 노론파의 나경언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하기에 이른다. 영조는 아들을 쌀뒤주에 가두고 8일 만에 굶겨 죽인다. 장조의 나이 28세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정조는 25세에 영조의 대를 이어 즉위한다. 정조는 집권 초기에 홍국영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노론과 소론을 공평하게 기용하는 탕평책을 이어나간다.
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풍수지리적으로 좋다는 경기도 수원시 화성으로 옮기고 자주 찾아볼 수 있도록 행궁을 짓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치적으로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창덕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 건축의 비밀
지금도 놀랄 만한 건축 기술이 수원화성 곳곳에 남아 있다. 먼저 둘레 5.5㎞, 높이 4m에 이르는 거대한 성과 함께 행궁을 짓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28개월이란 사실은 믿기 어렵다. 게다가 저마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성문과 48개에 이르는 각종 부속시설은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어졌다. 200년 전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비밀은 수원화성을 설계한 실학의 아버지 정약용의 과학에 숨어 있다. 무거운 돌을 옮기기 위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거중기(지금의 기중기)를 사용함으로써 작업능률을 5배나 높였다. 노역의 대가도 일정한 기본급에다 성과급을 더해 사기도 끌어올리고 노동력을 고취시켰다. 마을을 이룬 성읍과 전쟁을 위한 산성의 기능을 조합해 만들어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성벽과 담 사이 미석(눈썹돌)을 사용, 비나 눈이 틈으로 스며들어가 팽창·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구불구불하게 아치를 그리며 성벽을 쌓아 강도를 높였다. 또 성벽을 측면에서 보면 허리가 잘록하도록 만들어 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얼마나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만든 걸작인지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형식의 수원화성은 원형이 아닌 복원 문화재인데도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의 솔선수범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대역사 뒤에는 사실 정조의 백성사랑이 있었다. 무더위엔 지치지 않도록 척서단(더위 먹은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복용하는 환약)을, 겨울엔 털모자를 나눠줘 백성을 감동시켰다. 화서문에 관한 일화는 정조의 마음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처음엔 팔달문과 장안문이 남북으로 마주하고, 창룡문과 화서문이 동서로 마주보도록 설계됐는데 화서문을 만들면서 민가를 헐어야 했다.
정조는 “성벽을 세 번 구부렸다 펴더라도 저 백성을 성 안으로 들도록 하라”고 지시해 결국 화서문 위치를 옮겼다. 덕분에 성벽도 5.5㎞로 늘어났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과 힘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불취무귀’에 담긴 정조의 백성사랑
수원화성 둘레길은 원점회귀 코스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없지만 차량을 이용해서 찾는 사람이라면 주차가 편리한 곳이 좋다. 남수동 공영주차장, 연무대 공영주차장, 연무동 공영주차장, 화홍문 공영주차장, 장안동 공영주차장, 화성행궁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할 수 있고 요금은 비슷하다. 다만 성 안쪽 주차장은 만차인 경우가 많고 바깥쪽이 이용하기 더 수월한 편이다.
수원천은 수원화성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북쪽의 수문인 화홍문은 남수문과 더불어 아름다운 야경이 매력적이다. 북동포루를 지나면 수원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에 닿는다. 성문 바깥쪽에 반달 모양으로 쌓은 옹성이 특별하다. 팔달문과 더불어 웅장한 기세가 위풍당당하다. 장안공원을 따라 북포루와 서북 공심돈을 지나면 화서문이다. 수원화성의 서문 격이지만 성을 지을 당시 주변 민가를 성 안쪽으로 들이기 위해 위치를 서북쪽으로 이동했다.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됐다.
10월이면 서북각루 바깥쪽에 억새가 꽃을 피워 운치 있는 가을 풍경을 선물한다. 화서문부터 서장대까지는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성벽 바깥 길은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숲길이다. 10분 정도 오르면 수원화성에서 제일 높은 서장대가 눈에 들어온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행궁의 모습과 더불어 수원 시내의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서포루를 지나 서남암문에 닿으면 삼거리를 만난다. 직진하면 서남각루인데 막다른 길이라 되돌아 나와야 한다. 왼쪽으로 가면 수원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으로 내려가게 된다.
팔달문을 나서면 두 개의 전통시장을 지나는데 ‘팔달문시장’과 ‘지동시장’이다. 팔달문시장은 수원화성의 역사와 함께한다.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영동시장과 더불어 ‘왕이 만든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백성을 위한 이용후생의 방도를 고민하던 정조는 팔달문 주변에 시장을 만들고 경제의 중심지로 이끌었다. 지동시장은 100년 전 보부상들의 활동무대였다. 지금은 순대, 곱창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 많아 ‘순대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지동시장 입구에는 정조대왕이 술상 앞에 앉아 술을 따르는 동상이 있다. 불취무귀(不醉無歸), 즉 ‘취하지 않으면 집에 가지 못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정조가 기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했던 말로, 백성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거중기, 활차, 녹로 등 새로운 장치를 만들고 동서양의 축성 기술을 접목해서 만들어낸 수원화성은 18세기 과학과 건축은 물론 예술적 측면에서도 절정을 이룬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미국 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곳’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이니 천천히 걸으며 그 섬세함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
10월까지 야간개장
실제 성곽 둘레길은 총 길이가 약 7㎞에 이른다. 느긋하게 2시간 30분 정도면 가능한 코스다. 특별한 체험으로는 창룡문 인근에 있는 플라잉수원이다. 애드벌룬을 타고 150m 높이까지 올라가 수원화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운영돼 해질 무렵이나 밤 풍경을 즐길 수도 있으니 도전해보자. 수원화성의 어차는 순종황제가 타던 자동차와 국왕이 탔던 가마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진 관광열차다. 연무대에서 출발하는 순환형과 행궁에서 출발하는 관광형 두 가지가 있다. 매표는 당일 예약은 어려울 수 있으니 미리 예매하는 것이 좋다. 행궁의 야간개장도 볼 만하다. 5월부터 10월까지, 오후 6~10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주간 관람은 연중 무휴지만 야간개장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이 휴무다.
수원화성 안쪽에 있는 행궁동의 카페거리 행리단길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소품숍이 골목마다 숨어 있어 눈과 입이 즐겁다.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벽화마을을 만난다. 포토존으로 사진 찍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조선시대와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수원화성과 행궁의 꽉 찬 하루 여행은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박동철
<여행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대한민국 주말가족여행> <사진의 구도 구성> <슬로시티 걷기여행> <신께서 허락한 나만의 별> <베트남 사진여행> <가볼까 두근두근 문화유산 여행> 등 40년을 넘긴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책을 집필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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