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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할 고민이 있나요? 생명사랑택시를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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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택시기사 이상길 씨
“아저씨, 타도 될까요…?”
밤 9시가 넘은 시간 지하철 1호선 부평역. 커다란 쇼핑백을 든 여성이 택시를 잡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보통은 행선지를 말하는데 여성은 타도 되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상길 기사는 일단 승객을 안심시켰다.
“그럼요. 타셔도 되지요. 짐은 트렁크에 실어드릴까요?”
일단 인천 검단 쪽으로 가자는 말에 서서히 차를 움직이자 통화 소리가 들렸다. “언니… 나 정말 언니네로 가도 돼?” 통화를 마치자 이 기사는 말을 걸었다. “손님,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요?” 침묵 끝에 승객이 답했다. “아저씨 고민이 있는데 이야기해도 될까요?”
승객은 최근 금융사기를 당했고 파혼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집에서도 이해받지 못한 서러움에 그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집을 나온 길이었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택시를 탔다고 했다.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이 기사의 말에 승객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승객의 동의를 받아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시간을 잡은 뒤 그의 명함도 건넸다.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승객이 내리며 말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는데 고맙습니다.”
이 기사가 2019년 경험한 이야기다. 그는 2018년부터 생명사랑택시 기사로 활동 중이다. 생명사랑택시는 2017년 시작된 사업으로 힘들거나 자살 위험이 있는 승객을 조기에 발견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기관으로 안내한다.
그의 택시에 타는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하루에도 30명이 넘는 이들이 택시 안에 머문다.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이상 이 좁은 공간 안에 승객과 기사만 남는다. 이 기사는 승객이 타면 운전을 하면서 혹시 승객에게 이상징후가 보이지 않는지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됐다. 목적지가 한강다리, 공동묘지이거나 새벽 또는 한밤에 엉뚱한 곳으로 가자는 사람은 더 주시해 말을 건다.
마음 터놓을 곳이 없어 막다른 골목을 향해 가던 누군가에게 택시 안은 안전한 대나무숲이다. 그는 앞서 말한 ‘부평역’ 승객은 인천광역시자살예방센터의 도움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센터와 연계해 전문기관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생명사랑택시 스티커도 보이지만 ‘무사고 인증’도 보이네요.
2004년부터 택시 운전을 했는데 다행히 지난 20년 동안 큰 사고가 없었습니다. 그게 쌓이니까 저렇게 인증을 해주더라고요. 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저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닌데 감사한 일이지요. 올해 제 나이 55세인데 앞으로도 사고 없이 운행하다가 은퇴하고 싶습니다.

택시 운행을 30대부터 했군요.
당시에는 젊은 나이였어요. “젊은 사람이 왜 택시를 하려고 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 고향이 강원 홍천군인데 저는 여섯 살에 처음으로 자동차를 봤어요.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어린 시절부터 운전기사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인천에 정착해서 회사에 들어갔어요. 10년 넘게 근속했고 회사 규모도 제법 커졌죠. 대졸 사원들이 들어오고 컴퓨터나 자료를 다루는 데 유능한 후배들을 보면서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게 어릴 적 꿈이었던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었고요.

생명사랑택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몇 년 전부터 인천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광역시 장애인 바우처 택시를 운행했어요. 장애인 바우처 택시를 하다보면 이른 아침 신장 투석을 하는 손님도 있고 복지관이나 병원, 장애인 학교에 다니는 손님도 있어서 한 손님을 여러 번 모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개인적인 사정도 알게 되고 자연스레 안부도 묻게 됩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어느 날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에 갔는데 ‘생명사랑택시’ 모집공고가 있더군요. 택시를 운행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사랑택시 기사가 되려면 ‘생명지킴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요.
교육을 이수하던 날 혼자 주차장에서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삼켰어요. 사실 제 형님도 10여 년 전에 갑자기 세상을 등졌거든요. 그때 형이 여러 신호를 보냈다는 걸 교육을 받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내가 형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내 가족도 지키지 못했는데 타인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나서도 되나’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는데 남겨진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 마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넨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차내 청결을 쾌적하고 상쾌하게 유지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죠. 요즘엔 택시를 부르는 애플리케이션 평가 항목에 ‘불필요한 대화 없음’ 항목도 있잖아요. 그만큼 낯선 이와의 대화를 꺼린다는 건데 억지로 말을 걸기보다는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건네려고 노력합니다.



손님의 마음을 여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손님이 타면 밝게 인사한 다음 “언제든지 운행 중에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먼저 이야기하고요. 일단 손님 한 분 한 분을 잘 살펴요. 얼마 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타셨는데 안색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병원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었는데 콜택시 부르는 법을 모르니 거리에서 한참을 기다린 모양이에요. 편하게 타실 수 있게 기다려드리고 “천천히 하셔도 된다”고 안심시켜드렸어요. 그리고 “표정이 어두워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물으니 속 얘기를 털어놓더라고요. 남편은 일찍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가정을 이룬 터라 신세지기 싫어서 오지 말라고 한대요. 그런데 몸이 불편하니 도움이 필요한데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할머니께도 제 명함을 드렸어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시라고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피려면 본인의 몸 관리도 중요하겠습니다.
일단 규칙적으로 지내려고 해요. 매일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에 나와서 일을 시작해요. 자살예방 규칙에도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패턴이 중요하다’고 나와 있는데 정말 그래요.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마음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차에서 책을 읽어요. 마냥 손님을 기다릴 때보다 시간도 잘 가고 승객들과 대화를 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아주 세속적인 지혜>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400년 동안 사랑받은 인생의 고전’이에요. 승객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저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겠더라고요. 퇴근 후나 여유가 있을 때는 서점에도 자주 가는데 아무래도 ‘지혜’라는 말이 붙은 책에 자꾸 손이 갑니다.

주변 기사들에게 생명사랑택시 일을 권하나요?
기사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정해져 있어요. 경력이 얼마 안 되면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 얼마나 뛰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화가 많아지고 더 시간이 지나면 초탈합니다. 최근에 친한 기사님이 잔사고가 많아지길래 ‘좀 쉬면서 하시라’고 권했어요. 기사가 피곤하면 아무래도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주변에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지만 제가 이걸 해서 많이 배우고 있고 저에게도 좋다는 이야기는 하죠.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
생명을 구한다는 게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누구에게 관심을 주고 경청을 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살기가 어렵다고 하고 흉흉한 일도 많이 일어나지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되면 다 같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정신적 고통 등 주변에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거나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유슬기 기자

박스기사


생명사랑택시란

택시를 운행하며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을 조기에 발견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기관으로 안내하고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신문고에 시민이 직접 제안한 사업으로 2017년 인천시가 최초로 시작해 울산시, 충남 논산시 등으로 확대됐다. 보건복지부가 심사한 2017년 자살예방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7년 172대로 시작해 2022년 누적 609대가 운행하고 있다.

자살 위험자를 돕는 법
1 감정에 공감한다.
“듣고 보니 정말 힘들었겠다”
2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너의 맘속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니?”
3 전문기관과의 연계 등 도움의 방법을 찾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도움을 받을 수 있어”
4 자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자살위험군인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1 자살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
“자살은 나쁜 거야. 너는 젊어”
2 지인의 기분을 평가하지 않는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아”
3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가볍게 대처하지 않는다.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4 자살위험자로 판단되면 혼자 두지 않는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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