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 만들어도 제대로!” 산머루 ‘K-와인’으로 세계 사로잡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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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 수상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 대표
2023년 대한민국 최고의 ‘우리술’이 가려졌다. 8월 16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2023년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수상작 15개 제품을 발표했다. 우리술 품평회는 국가 공인 주류품평회로 우리술의 품질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올해는 탁주, 약·청주, 과실주, 증류주, 기타주류 5개 부문에 전국 199개 양조장이 총 312개 제품을 출품했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심사를 거쳐 15개 제품이 최종 선정됐다. 그중 최고상인 대통령상의 주인공은 수도산와이너리의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였다. 크라테 미디엄 드라이는 경북 김천시의 청정환경에서 유기농 방식으로 직접 산머루를 재배해 만든 와인으로 우수한 맛과 양조장 대표의 지속적인 품질 개선 노력을 인정받았다.
수도산와이너리 백승현(52) 대표는 “학교 다닐 때 개근상은커녕 상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데 와인을 만들면서 상을 다 받는다”며 “아직 와인을 시작하는 단계고 걸음마를 뗐을 뿐인데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나 싶다”고 했다. 백 대표가 와인 제조를 위해 수도산 자락에 산머루를 심기 시작한 건 2001년, 주류 제조 면허를 받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출시한 건 2008년부터다. 강산이 두 번 변했지만 백 대표는 아직 시작일 뿐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했다. 백 대표의 꿈은 자신이 만든 와인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우리술을 넘어 세계 진출을 꿈꾸는 백 대표를 만나러 수도산와이너리를 찾았다. 양조장은 경북 김천시 근처에 있는 수도산(1317m), 가야산 단지봉(1327m), 황악산 형제봉(1022m), 삼방산(864m)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발 500m쯤 되는 고지대 마을에 있다. KTX 김천구미역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더 들어가는 깊은 산골마을이다.
양조장이 깊은 산골에 있다.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이다. 부모님은 이곳에서 담배와 약초를 재배하며 7남매를 키우셨다. 오면서 봤겠지만 깡촌 오지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컸다. 여길 벗어나고 싶었고 돈도 벌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권투를 했다. 주니어라이트급 프로 복서로 데뷔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공식 전적 3전 2승 1패였다. 권투를 그만두고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대부분 몸 쓰는 일이었다. 그러다 서른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9년부터 부모님이 담배 농사를 짓던 땅 1만 6500㎡를 갈아엎고 산머루를 심고 키우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물과 공기가 좋고 일교차도 커서 산머루를 재배하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왜 산머루였나?
우연히 인터넷에서 머루로 와인을 만드는 곳을 봤다. 머루로 와인을 만든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머루는 이 동네에서 흔한 열매다. 어릴 때부터 산에서 자연산 머루를 따먹고 자랐다. 산머루도 포도 아닌가. 산머루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지에서 자생하는 토종 포도다. 우리 땅에서 나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산머루 재배를 시작했다.
포도와 산머루의 차이는?
산머루는 생김새가 포도와 비슷하지만 크기와 색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열매가 포도보다 작고 껍질이 얇으며 색이 까만 편이다. 신맛이 강하고 수분이 많아서 잘 뭉개진다. 생식력이 좋아 음지나 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산머루 농사는 어렵지 않았나?
산머루를 재배하기 위해선 땅부터 되살려야 했다. 담배와 약초를 키우던 곳이라 토양이 산성화돼 엉망인 상태였다. 그래서 호밀을 심었다. 호밀은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고 1m 이상 깊게 뿌리를 내려 땅을 부드럽고 기름지게 만든다. 토양 개량에 도움을 준다. 또 당귀나 약재를 넣어 만든 영양제와 부엽토 등으로 만든 천연비료도 뿌렸다. 5년 정도 지나니까 지렁이가 다니고 땅이 건강해졌다. 땅이 좋으면 산머루도 알아서 잘 자란다. 농약이 필요 없다. 가물어도 살 나무는 살고 죽을 나무는 죽는다. 자생력이 좋은 나무에선 더 좋은 열매가 난다.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와인 공부도 해야 했을 텐데.
산머루 재배를 시작하면서 와인 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시작해 경북농민사관학교 와인 제조과정을 수료하고 농촌진흥청에서 와인 심화과정을 마쳤다. 경북대학교 자연특산주 개발 과정을 다니면서 와인을 공부하고 와인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산머루를 수확해 와인을 출시하기 전까지 수입이 없었다. 농사와 와인 공부를 하며 몇 년간은 화물차 운전, 이삿짐센터에 막노동까지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안 한 게 없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으니까.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백 대표는 2004년부터 산머루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와인을 팔기 위해 주류제조면허도 신청했다. 양조장을 짓고 설비를 갖춰 나갔다. 산머루밭이 해발 500m 수도산 자락에 있어 양조장 이름은 ‘수도산와이너리’로 정했다. 2007년 주류제조면허를 따면서 와인 브랜드를 ‘크라테(Kraté)’로 정했다. 크라테라는 이름은 ‘화산 분화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크라테(Cratèr)에서 착안했다. 양조장이 있는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지형이 분화구를 닮았기 때문이다. ‘C’ 대신 한국(KOREA)의 ‘K’를 써 한국 와인이라는 정체성을 더했다. K-팝, K-드라마, K-푸드 열풍이 불기도 전에 ‘K-와인’을 생각한 것이다. 백 대표는 2008년부터 크라테라는 이름으로 3년간 숙성 과정을 거친 유기농 산머루 레드와인을 출시했다. 드라이, 스위트 2종류였다. 당시엔 ‘한국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항아리에 머루를 으깨어 넣고 발효시켰다. 100여 개의 항아리에서 나온 와인을 2011년 청와대에 납품하기도 했다.
와인을 출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심은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3년이 걸린다. 그 열매로 와인을 만들고 숙성하는 기간이 3년이다. 병 숙성도 6개월 걸린다. 애초에 땅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 생각하면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다.
시장 반응은 어땠나?
한 주류박람회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한 외국인 소믈리에가 “이것은 와인이 아니다. 그냥 주스 와인이다”라고 하더라. 오크통 숙성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길로 옹기 발효를 깨끗이 포기하고 오크통을 사들였다. 처음에는 오크통 사용법을 몰라 그해 와인을 싹 다 버렸다. 한 해 농사를 망친 것이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오크통 사용법을 제대로 배웠다. 산머루는 산도가 높다. 오크통에 들어가 산화되면서 와인 밸런스를 맞춰준다. 3년 정도 숙성시키면 묵직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오크통 숙성 외에 와인 맛을 살리는 비법이 있다면?
산머루도 한 그루에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당도가 낮아진다. 응축된 산머루를 생산하기 위해 면적당 나무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한 그루당 수확량도 2㎏로 제한하고 있다. 한 그루당 와인 한 병을 만드는 게 목표다. 단맛을 올리기 위해 수확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나름의 비법이다. 가을에 다 익은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나무에 달린 채로 두면 수분은 날아가고 당도가 올라간다. 향미도 깊어진다. 그렇게 서리를 맞혀가며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기다렸다 수확한다. 포도를 말려 술을 담그는 이탈리아의 아마로네(Amarone) 와인 제조법과 비슷하고 맛도 뛰어나 우리 와인을 ‘한국의 아마로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로네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을 대표하는 고급 와인이다. 수확한 포도송이를 대나무발 위에서 3~4개월 말려 수분을 줄이고 당도를 높인 뒤 술을 담근다. 이런 제조법을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고 하는데 알코올 도수가 높고 색이 진하며 강렬한 맛을 내는 와인을 만들어낸다.
지금 생산하는 와인은 몇 종인가?
산머루로 만든 레드와인 2종과 로제와인, 레드스위트와인, 자두와인, 화이트와인까지 총 6종을 만든다. 이번에 대통령상을 받은 미디엄 드라이는 산머루로 만든 레드와인이다. 진한 풍미와 은은한 단맛이 특징이다. 단맛이 없는 드라이와인도 잘 팔린다. 달달한 자두와인은 해외에서도 인기다.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와인은 테루아(Terroir)가 중요하다. 테루아는 프랑스어로 토양, 풍토를 뜻한다. 쉽게 말해 와인을 만드는 재료인 포도가 자라는 환경을 말한다. 포도가 자라는 환경에 따라 포도의 맛이 달라지고 와인 맛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발 500m 건강한 땅에서 직접 키운 산머루여야 만족스러운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힘들어도 1년 내내 산머루 재배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2006년에 지은 12평(40㎡)짜리 작은 공장에서 와인을 직접 만든다. 생산량은 1년에 레드와인 3500~4000병 정도다. 오크통 20개에 와인을 숙성시킨다. 병입해 6개월을 더 숙성시킨다. 병에 넣어 안정화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대량 생산하지 않고 이 과정을 지킬 생각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운동을 하면서 챔피언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농사를 시작하고 와인을 만들면서 이 일은 끝까지 열심히 해서 세계 챔피언이 돼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와인 종주국에서 만든 와인 중에는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지 않나. 우리 땅에서 난 산머루로 그런 와인을 만들고 싶다. 세계 시장에도 진출하고 싶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공부해보고 싶은 꿈도 있다. 더 공부하고 노력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
강정미 기자
박스기사
2023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수상제품
매년 5개 부문 맛 겨뤄… 수상작은 홍보 등 혜택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는 매년 5개 부문(탁주, 약·청주, 증류주, 과실주, 기타주류)에서 부문별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3점씩을 선정해 15점을 선발한다. 부문별 대상 가운데 심사를 거쳐 대통령상 1점을 선정한다. 대통령상 1000만 원, 대상 500만 원 등 상금과 함께 바이어 초청 시음 행사, 바틀샵 입점 지원, 온라인 홍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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