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하는 아빠 머리카락 기부한 딸 나누는 마음도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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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천사’ 이장현·이예원 부녀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부모에게 효하는 법을 담은 공자의 <효경>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로 시작한다. 올해 11세인 이예원 양은 부모로부터 터럭과 살갗뿐 아니라 다른 것도 받았다. 자신의 일부를 타인과 나누는 기부 유전자다. 이 양은 태어날 때부터 10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어린 소아암 환자를 위해 나눴다.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던 날 아버지 이장현 씨는 자신의 혈액을 타인과 나눴다. 100번째 헌혈이었다.
혈액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대체할 물질이 없고 인공적으로 만들 수도 없다. 우리나라 헌혈 인구는 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혈용 혈액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씨처럼 한 번 헌혈에 참여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혈액기부를 이어가서다. 올해 47세가 된 이 씨는 20대에 헌혈을 시작해 지금까지 101회 피를 뽑았다. 그는 성분헌혈(필요한 성분만 헌혈)을 주로 했는데 전혈헌혈(모든 성분 헌혈)이 15~20분이면 마치는 반면 혈소판과 혈소판혈장만 채혈하는 성분헌혈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전혈헌혈은 이후 8주 동안 헌혈을 하지 못하지만 성분헌혈은 2주 후부터 가능하다. 이 씨가 매달 격주로 헌혈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이 양은 어린 시절부터 아빠가 헌혈원에 갈 때면 놀이터에 가듯 따라갔다. 아빠가 채혈하는 1시간여 동안 곁을 지켰다. 헌혈원 간호사는 이 양을 알아보고 간식도 챙겨주고 놀아주기도 했다. 아빠의 선행을 보고 자란 이 양에게 기부는 숨 쉬듯 자연스러웠다. 올해 초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소아암 환자들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양은 처음으로 미용실에 갔다. 40㎝ 길이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자 뒷목은 허전했지만 마음은 풍성했다. 이번엔 아버지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아이가 10대가 되면 자연히 부모와 멀어진다고 하는데 이 부녀는 다르다. 주말이면 경기 수원시자원봉사센터 가족봉사단에 참여해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을 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게 주말의 루틴이다. 헌혈도 기부도 봉사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일부라고 말하는 이장현·이예원 부녀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났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네요.
이예원 처음엔 어색했는데 친구들도 예쁘다고 하고 날이 더울 땐 시원하기도 해서 좋아요. 머리 감고 말리기도 편하고요. 2~3년 더 길러서 한 번 더 기부를 하고 싶어요.
이장현 배냇머리부터 기른 머리카락이라서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금방 적응하더라고요. 딸이랑 미용실에 처음 가봐서 그날 예원이 머리카락 자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미용실보다는 헌혈원에 더 자주 갔죠.
이장현 제가 매달 격주 토요일에 헌혈을 하는데 예원이도 그날은 시간을 비워두더라고요.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법도 한데 항상 함께 가줍니다. 이제는 선생님들과도 친해졌어요.
헌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장현 제가 20대에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차를 폐차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친 곳이 없었어요. 그때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살아 있는 게 감사하더라고요. 그 감사함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헌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헌혈이 올해 100회를 넘었다고요.
이장현 저보다 더 많이 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리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헌혈을 꾸준히 하려면 습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직장에서 걸어다닐 만한 거리에 헌혈원이 있었는데, 직장을 옮기고 나서는 규칙적으로 헌혈을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 후론 매달 격주 토요일을 헌혈하는 날로 정하고 지키고 있어요. 한 번 습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헌혈을 매달 할 수 있나요?
이장현 헌혈은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전혈헌혈과 혈소판이나 혈장을 헌혈하는 성분헌혈이 있는데 제가 하는 건 성분헌혈이에요. 전혈헌혈은 한 번 하고 나면 두 달이 지나야 하는데 성분헌혈은 2주만 지나도 할 수 있어요. 대신 시간이 좀 더 걸리죠.
100번째 헌혈은 더 특별했겠네요.
이장현 예원이가 머리카락을 소아암 환자에게 기부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원이가 기부하는 날을 100번째 헌혈 날로 맞추면 뜻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빠가 너의 결정을 응원한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예원 가기 전에 차에서 아빠랑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었어요. 아빠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셨어요. 많이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소아암 어린이에게 머리카락을 기부하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이예원 우연히 유튜브에서 소아암 환자는 머리카락이 빠져서 가발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니까 내 머리카락을 다른 아이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기부할 수 있는 단체와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이장현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나누는 ‘어머나운동본부’라는 곳이 있더군요. 25㎝ 이상의, 되도록 파마나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카락을 고무줄을 묶은 채 자르고 서류봉투나 작은 상자에 담아서 보내면 됩니다. 누리집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모발기부증서를 받을 수 있어요. 예원이도 한 번 기부를 하더니 머리카락이 자라면 또 기부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머리카락은 보통 한 달에 1~1.5㎝ 정도 자란다. 25㎝ 이상의 머리카락을 기부하려면 3년에서 5년 정도가 걸린다. 암환자용 가발의 평균 가격은 200만 원이 넘는다. 가발 한 개에 머리카락 약 10만 개가 필요해서다. 소아암 환자의 경우 피부가 연약하고 작은 통증도 힘겨워하므로 공정 과정에서 향균·멸균 처리를 추가한다. ‘어머나운동본부’에 따르면 소아암 환자로 가발을 받았던 당사자가 훗날 모발 기부자가 된 사례도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은 가발 구입도 부담스럽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부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군요.
이장현 혈액이든 머리카락이든 건강해야 계속 생기는 거잖아요. 건강해야 나눠줄 수 있고요. 계속 건강해서 60대까지 헌혈을 하고 싶어요.
이예원 제 머리카락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게 기분이 좋았어요. 머리카락 자르는 건 아프지도 않잖아요. 또 자라고요. 친구들에게도 추천하고 있어요.
두 분이 퍽 닮았습니다.
이장현 예원이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어요. 머리카락이 짧아지니까 정말 저랑 똑같이 생긴 거예요. 태어났을 때부터 저 어렸을 때랑 똑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봐도 신기합니다. 제가 서른여섯에 예원이가 태어났는데 저는 20대 때부터 항상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원이가 태어나고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선물 같아요. 태어난 날부터 거의 모든 날을 기록하고 있는데 같이 기부를 한 날의 자료도 다 저장해놨어요. 사진, 영상, 그날 느낀 것들도요. 나중에 이 기록이 예원이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라요.
수원시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하는 가족봉사단에도 참여하고 있다고요.
이장현 ‘나눔을 실천하는 가족봉사단’이라고 신청한 가족들 중에 몇 가족을 선정해서 함께 봉사를 해요. 아내가 함께하면 뜻깊겠다고 해서 신청했고 저희도 선정됐어요. 토요일 아침에 모여서 하천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노인이해 교육을 받고 그분들께 공기정화식물 액자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고요. ‘주말에 어디 갈까’가 항상 고민인데 이렇게 같이 봉사를 하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추억도 되더라고요. 봉사활동 마치고 같이 맛집에서 외식도 하고, 함께 봉사하는 다른 가족들과 친해지기도 하고요.
이예원 엄마 아빠랑 같이하니까 더 좋아요.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좀 힘들긴 하지만 봉사활동이 오전에 끝나니까 오후에는 친구들과 만나 놀 수도 있고요.
예원 양은 공부도 잘한다면서요.
이장현 지금은 학급 회장인데 5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 6학년 때는 전교 회장도 도전한다네요. 지금 수줍음을 타는 것 같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아주 씩씩합니다.
이예원 더 즐겁고 재미있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할 거예요. 한 달에 한 번 체육대회를 열면 친구들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운동을 좋아하나 봅니다.
이예원 롤러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해요. 어릴 적에 아빠가 데려가 주셨는데 이후로는 매주 롤러스케이트장에 가요.
이장현 예원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튼튼한 편이었어요.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고요. 예방접종하러 병원 가는 거 외에는 병원 갈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이 키우다 보면 애가 건강한 것보다 감사한 일이 없잖아요. 건강하니까 운동도 할 수 있고 기부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죠.
유슬기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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