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가을밤 K-음악 흐르고 드론 춤추고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 후 맞이한 두 번째 가을, K-음악이 푸른 기와를 물들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9~10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오페라단 등과 함께 청와대 헬기장에서 ‘2023 블루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예술가들의 협연 소식에 이번 공연의 관람권 1300여 장은 온라인 신청을 받은 지 10여 분 만에 마감된 바 있다.

먼저 9일에는 K-클래식과 국악, K-팝이 청와대를 채웠다. 첫 무대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열었다. 붉은 노을이 지는 초가을 하늘에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졌다. 2017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선우예권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했다. 선우예권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인연이 깊다. 그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선우예권 스스로 “나의 인생에 동행하는 작곡가”라고 말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률이 선우예권의 손끝에서 깨어났고 청중은 ‘건반의 마술사’가 부리는 마법에 몸을 맡겼다.

노을 지는 청와대에서 클래식을
뒤이어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은 하모니카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민요 ‘새야 새야’를 연주했다. 한국 최초의 하모니카 전공자이자 세계 하모니카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그는 가장 한국적인 노래로 하모니카의 묘를 알렸다.

특히 하모니카와 금관악기가 번갈아 독주를 선보이는 구간에서는 청중도 숨을 멈췄다. 전통 민요가 심금을 울린 후 소리꾼 고영열과 고수 고석진이 등장해 ‘북’과 ‘아리랑’으로 흥을 돋웠다. <팬텀싱어3> 준우승팀 출신 소리꾼 고영열은 관객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고 고수 고석진은 ‘아리랑’에서 4대의 북을 종횡무진 누비는 독주를 선보여 눈길을 모았다.

광주시립교향악단 홍석원 상임지휘자가 이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즈를 연주했다. 이어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5번’이 흥을 더했고 발레 ‘호두까기 인형’ 연주는 동화 같은 순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빠키’ 작가의 미디어아트가 무대를 채웠고 윤제호 아티스트의 레이저쇼도 관객의 눈을 훔쳤다.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8번’의 연주에 따라 레이저도 춤을 췄고 푸른 광선과 연기가 만들어낸 구름이 장관을 이뤘다. 걸그룹 ‘마마무’ 문별과 솔라의 유닛 마마무플러스는 이들의 대표곡 ‘댕댕’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재해석해 관혁악단과 함께 실험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10일엔 국립오페라단과 K-성악 대표주자들이 무대를 꾸몄다. 소프라노 임세경은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을 불렀다. 독일의 궁정가수 칭호를 받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은 <세비야의 이발사> 중 ‘험담은 미풍을 타고’를 열창했다. 바리톤 양준모는 ‘라 트라비아타’, ‘그리운 금강산’ 등 유명 오페라 아리아와 우리 가곡을 들려줬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양정웅 감독 연출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공개 입양된 어린이들로 구성된 이 합창단은 장윤성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 마지막 무대는 라벨의 ‘볼레로’ 연주에 밤하늘을 수놓은 300대 드론이 장식했다. 리듬에 맞춰 대형을 바꾸는 드론쇼는 공연의 대미였다.

이번 콘서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총연출하고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총감독을 맡은 양정웅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이벤트를 추구한다”고 했다.

청와대처럼 역사적 공간이 문화 공간이 된 사례는 유럽 곳곳에 있다. 오스트리아의 쇤브룬 궁이 대표적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별궁인 쇤브룬궁은 2004년부터 궁전의 앞마당에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를 연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이 축제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는 대표적인 유럽 여름 축제다. 독일의 발트뷔네 페스티벌은 고대 원형 극장에 ‘숲의 무대’를 만들어 매년 6월 베를린필하모닉의 연주로 채운다.

문체부는 청와대 야외 콘서트를 대한민국 대표 공연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블루하우스 콘서트’를 시작으로 9월부터 11월까지 가을 내내 청와대 일대에서 문화행사가 열린다.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는 ‘K-뮤직 페스티벌’에는 이찬원, 선예, 옥주현 등이 출연해 국악과 K-팝, 트로트가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를 만든다. 9월 21일부터 10월 28일에는 창작곡으로 채워진 국악관현악의 전통연희 공연이 열린다.

10월 7일과 8일에는 피아니스트 양방언 등이 참여하는 크로스오버 공연이 펼쳐진다.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K-클래식 공연도 11월 초로 예정돼 있다. 깊어가는 가을, 청와대에서는 K-뮤직의 소리도 더욱 깊어진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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