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골격을 완성한 ‘힙합 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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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대로 올해로 힙합은 탄생 50주년을 맞이하였다. DJ 쿨 허크가 1973년 8월 11일 아파트에서 열었던 파티 <백 투 스쿨 잼>이 거의 공식적으로 힙합의 탄생일로 고정됐다.
그리고 이를 기리기 위해 올해 8월 11일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힙합 50 라이브> 공연에서는 그야말로 반세기를 정리하는 주요 힙합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연해 자신들의 유산을 기렸다.
다른 장르들도 그렇지만 힙합에도 여러 개척자들이 존재했고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했다.
앞서 언급한 DJ 쿨 허크의 경우 턴테이블리즘과 파티의 관점에서 개척자로 추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랩의 관점에서 볼 경우 ‘Rapper’s Delight’라는 곡으로 최초의 랩 레코딩과 라디오 플레이, 그리고 히트를 기록한 슈가힐 갱을 들 수 있다.
물론 슈가힐 갱과 ‘랩’이라는 명칭이 존재하기 이전 랩 앨범을 만들었던 라스트 포에츠 같은 이들 또한 힙합의 원류를 추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이정표이기도 하다.
다른 장르들의 초창기와 마찬가지로 힙합 또한 12인치 싱글 형태로 먼저 출시됐지만 MC들이 전문화되면서 EP, 그리고 LP 제작이 진행됐다.
물론 초창기에는 랩이 낯선 형태였기 때문에(심지어 ‘Rapper’s Delight’의 가사에는 “지금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마이크 테스트가 아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랩 앨범 중간에 R&B 발라드와 디스코 트랙들을 배치하는 구성의 안전한 방식을 취했다.
랩으로는 어린층을, 그리고 R&B로는 어른층을 한 번에 잡겠다는 제작사의 의도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80년 발매된 슈가힐 갱의 데뷔 앨범 을 최초의 랩 앨범으로 꼽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 또한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은 랩이 뉴욕을 넘어 전세계로 뻗어 나가게끔 하는 역할을 해냈다.
DJ보다는 MC가 중심이었던 슈가힐 갱과 같은 슈가힐 레코드 소속의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퓨리어스 파이브의 경우 DJ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그리고 MC 집단 퓨리어스 파이브가 함께 하고 있는 ‘크루’의 형태로써 존재했다.
그 무렵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브레이크 댄스 크루 또한 길거리에 등장하면서 힙합은 용광로와도 같은 활기를 띠게 됐다.
뉴욕 브롱스에서 시작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퓨리어스 파이브는 최초로 DJ와 MC가 함께 있는 형태로써 성공했고, 무엇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입성한 랩 그룹이 됐다.
무엇보다 일전에 언급했듯 파티와 향락 중심의 랩들이 만연하던 시기 사회문제와 현상을 다루는 가사의 곡들을 발표하면서 힙합의 컨셉과 구성을 재형성해냈다.
애초에 회사에서 섭외된 MC들로 구성된 슈가힐 갱과 달리 자연스럽게 집단이 형성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퓨리어스 파이브, 그리고 그들의 데뷔작 의 경우 이 문화가 만들어낸 최초의 앨범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특히 퓨리어스 파이브의 리드 보컬 멜리 멜은 자신을 ‘MC’라 칭했던 최초의 래퍼였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싱글 ‘The Message’는 랩 장르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이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 정책으로 인해 더욱 생활이 어려워진 흑인 저소득층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명해낸 곡이었다.
당시의 흑인 우범지대를 생생하게 묘사해내는 한편 교육, 세금, 그리고 마약 문제를 다뤄낸 곡은 이후 영향 받게 될 수많은 힙합 그룹들의 자양분, 그리고 정수를 모조리 담아내고 있었다.
뉴욕 길거리에서 촬영한 ‘The Message’의 비디오와 앨범 커버 또한 본격적으로 랩 앨범의 컨셉과 테마가 구체화된 결과물이었다.
앨범 는 미국 의회 도서관 국립 음반 등록소에 선택된 최초의 합합 음반이기도 하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는 DJ로써 여러 믹스 기술을 완성했다.
일단 현재 모든 힙합 DJ들이 사용하고 있는 슬립매트(*스크래치와 믹스를 할 때 판이 쉽게 미끄러질 수 있게끔 턴테이블 플래터 위에 깔아 놓는 보호막)를 그가 발명했으며, 크로스페이더 기술을 이용한 빠른 믹스와 스크래치 테크닉들을 고안했다.
과거 전자제품 수리를 공부하기도 했던 그였기에 DJ용 스타일러스를 고안하기도 했으며 DJ 장비의 기계적 설비 개발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니까 그의 예술적, 기술적 혁신의 추구에서 힙합 문화의 첫번째 진화가 시작됐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퓨리어스 파이브(정확히는 멜리 멜)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고 각자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힙합 50 라이브’와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힙합 50주년 메들리 같은 곳에서도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이들이 등장했는데, 특히 힙합 초기의 모습을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겟 다운>에서는 마무드 아티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를 연기했다.
심지어 미국판 <복면가왕>에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는 북극곰 탈을 쓰고 노래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힙합이라고 알고 있는 장르는 수십 년에 걸쳐 꾸준하게 성장해 왔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는 힙합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현재의 일상생활의 일부로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지금의 힙합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변화해야 하고, 변화를 겪지 않으면 정체되고 성장하지 못한다 덧붙이기도 했다. 과연 대사부(Grandmaster) 다운 말이다.
음악 스타일이 점차 바뀌어 가면서 각 세대마다 새로운 힙합 아티스트들이 등장해왔다.
그리고 힙합이 하나의 예술,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로 수용되기 시작한 시점을 우리는 힙합의 50주년을 맞이한 바로 지금 다시금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10년 간은 힙합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시기였으며, 바로 그 출발점에는 슈가힐 레코즈 아티스트들과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있었다.
☞ 추천 음반
◆ The Adventures of Grandmaster Flash on the Wheels of Steel (12”) (1981 / Sugar Hill Records)
랩 앨범이 제작되지 않고 주로 12인치 싱글들 만이 발표되던 시기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3대의 턴테이블을 사용해 녹음한 라이브 믹스 셋이다.
여러 DJ 기술을 사용해 믹스한 이 셋은 닥터 드레를 포함한 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샘플링과 턴테이블리즘이라 불리는 것의 초기 사례로 남아 있다.
힙합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싱글로 현대 DJ 기술을 레코딩으로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대중 음악사에서 전례가 없던 포스트모던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이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가 미국 국가를 무자비하게 연주했던 순간 바로 옆에 놓을 수 있는 ‘오디오 콜라주’라 칭하기도 했다.
◆ The Official Adventures of Grandmaster Flash (2002 / Strut)
21세기에 새롭게 완성한 올드 스쿨 믹스셋.
크라프트베르크와 YMO 등 클래식 힙합에 영향을 준 곡들을 포함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사이 트랙들의 믹스 자체도 훌륭하지만 힙합의 역사를 살펴볼 때 무척 중요한 순간들을 지목해내고 있기도 하다.
중간 중간에 들어간 인터뷰 스킷, 그리고 36페이지의 소책자에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광범위한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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