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딩가동은 처음이지? 중랑구 청소년 온 마을이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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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랑구 청소년커뮤니티공간 ‘딩가동’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나이지리아 속담이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말이다. 아프리카에는 이와 비슷한 속담이 많다. ‘아이는 한 가정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우간다)’, ‘아이의 부모가 누구이건 양육의 책임은 지역사회에 있다(탄자니아)’,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스와힐리)’ 등 모두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한 아이를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전폭적인 도움과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증명됐다.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에밀리 워너(Emily Werner)는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신생아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카우아이섬은 하와이 8개 섬 중 실업자와 알코올 및 마약 중독자가 많은 피폐한 곳이었다. 섬에는 사회 부적응자가 넘쳐났으며 범죄율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높았다. 연구 역시 아이들이 어떻게 범죄화돼 가는지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고아나 범죄자 자녀 등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고위험군 201명을 따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고위험군 201명 중 3분의 1인 72명이 출생이나 환경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하는 ‘예외’를 보여준 것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거나 학생회장에 선출되고 미국 본토 명문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모범적으로 자라났다. 에밀리 워너는 이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조부모나 형제자매, 혹은 학교 선생님이나 친절한 이웃 등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믿어주고 편이 돼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모두 한 명 이상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들 위해 힘 모은 지역사회
서론이 길었지만 서울 중랑구 청소년커뮤니티공간 ‘딩가동’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예가 없다. 딩가동 1번지를 방문하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딩가동 건물부터 지역주민의 기부였다.
“딩가동 1번지는 1988년 윤기성 씨가 자신의 집을 마을에 기부한 건물이에요. 처음에는 경로당으로 기부했어요. 이곳을 이용하던 어르신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물 앞에 송덕비를 세웠어요. 청소년 공간으로 재단장할 때도 자녀분들이 흔쾌히 허락했고 저희도 송덕비를 잘 보존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딩가동 1번지를 담당하고 있는 중랑구청 아동청소년과 임양지 주무관은 송덕비의 영향인지 아이들이 고마움을 표시할 때 “커서 딩가동에 1억원 기부할게요!” 같은 말을 종종 한다며 웃었다. 다세대주택과 전통시장, 상점가 등이 혼재돼 있는 구도심에 위치한 딩가동 1번지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감각적인 외관을 보니 아이들을 위한 공간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입구 앞에 무척 이질적인 비석이 의아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에는 꽤 훈훈한 일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딩가딩가 놀고 가라’는 뜻의 딩가동은 중랑구를 대표하는 청소년커뮤니티공간이다. 2021년 2월 신내동 딩가동 1번지를 시작으로 현재 면목동, 묵동, 망우본동 등 딩가동 5번지까지 개소돼 운영 중이다. 만 12세에서 19세 청소년만 이용 가능하며 센터마다 청소년지도사가 상주하고 있다.
2018년 8월 청소년 휴카페 ‘면목동 친구들’ 운영이 중단된 것이 딩가동 설립의 계기가 됐다. 베드타운 이미지가 강한 중랑구는 노후된 주거단지가 많고 주차장이나 공원 등의 인프라가 부족했다. 청소년 시설 역시 두 곳의 수련관이 전부였다. 양원지구 등 신시가지 입주가 시작돼 전입 입구가 늘어나고 맞벌이 부부는 물론 다문화가정이나 저소득계층 자녀 비중 또한 높다보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간담회나 민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구청에 청소년전용공간 조성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나서 구청을 움직인 것이다.
99번지까지 만들어 주세요!
중랑구에서 유일하게 직영 운영하는 딩가동 1번지는 가정집을 개조한 만큼 특유의 아늑함이 돋보였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게임존과 노래방, 포토존 등이 있는 지하 1층이다. 게임존이라고 해도 온라인 게임이 아닌 포켓볼이나 축구 등 테이블 게임이다. 50분씩 예약제로 운영되는 노래방은 일반 영업장 못잖게 빠르게 신곡이 업데이트된다. 한편에는 유행하는 레터링 네온사인으로 꾸민 여학생들의 인증샷존이 있다. 다락방처럼 꾸민 2층은 조용한 휴식공간이다. 서가에는 인기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PC도 무료로 대여해준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가롭게 만화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빌려 게임을 하거나 숙제를 한다. 딩가동 1번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상주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인사는 물론 근황 등을 수시로 묻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청소년전용공간이 그렇듯 딩가동 역시 최대한 아이들에게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다만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은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훌륭한 정서적 안전장치가 됩니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가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와서 ‘하루가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며 엉엉 울고 간 일이 있는데요. 그 아이에게 딩가동은 단순 공간이 아닌 아는 어른이 있는 집이었을 것입니다.”
임양지 주무관은 우는 아이를 달래며 부당한 대우가 있었는지, 근로계약서는 제대로 작성했는지, 최저시급에 대해 알고 있는지 어른이 가르쳐줘야 할 것들을 말해줬다고 했다.
딩가동 2번지부터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 관련 전문 단체들이 맡고 있고 청소년지도사 등이 상주한다. ‘2021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딩가동 2번지는 간식으로 유명하다. 입구 안쪽 정면에 놓인 간식통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가득이다. 밥을 먹고도 뒤돌아서면 허기질 나이, 아이들이 배고픈 이유는 저마다 다양하다. 과자통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준다. 간식을 먹기 위해 매일 딩가동 2번지에 들르는 아이들도 있다. 이밖에도 활발한 프로그램 기획과 봉사 등으로 언제나 북적이는 딩가동 3번지, 댄스연습실과 야외무대까지 갖춘 딩가동 4번지, 새 아파트가 즐비한 양원지구에 생긴 딩가동 5번지까지 다섯 곳 모두 운영 방식이나 공간 구성 등은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며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아이들은 구청장에게 99번지까지 만들어달라고 요청 중이라니 딩가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지트 넘어 안전망 역할까지
딩가동의 인기는 놀랍다. 언제 어느 시간에 가도 아이들로 북적인다. 딩가동 1번지의 경우 개소 첫 달 총 이용자 수 52명으로 시작해 지난 7월 여름방학에는 1600명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아이들은 어느 센터의 삼진아웃제(3번 이상 경고를 받을 시 이용제한)가 제일 엄격한지, 어느 센터의 노래방 업데이트가 가장 빠른지 활발하게 정보를 교환한다. 또 지점별 혼잡도도 실시간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공유할 정도라니 딩가동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딩가동의 인기 비결은 단순하다. 온전히 아이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다. 공간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청소년으로 구성된 공간창작단을 구성해 의견을 반영하고, 청소년운영위원회를 조직해 규칙부터 프로그램 기획까지 직접 꾸려가도록 한다. 물론 다른 지역도 이용 대상자인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하지만 딩가동은 한발 더 나아간다. 최소한의 안전과 예산만 조율할 뿐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의견이 그대로 수용된다고 피부로 느낄 만큼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딩가동 센터마다 이용시간부터 이용대상, 벌칙 내용 등이 조금씩 다른 이유다. 딩가동 캐릭터 공모에서 씨앗을 형상화한 ‘딩가동이’로 당선된 학생과 류경기 중랑구청장이 5년 무상 저작권 이용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은 지역사회에서 유명한 일화다. 5년을 다 채우면 딩가동이를 그린 학생에게 구청은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은 물론 자신들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지역사회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딩가동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 기간 공간에 비치된 데스크톱과 노트북, 태블릿PC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도왔다. 이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디지털 격차 해소에도 기여했다. 또 이용 청소년들을 면밀히 관찰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놀 공간을 넘어 안전망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처럼 서로의 가정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돌보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딩가동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안전한 마을이 필요하며 지역사회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는 가정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며 양육의 책임은 지역사회에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강은진 객원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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