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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 도축 실태 충격 골프 선수에서 말 보호자로 “말이 행복한 곳이 사람도 행복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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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 김남훈 대표
몇 년 전 처음으로 승마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는 “말 뒤쪽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말 관리사는 “말은 예민한 동물”, “큰 소리를 내지 말 것” 같은 주의사항을 힘줘 반복했다.
8월 초 찾아간 제주 서귀포시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인근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에서는 전혀 달랐다. 낮잠에서 깨어 한데 모인 말들이 다가오더니 손과 팔에 코를 비비고 냄새를 맡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스스럼없었다. 팔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등을 슬쩍 밀어대기도 했다. 갈기를 어루만져봤다.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대자 김남훈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말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그 누구라도 좁은 마방에 갇혀 배급되는 식사만 하다 보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며 “마음껏 달리고 원하는 만큼 먹는 동물이 예민할 리가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김 대표가 말을 잇는 중에도 말들은 계속 다가와서 친한 척을 했다. 뜨거운 콧김에 옷이 축축해지고 힘이 세다보니 이리저리 몸이 흔들렸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치대오는 ‘마야’의 목을 껴안았다. 별 저항 없이 몸을 내어주는 말의 따뜻한 체온에 절로 몸이 기울었다. 말과 한몸처럼 의지하고 서 있자 김 대표가 말을 걸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람들은 왜 저더러 늘 웃고 지내느냐고 물어요. 말들과 자유롭게 지내보세요.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45마리의 말이 드넓은 자연 속에서 사는 곳, 은퇴경주마와 학대받던 말을 구조해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하는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는 국내 유일의 말 생크추어리(동물보호구역)다. 골프 선수로 활동하던 김남훈 대표가 2020년부터 자리를 잡아 시작했다. 2019년 미국에서 국제동물권단체 페타(PETA)가 폭로한 은퇴경주마 도축 실태를 접하게 된 다음의 일이다. 김 대표는 “자연상태에서 말의 수명은 35년 정도인데 경주마 생활은 기껏해야 5년이 되지 않는다”며 “매년 1400마리의 경주마가 은퇴하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는 도축된다”고 말했다.



말구조보호센터는 어떻게 시작했나?
‘제이시’를 만나면서다. 제이시는 모유 수유를 거부하던 말이었다. 자연히 비쩍 마를 수밖에 없었고 살을 찌워 경주마로 키우려던 주인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와서 풀 뜯어 먹이고 길렀다. 지금은 새끼를 낳고 잘살고 있다.
버림받는 말들이 많나? 그런 말들은 어떤 일을 겪나?
말의 운명은 어렸을 때 결정된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유아에게 헬스를 시키고 단백질을 먹게 하고 항생제를 놓아 근육을 만든다. 그런 상태에서 말의 나이 한 살 때 경매장에 가서 경주마로 팔려나간다. 아주 어릴 때 ‘상품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대충 판단하고 바로바로 버린다.
쉽게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버려진 말이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봐야 한다. 안락사하거나 도축되거나, 말 그대로 ‘폐기’된다.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까?
유기견이 생기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강아지일 때 예쁘다고 데려와 키우다보면 생각보다 힘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을 키우다보면 귀찮은 일이 아주 많다. 방목해 키우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마방에 가둬놓고 키우다보면 매일 활동을 시켜야 한다. 시시때때로 건초도 가져다줘야 한다. 그게 힘들어지면 말을 키우는 걸 포기한다.
여기에 온 말들은 어떻게 생활하나?
말을 키울 때 받는 교육을 보면 말에게 필요한 조건 세 가지가 나온다. 방목해서 키울 것, 24시간 먹을 물과 풀이 있을 것, 무리를 지어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게 할 것이다. 결국은 ‘자연 상태’에서 기르라는 얘기다.
우리는 동물을 너무 의인화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눈으로 동물을 본다. 말의 경우에도 말을 사람이 만든 울타리 내에서 안전하게 키우려고 한다. 그런데 말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한 무리에 새로운 말이 들어가려면 상견례를 치른다. 말은 서열 동물이기 때문에 서열 정리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말이 들어오면 물어뜯고 싸운다. 그걸 못하게 하고 서로 분리해서 기르는 것은 말답지 않게 키우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동물을 보면 안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말의 시각에서 봐야 한다. ‘천둥’이는 사람을 계속 낙마시킨다고 해서 못 기르겠다고 한 말이다. 알고 보니 배가 간지러워서 그랬던 거다. 그걸 모르고 사람을 떨어트린다고 버렸다. 우리에게 온 뒤 계속 만지면서 훈련을 시켰더니 지금은 모든 사람을 다 태워주는 말이 됐다.
말은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동물이다. 암말은 항상 무리를 이끌고 좋은 풀을 찾아다닌다. 수말은 경계를 선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45마리의 말을 이끌까?
나는 항상 아침 5시 반에 와서 신선한 풀을 잔뜩 베어다가 똑같은 시간에 ‘마마’를 부른다. 우리 말 중에 ‘마마’가 서열 1위이기 때문이다. “마마, 마마, 마마” 하고 열심히 부르면 마마가 나를 따라온다. 그 뒤로 줄줄이 다른 말들이 따라온다.
김 대표가 마마의 엄마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마마는 나를 따라오면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먹이를 주는 엄마인 셈이다. 마마가 나를 따르니까 모든 말이 나를 따른다. 이게 말의 눈높이에서 말과 살아가는 방법이다.
말은 자연상태에서 따뜻한 봄날에 배란해 새끼를 밴다. 말의 임신 기간이 11개월이기 때문이다. 이때 밴 새끼는 초봄에 태어난다. 막 싹이 돋을 때 태어난 새끼들은 부드럽고 연한 풀을 먹고 튼튼하게 자란다. 대부분 승마장에서는 다르다. 2월에 인공수정을 해서 새끼를 가지게 한다. 1월에 나서 1년 꼬박 억지로 키워 다음 해에 경매에 서게 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란 말은 건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모유 수유를 거부하던 말도 살이 올라 새끼를 낳을 수 있게 됐다. 이 주변 환경이 말이 자라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서다. 보통 우리는 말이 사는 곳으로 초원을 생각하기 쉬운데 말은 초지를 싫어한다. 포식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말은 오히려 숲을 좋아한다.
우리 말들은 오후 5시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도 이 지역을 다 알지 못하니까 말들이 어디에 가서 풀을 뜯어 먹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별의별 식물이 말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꾸지뽕나무, 망개나무, 찔레, 칡덩굴 등 온갖 것을 다 먹으면 당연히 건강할 수밖에 없다.
아침마다 그날 아침 베어낸 신선한 풀을 먹고 흩어진다. 내가 리더임을 자연스럽게 인지시키기 위해 풀을 주는 것이지 직접 풀을 베어주지 않아도 우리 말들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풀을 먹고 나면 말들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잠을 자는데 저기 산 능선에 누워 잔다.
말이 누워 잔다는 것이 신기하다. 승마장에서 본 말들은 대개 서서 눈만 감고 자던데.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말은 서서 잔다. 말이 누워서 잔다는 것은 매우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 말들이 몇 년을 여기에서 살면서 깨달은 거다. 여기에는 포식자가 없고 저 사람이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곶자왈 말구조보호센터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말이 사는 곳이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창 불볕더위가 계속되던 날이었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2층 건물에는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왔다. 창문이 없어 멀리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 멀리 산길을 따라 말이 한 마리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말들에게 다가갔다. 강아지처럼 치대오는 말들의 몸을 껴안고 힘 있게 어루만지며 인사를 나눴다.



말을 쓰다듬고 안고 있는 것만 해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요즘 ‘재활승마’라는 개념도 알려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말을 타고 말과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적·정신적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승마장의 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짜 자유가 우리 말들에게는 있다.
얼마 전에 네 살짜리 딸과 함께 찾아온 엄마가 있었다. 말을 타보라고 시켰다. 엄마가 말 등에 앉고 아직 어린 딸이 말을 끌었다. 사람을 신뢰하는 말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끄는 대로 이끌려 4㎞를 걸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뛰듯이 걷고 엄마는 말 위에 앉아 눈물을 흘리더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나?
말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다. 나는 이곳에 많은 사람이 와서 말이 주는 행복, 편안함 같은 것을 직접 느껴보고 말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렀으면 좋겠다. 보통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아침 일찍 와서 직접 풀을 베 말들에게 나눠주라고 한다. 말들이 거리낌 없이 모여들어 자신이 땀 흘려 베어준 풀을 먹는 것을 보며 뭉클해 한다. 풀을 베고 풀을 먹이고 말을 쓰다듬는 짧은 시간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일 것 같다.
자녀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님들이 종종 연락한다. 하루는 학교를 자퇴하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엄마가 연락이 왔다. 엄마와 딸을 숙소에 묵게 했다. 아침에 출근해 풀을 먹이고 말을 목욕시키고 돌보면서 일주일을 살았다. 돌아간 뒤 딸은 계속 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딸과 엄마는 대화가 부족했다. 딸은 여기 와서 자신이 얼마나 고된 생활을 하는지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 한두 마디씩 조언했다. 악기를 배우는 학생이었는데 음악이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말해줬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받았던 거다.
말도 사람도 치유되는 곳인 것 같다.
저기 ‘루티’는 불법도축 현장에서 구조된 말이다. 불법도축되는 현장을 제보받아 갔더니 친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던 루티와 ‘루나’가 있었다. 임신 상태였는데 지금은 건강한 새끼들을 낳고 잘 적응하고 있다.
‘허밍’은 척추 문제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말이다.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살려보겠다’ 하고 데려왔다. 지금 살이 찐 것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데려오고 나서 1년 7개월이 지났다. 훈련시켜 기립근을 발달시키니까 건강해졌다.
물론 모든 말이 적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저기 말 무덤도 있다. 결국 합방에 성공하지 못한 말은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고 오래 살지 못한다. 그걸 억지로 내가 함께 살게 할 수는 없다. 수말 중 서열 1위인 ‘모히칸’이 안 받아주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거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눈에서 그 세계를 이해하는 거다.
모든 아픈 말을 다 데려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종종 아픈 말을 구조해달라는 연락이 온다. 그럴 때면 정중하게 아픈 말, 다친 말을 모두 구조하는 곳이 아니라고 거절한다. 여기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말을 구조한다. ‘말답게’ 살 수 있는 말을 데려온다. 앞으로 이곳에 머무는 말의 수를 300마리까지 늘릴 예정인데 일일이 다 돌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말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말의 원래 모습 그대로 여기 살게 하는 거다.
동물답게 살게 하는 것이 진정 동물을 위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면 저절로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게 된다. 말은 예민한 동물이 아니다. 뒷발질도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와도 말과 어우러져 놀 수 있다. 결국 동물을 위한다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곳 말구조보호센터는 사람을 구조하고 치유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효정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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