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피하던 곳이 누구나 즐기는 곳으로 소각장 굴뚝 예술로 뜨거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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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아트벙커B39
“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흡사 공포영화에서 갑자기 화면에 나타난 괴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와 비슷했다. 본능적으로 출입문 밖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한참 동안 정체 모를 공포감에 휩싸여 어두컴컴한 안쪽 공간을 노려봤다. 찰나였지만 SF영화나 판타지 소설 속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경기 부천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 1층 벙커(Bunker)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들은 막연한 공간에서 거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이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를 세운 것도 이런 공포감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폐소공포증은 공간이 작아질수록 두려움의 강도가 커지는 반면 막연한 곳은 공간이 커질수록 공포가 극대화된다. 쓰레기 소각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한 부천아트벙커B39에서 벙커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과거에는 쓰레기 저장조 역할을 하던 곳이다. 지하부터 높이 39m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텅 빈 공간이 뿜어내는 부피감은 어마어마했다. 벙커에 들어서면 마치 시공간이 엉켜 아래로 훅 꺼지거나 위로 빨려들어가거나 무엇인가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그만큼 크기가 비현실적이었다. 벙커에서 공포를 느낀 이유다.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 위치를 물었다가 하필 잘못 찾아들어간 곳이 벙커였다. 부천아트벙커B39를 방문하기 전에 충분히 사전조사를 했다. 관련 자료도 읽어봤고 내부 사진도 찾아봤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완전 달랐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방문한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부천아트벙커B39를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벙커는 전주에 불과했다.
시민 환경운동의 태동지
쓰레기 소각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부천아트벙커B39는 여느 재생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오늘의 부천아트벙커B39가 있기까지 그 배경을 살펴보면 특별하다. 사실상 우리나라 시민 환경운동의 태동지로서 역사적 위치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다이옥신 파동’이다.
수도권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수도권 1기 신도시 중 하나로 부천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대단위 주거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할 시설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다. 이에 정부는 일부 주민의 반대가 있었지만 1992년 부천시 삼정동에 소각장 건설을 확정하고 1995년 5월 완공해 가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루 처리하는 쓰레기는 200톤 규모였다. 부천아트벙커B39는 부천시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 양천구와 인천 부평구가 지척이다. 현재 모습만 보자면 어떻게 도심 한복판에 쓰레기 소각장을 지을 수 있나 놀랄 일이지만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심상찮았다.
삼정동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소각장의 환경적 안전성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했고 1997년 5월 정부는 전국 11개 쓰레기 소각장의 다이옥신 농도를 조사하게 된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부천아트벙커B39의 전신인 삼정동 소각장에서 무려 허용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다이옥신이 배출되고 있었다. 이는 전국 쓰레기 소각장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삼정동 인근 주민들은 즉각 소각장으로 몰려와 항의 농성을 벌였다. 동시에 소각장 폐쇄를 위한 시민대회를 열고 소각장 폐쇄를 위한 부천시민대책위를 구성해 시민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운동을 펼쳐나갔다.
부천시는 6개월간 가동을 중단하고 저감 시설을 설치했지만 다이옥신의 유해성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자각한 시민들의 환경운동은 장기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사료화 추진,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 운동 등 전국적인 연대를 통해 보다 성숙한 시민운동으로 발전해나갔다. 결국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가동을 중단했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공간의 힘
부천시는 물론 시민들 모두 삼정동 소각장 철거를 기대했다. 그러나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도시재생 지원의 일부인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극적인 운명의 변화를 겪게 된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이 시민과 전문가, 공공기관, 행정당국 등과 소각장 활용에 대한 활발한 논의 끝에 기존 시설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재단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공사 시작 2년 만인 2018년 5월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가 드디어 개관하게 된다. 소각장 가동이 중단된 지 8년이 지난 후였다.
대개 재생공간들은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뜯어고치는 게 예사다. 공간의 역사성을 보존한다고 해도 콘크리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둥이나 녹슨 문, 상징적 구조물이나 시설물을 오브제처럼 남기는 수준이다. 그러나 부천아트벙커B39는 달랐다.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에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공간은 그대로였다. 마치 전할 이야기가 많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관람 역시 쓰레기 반입실로부터 시작해 저장조, 소각로, 유인송풍실 등 과거 소각장 프로세스 순서에 맞게 진행된다.
총 대지면적 1만 2663.70㎡, 건축면적 3307.29㎡에 지하 1층~지상 6층 규모. 이곳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소각장과 지하 1층~지상 2층의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는 관리동으로 구성된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내부는 구석구석 흥미롭다. 먼저 엄청난 규모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벙커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이 거대한 공간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악취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당시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쏟아부어버리던 두꺼운 철문이며 쓰레기를 집던 천장 크레인 레일, 39m 콘크리트 벽 구조물 안에 그대로 보존된 벙커를 보고 있자면 왜 이곳이 부천아트벙커B39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지 알 수 있다. ‘B39’라는 이름부터 벙커에서 나왔다. 벙커의 높이가 바로 39m다. 공교롭게도 부천아트벙커B39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 역시 39번국도다. 39 앞에 붙은 ‘B’는 부천(Bucheon)과 벙커(Bunker)의 앞글자이기도 하고 ‘경계 없음’(Borderless)을 뜻하기도 한다.
벙커를 가로지르는 벙커브릿지(Bunker Bridge)는 부천아트벙커B39를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포토존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쓰레기를 쏟아버리던 철문 4개 중 하나를 과거 쓰레기 반입실이었던 멀티미디어홀(MMH)과 1층 로비를 잇는 다리로 만든 것이다. 벙커브릿지에 서면 SF영화 세트장 같은 신비한 분위기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큰 공간이 쓰레기 저장조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냥 즐기기도 어렵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간이 가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소각장 굴뚝에선 예술이 폴폴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로의 변신도 인상적이다. 뜨거운 불길과 악취, 연기로 가득했을 이 공간은 ‘중정’을 모티브로 벽면을 모두 철거하고 외부의 채광과 맑은 하늘을 실내로 끌어들인 다용도 야외 공간 에어갤러리(Air Gallery)가 됐다. 소각로와 에어갤러리의 대비는 절묘하다. 옆으로 소각장 프로세스에 따라 소각로에서 태워진 쓰레기가 재가 돼 한곳으로 모이는 재벙커(ASH Bunker)와 유인송풍실(Air Emission Control)이 이어진다. 유인송풍실은 소각과 정화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배기가스를 굴뚝을 통해 외부로 보내던 곳이다. 4층까지 길게 수직으로 이어진 이 공간은 ‘보존구역’으로 지정돼 과거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다.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매력적인 공간이다. 장비와 기기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마치 작은 박물관 같은 중앙제어실, 4층 높이까지 뻗어 있는 기계 설비가 압도적인 배기가스처리장 등은 이곳이 쓰레기 소각장임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독특한 장소성은 SF나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 등의 장르 예술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 뮤직비디오, 광고 및 패션, 영화, 드라마 등의 촬영 장소로도 인기를 끄는 요소가 된다. 영화 <길복순>, <승리호>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특히 2021년 방탄소년단(BTS)이 명품 패션 브랜드와 화보 촬영을 이곳에서 진행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4월에는 약 2년간의 4단계 재단장 공사를 마치고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재개관 행사 ‘리:부트(Re:boot)’를 개최했다. 리부트는 다시 시동을 건다는 뜻으로, 소각장 사무실이었던 관리동을 시민 공동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또 열린 야외공간인 시민광장을 조성하고 3층 미공개 공간 일부를 특별 전시장으로 꾸미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만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완성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갈등으로 점철됐던 과거를 넘어 새로운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건물 밖에는 여전히 붉은색 굴뚝이 우뚝 서 있지만 이전과 달리 이 굴뚝을 경계하는 시민은 없다. 거기서 피어오르고 있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문화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강은진 객원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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