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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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왔다. 내 생일이 있는 9월은 언제나 특별했지만 올해의 9월은 다른 의미로 특별하다. 20년지기 친구이자 9년 동안 동거 중인 내 친구 박이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언젠가 박이 결혼을 하는 날 꼭 사회를 보겠노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쳐왔다. 그런데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사회가 아닌 축사를 맡고 싶어진다. 그동안 친한 친구들의 결혼식 사회를 몇 차례 맡으면서 사회자는 마음 놓고 감동과 사랑에 젖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장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순간,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와 행진을 하는, 아무튼 결혼식의 모든 순간, 코끝이 찡해질 때마다 사회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신랑 신부 가까이에 있는 꽃장식이나 조명으로 교묘하게 시선을 돌려 딴생각을 하려 애쓰는 것뿐이었다. 혹여라도 울어버리면 목소리가 떨릴 테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두 사람의 행복을 힘차게 응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친한 이들의 결혼식 결정적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놓쳐온 나는 박의 결혼식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담고 싶다는 욕심에 여러 번 축사로 바꿔줄 것을 부탁해봤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냉정했다. “안 돼, 너만큼 사회를 잘 볼 사람은 내 주변에 없어.” 그럴 때마다 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되뇌었다. “흥, 저주받은 재능이로군.”
박의 결혼식에서 절대로 울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남들 앞에서 웬만해선 잘 울지 않는 내가 박 앞에선 뜬금없이 눈물을 글썽이는 일이 잦아졌다. 도무지 울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미리미리 할부로 울어놓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내 친구가 곧 더 행복해진다는데 뭐가 그렇게 서운하고 아쉬워서 눈물바람인가 스스로도 참 주책이다 싶지만 박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안 서운할 도리가 없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로 용감하게 상경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우리는 서로를 참 많이도 위하고 의지했다. 여름마다 똥물이 넘치던 반지하에서도, 겨울마다 수도가 얼던 옥탑방에서도 나는 박이 곁에 있어서 좌절하는 대신 웃었다. 연봉이 900만 원을 간신히 넘기던 20대 초반, 노력 대비 빈곤하기만 한 통장잔액을 보면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내게 자랑스럽다고 말해준 박 덕분이었다. 첫눈 오는 날 빈 주머니 탈탈 털어 편의점에서 사왔던 싸구려 와인, 친구 먹이려고 각자의 회식에서 싸왔던 다 식은 음식,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몇 달 전부터 한 푼 두 푼 저금했던 애틋한 지난날을 빠짐없이 기억하는데 박의 결혼이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박을 보며 나는 왜 사랑과 우정이 다른 단어로 구별돼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박을 설명할 수식어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하는 박이 결혼하는 9월이다. 사회자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야겠다. 박의 결혼식에서 누구보다 힘찬 목소리로 그녀의 앞날을 축복하고 응원하는 친구는 나여야 하니까.
강이슬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새드엔딩은 없다>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등을 펴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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