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안겨준 한국식 발효 초콜릿 세계 입맛 녹일 ‘K-디저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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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대상 장금자 카카오파이브 대표
7월 2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특허청이 주최하고 한국여성발명협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는 예상 밖의 대상을 향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19개국에서 출품한 총 354점의 발명품 중에서 초콜릿이 최고 발명품 자리에 오른 것이다. 농업회사법인 카카오파이브 장금자 대표가 개발한 ‘카카오 발효청을 이용한 천연 발효 카카오 및 초콜릿’이 이날 대상(그랑프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미 수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초콜릿이 새로운 발명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이유가 뭘까? 정답은 ‘한국식 발효기법’에 있다. 장 대표는 발효된 상태로 수입되는 카카오콩을 그대로 쓰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 번 더 발효해 사용한다. 이렇게 만든 발효카카오를 저온 로스팅(볶기)해 껍질을 벗기고 콘칭(카카오 반죽을 오랜 시간 저어 매끈한 질감으로 만드는 것)한 뒤 또다시 오랜 시간 숙성 과정을 거치면 기본 다크초콜릿이 완성된다. 하나의 초콜릿이 나오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많은 국내 기업이 액상 상태의 초콜릿 완제품을 수입해 토핑이나 향료만 첨가한 뒤 성형해 판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그가 ‘특급비밀’이라고 밝힌 이 기술로 만든 카카오와 초콜릿은 특허까지 받았다.
장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종특별자치시 특산물인 조치원 복숭아를 비롯해 흑임자, 말차, 콩 등 국내산 농산물을 초콜릿과 결합해 ‘세종피치렛’ 등 독특한 제품을 개발했다. 그덕에 카카오파이브는 2020년 세종 로컬크리에이터 최우수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장 대표는 대상 수상 소감으로 “카카오가 생산되지 않는 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초콜릿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세종시를 널리 알리고 한국을 널리 알리는 K-디저트의 대표 브랜드가 되겠다”고 밝혔다.
8월 15일 세종시 조치원읍에 자리한 카카오파이브 공장을 찾았다. 광복절 공휴일에도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 안은 고소한 카카오콩 냄새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기계 아래로 떨어지는 짙은 브라운색의 ‘초콜릿강’을 바라보며 한국식 초콜릿의 탄생 비화를 들었다.
초콜릿 하나를 만드는 데 3개월이나 걸린다니 놀랍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액상 상태의 초콜릿 완제품을 수입해 사용한다. 거기에 갖가지 향과 색, 토핑을 얹은 뒤 성형해 판매하는 식이다. 반면 우리는 발효된 카카오 생두를 수입해 직접 개발한 기법으로 한 번 더 발효 과정을 거친다. 가공하기 전의 카카오는 잡내가 나고 쓴맛이 강한데 이렇게 하면 깊은 맛과 풍미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카카오를 저온 로스팅한 뒤 껍질을 벗겨내고 세척해 콘칭 기계에서 72시간 돌린다. 다시 4주간 숙성과정을 거친 뒤 템퍼링(초콜릿을 굳히기 전 온도를 조절하는 과정)한 초콜릿에 갖가지 특산물을 첨가해 모양을 만들면 비로소 초콜릿이 완성되는 거다. 이 공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게다가 카카오 껍질을 벗기는 과정에서 원물의 40%는 버려지고 콘칭과 템퍼링하는 과정에서 또 일정 부분 초콜릿이 손실된다. 카카오 1㎏에서 나오는 초콜릿은 500g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엔 카카오콩을 직접 다룰 수 있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
복잡한 공정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카페를 운영하는 언니와 함께 10년 전쯤 커피 원두를 공부하러 해외에 갔다. 그때 우연히 카카오의 매력을 알게 됐다. 커피콩과 카카오콩의 재배환경이 비슷한 덕이다. 초콜릿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설탕을 적게 넣고도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와인 맛이 나는 초콜릿, 커피 맛이 나는 초콜릿도 있다. 다양한 맛과 향의 커피가 있듯 색다른 초콜릿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카카오 원물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는, 진짜 초콜릿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벨기에, 스위스, 미국, 프랑스 등 초콜릿으로 유명한 나라들도 카카오 산지가 아니다. 우리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식’ 초콜릿 제조 기술은 어떻게 탄생했나?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카카오’를 검색하면 ‘카카오톡’만 나왔다(웃음). 카카오를 직접 가공해 사용하는 곳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콜롬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카카오농장도 방문했다. 돌아와서는 외국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카카오콩 가공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카카오 껍질을 손으로도 까보고 선풍기 바람에 날려보기도 하는 등 나만의 방식을 시도했다. 커피콩은 고온에, 카카오콩은 저온에 볶아야 하는데 커피 볶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가 로스팅 기계를 다 망가뜨린 적도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씩 연구한 끝에 2020년 카카오파이브 법인을 세울 수 있었다.
힘든 순간이 많았겠다.
제품 개발이 끝나고 나서도 공장을 짓고 판로를 뚫기까지 자리잡기가 녹록지 않았다. 특히 해썹(HACCP) 인증 시설을 갖추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딸이 직접 설계도면을 만들고 내가 설비를 맡아 지금의 시설을 갖췄다. 그 과정에서 서로 큰 힘이 됐지만 많이 싸우기도 했다. 3년간 딸이 세 번이나 집을 나갔다(웃음). 그래도 96㎡(29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많은 걸 일궈냈다. 이제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아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뿌듯하다.
복숭아·흑임자·쑥차 등 농산물과 초콜릿의 만남이 독특하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세종시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중 ‘농산물 가공 역량교육’에 참여하면서 우리 고장 특산물인 조치원 복숭아와 초콜릿을 결합해볼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역특산물을 활용하면 한국인 입맛에도 더 잘 맞고 나아가 세종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흑임자, 쑥차, 말차, 현미 등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제품 13개를 개발했다.
먹거리 사업을 하면서 무엇보다 농업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했다. 우리가 먹고사는 일, 결국 인류의 미래가 농업에 달려 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딸도 농업기술센터에서 함께 교육을 받았다. 이후 2022년 청년후계농으로 선정돼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직접 복숭아, 딸기, 콩 등을 재배할 계획인데 그럼 우리와도 협력할 수 있다.
모든 제품이 순식물성 ‘비건’인 점도 눈에 띈다.
초콜릿과 우리 농산물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콩(대두)에 함유된 유지방이 전지, 탈지 등 초콜릿을 만들 때 들어가는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단 것을 알았다. 유제품은 잘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콩은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먹을 수 있지 않나. 비건 초콜릿을 만들면 국산 콩 소비를 늘리는 동시에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카카오콩의 쓴맛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인공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제품에는 화학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이점 역시 건강한 먹거리를 지향하는 비건 정신과 맞닿아 있다.
‘비건’을 내걸면 소비자가 한정되지 않나?
채식주의자를 위해 비건 제품을 만드는 건 아니다. 건강한 순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초콜릿이라는 게 핵심이다. 비건 초콜릿은 건강하긴 하지만 왠지 맛이 없을 것 같다던 소비자들도 실제로 먹어본 뒤엔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보다 더 맛있다고들 한다. 더욱이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건 기후변화 등 환경적 측면에서도 좋다. 소를 사육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메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다양한 스토리를 우리 제품에 담고 싶다.
초콜릿이 발명 대상을 받을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대상 발표 후 어리둥절했다. 사실 바이어와 만남, 라이브방송 판매 기회 등이 주어진다고 해 제품을 홍보할 목적으로 나간 대회였다. 수많은 여성기업, 쟁쟁한 발명품 사이에서 상을 받을 거라곤 기대조차 안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 제품의 성장잠재력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다. 세계 각국에서 K-푸드가 각광받고 있다. 일본·싱가포르 식품 박람회에 갔을 때 ‘세종피치렛’의 반응이 참 좋았다. 지난해부턴 홍콩에 수출도 하고 있다. 국내 판로도 온라인뿐 아니라 면세점, 백화점 등으로 넓혔다. 더욱이 비건 식품 시장도 날로 커지고 있으니 향후 발전 가능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
1억 달러 수출이 목표라고.
세종시 대표 브랜드가 되겠다는 1차 목표는 이뤘다. 다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K-디저트가 되는 거다. 완성된 초콜릿이 냉각판 위에 올려진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그다음 이걸 어떻게 패키징(포장)할 것인가, 곧바로 힘든 고민이 시작된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좋은 제품을 널리 알리는 건 더 어렵다. 수상의 영광은 짧다.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1억 달러 수출을 목표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멀리 잡아 10년 안에는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사업이든 인생이든 포기만 안 하면 성공이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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