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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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종이에 손가락 끝이 베였다. 나에게는 없는 머리카락이 솟구칠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겨우 속눈썹만큼의 작은 상처에도 우리 몸은 과도할 정도로 통증을 느낀다.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이라는 희귀한 질병이 있다. 압력을 제외하고는 통증은 물론이고 차갑고 더운 것도 느낄 수 없는 유전성 질환이다. 만화나 영화에서 가끔 이런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를 만드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총에 맞아도 죽지만 않으면 돌격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무적의 군대’인 것이다.
실제로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 아이들의 삶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세 살 이하에서 절반이 고열로 사망한다. 열이 나서 몸이 뜨거워지면 땀이 나서 체온을 식혀준다. 그런데 열이 나도 땀이 나지 않아 체온이 과도하게 상승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열사병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기 손을 물어뜯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입술이나 혀, 손가락 등을 계속 물어뜯기도 한다. 상처가 나도 고통이 없어 계속 상처를 덧나게 만들어 손가락 등을 절단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끊임없이 아이의 몸을 살펴야 한다.
커서도 자해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발목을 다쳐도 인대가 완전히 파열되거나 다리가 부러져 바닥에 넘어진 후에야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또한 눈에 띄는 외상을 입거나 상처가 나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경우는 몸 내부에 이상이 생길 때다. 충수돌기염, 즉 맹장염은 평생 동안 겪을 확률이 6~7% 정도 되는데 통증이 없어 충수돌기가 터져 음식물이 배 안으로 쏟아져도 아프지 않다. 그래서 간단한 수술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충수돌기염이 통증을 느낄 수 없는 환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환이 된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려 한다. 우리 몸에 해로운 자극이 가해지면 우리 몸은 통증을 느끼고 통증을 피하면서 안전을 추구한다. 통증은 우리 몸의 경고음 역할을 한다. 아파서 몸을 사리는 동안 우리 몸은 부지런히 회복에 나선다. 통증은 경고음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몸이 회복할 시간을 벌어준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몸을 아끼고 쉬어야 한다. 통증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몸을 지켜주기 위해서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아프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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