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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딸, 용감할 수 없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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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많이 와.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마. 항상 조심해. 다치지 않도록.”
이른 아침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염려를 남겨놨다. 늦은 오후 동생이 답장을 보냈다.
“나는 어디 안 돌아다녀. 언니가 문제지. 바다수영 다니잖아.”
그날 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을 존중한다는 느닷없는 이야기로 말문을 연 아빠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래도 목숨이 위험한 일은 하지 마.”
당최 의중을 짐작하기 힘들어 가만있었더니 아빠가 축 처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바다수영 그런 거 하지 마. 왜냐면 그거는 죽을 수도 있잖아. 딸이 용감한 건 아는데… 엄마랑 아빠를 위해서라도 그거는 하지 마. 우리는 너희 둘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런다면 정말… 정말….”
혹여라도 당신이 뱉은 말에 부정이라도 탈까봐 뒷말을 차마 잇지 못하는 아빠를 얼른 달랬다.
“아빠 나 그냥 해수욕장 가는 거야. 걱정하지 마.”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아빠는 한층 풀어진 목소리로 “아, 해수욕장?”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바다수영’이라는 동생의 말에 엄마와 아빠는 안 그래도 종잡을 수 없는 큰딸이 이제는 재미로 망망대해에 몸을 던지기까지 하는구나 싶었단다. 아빠와 전화를 끊고 나는 나를 낳아준 두 분을 위해서라도 건강하고 안전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거센 파도에 엄마를 잃는 꿈을 꿨다. 아니 정확히는 딸을 잃는 꿈을 꿨다. 어째선지 꿈속의 엄마는 내 딸이었다. 그녀를 삼켜버린 검은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더니 몸통 한가운데가 아주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으로 뻥 뚫려버렸다. 뚫린 가슴 사이로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채 가시지 않은 절망감을 어렴풋이 느끼며 한참이나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혹시 이런 걸까?’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는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꿈속에서 느꼈던 그것은 내 상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절망이었고 지독함이었다. 혹 꿈이 아니라 세계 반대편의 어느 어머니에게 잠깐 빙의라도 됐던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장 죽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데 악몽을 꾸고 나서야 그 생각이 내 부모를 배반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운 채로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한동안 했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행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강이슬
‘SNL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새드엔딩은 없다>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등을 펴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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