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한 척의 배처럼 꽃망울 터뜨린 꽃처럼 미술관이 곧 예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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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외벽. 항공기 외장재로 사용되는 두께 0.3mm의티타늄 패널 3만 3000여 장을 붙여 만들었다. 보는 방향과 시간에 따라 형태와 색상이 변해 ‘메탈 플라워’란 애칭으로 불린다. ©PA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탄생 배경
빌바오시는 도시재생 사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빌바오 시민들의 젖줄, 네르비온 강변에 자리 잡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빌바오 재생 프로젝트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관광 명소다. ‘빌바오 효과’라는 새로운 경제용어까지 생길 정도로 역대급 후광의 주인공 빌바오 구겐하임은 미술관 유치 전, 여론의 반대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반대 여론의 핵심은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도시의 정체성을 바꾸는 데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감이었다. 철강 조선업의 붕괴와 높은 실업률 등 도시경제가 쇠락한 마당에 문화를 도시재생의 견인차로 내세웠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도시재생의 절벽에서 빌바오시는 왜 문화도시를 미래비전의 방점으로 삼았을까? 여기에는 재생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핵심 전략이자 여론의 물길이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는 분기점으로 작용한 중요한 안목이 숨어 있다.
25년 장기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를 수립한 민관 협력단체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 최우선으로 지향한 도시 비전은 시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산업도시에서 문화관광도시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순수 제조업만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경제적인 파급효과를 꾀할 수 없고 환경개선과 삶의 질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전통적인 방식의 도시재생 드라이브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였다.
새로운 도시 빌바오의 모습은 주거, 업무, 상권, 교육, 관광, 문화, 친환경 등이 용광로처럼 융합된 21세기형 도시재생 모델로 설계됐다. 나아가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문화관광도시를 꾀하고 지역경제 회복을 앞장서 이끌 킬러 문화콘텐츠, 즉 상징적 건축물을 세우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인간 중심의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경제 부활에 더해 세계적인 문화도시를 지향한다는 원대한 청사진 앞에서 여론 동향도 마침내 찬성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도시재생 사업의 궁극적인 수혜자가 다름 아닌 자신들이라는 점을 빌바오 시민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신화의 서막이 올랐다.
▶해 질 녘, 금빛으로 물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 광장과 산책로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Manuel Portero│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프랭크 게리 ©National Building Museum; photo by Paul Morigi
건축 역사상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디자인
빌바오시는 빌바오의 미래를 책임질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미술관을 지목하고 미국의 전설적인 철강왕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이 세운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과 협상에 들어갔다.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을 선택한 것은 재단 설립자가 철강업계의 신화적 인물로 빌바오시의 역사성에 부합하는 데다 1959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설립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사적 가치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달팽이 모양의 흰색 콘크리트 건물인 구겐하임 미술관은 공개 당시 세계 건축사를 뒤바꾸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빌바오시의 협상 전략도 파격적이었다.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다.’ 빌바오시는 공사비 전액 부담과 미술관 건축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설계에 관한 모든 권한도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에 맡긴다고 제안했다. 미술관 운영과 소장품의 수집 및 관리도 구겐하임 재단에 일임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 계획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준공까지 총 7년이 걸렸다. 부지 선정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 없이 설계에서 착공, 완공, 소장품 이전, 전시실 디스플레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공모 끝에 설계자로 선정된 프랭크 게리(1929~)는 캐나다 출신 미국인 건축가로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 건축계의 바이블로 통하고 있는 해체주의 건축의 일인자다. 해체주의 건축은 전체가 하나인 통건물로 정적이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기하학적 형태를 동원한 왜곡된 비선형 기법과 구성 요소의 분해를 통해 역동성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조각 같은 건축양식을 말한다.
1991년 게리가 설계를 맡아 진행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해체주의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네르비온 강에 정박한 배 모양이라거나,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닮았다거나, 넘실대는 파도 같다는 등 건축 역사상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게리의 명성을 재확인시킨 걸작 중의 걸작으로 건물 자체가 위대한 예술품으로 칭송받고 있다.
게리의 설계를 거쳐 1993년 본격적인 건축에 들어간 빌바오 구겐하임은 3만 2500㎡(9831평)의 부지에 1만 1000㎡(3327평)에 이르는 19개의 전시공간을 갖추고 1997년 10월 18일 항공기 몸체 마감 재료인 티타늄 패널 수만 장으로 장식된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최초 예산의 10배가 훨씬 넘는 1억 3500만 유로가 투입된 빌바오 구겐하임은 날씨에 따라 금빛과 은빛의 아우라를 내뿜는 마력으로 금속으로 치장된 꽃이라는 ‘메탈 플라워’란 별칭을 갖고 있다.
개관식에 참석한 후안 카를로스 1세(1938~, 재위 1975~2014) 스페인 국왕이 “20세기 인류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극찬했듯이 빌바오 구겐하임은 빌바오 시민의 자긍심이자 스페인의 자랑이며 세계적인 건축 유산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광장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를 형상화한 설치작품 ‘마망’ ©Fergus Tuomey from Clonard, Ireland
미술관의 성공 비결, 미학적 가치
미술관 건물이 곧 예술품이라는 찬사가 끊이지 않는 빌바오 구겐하임의 명성은 미학적 가치에서 나온다. 새로움을 넘어 미래의 건축유형을 제시한 역동적인 생명성을 지닌 디자인과 날씨와 밤낮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독특한 건축재료, 이 둘이 빌바오 구겐하임의 미학적 가치를 떠받치는 양대 축이다. 이는 곧 혁신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천재성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에서 운영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명품 타이틀 브랜드 덕을 톡톡히 본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빌바오 구겐하임 건물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틀이 없는 비정형 구조물이라는 데에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사각형 또는 변형된 사각형 형태의 통일된 틀을 갖춘 가운데 외관상 층수 구분이 가능한 구조이기 마련인데 빌바오 구겐하임은 이런 고정된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건물의 구조를 규정하는 틀 자체가 없고 기하학적 덩어리들이 자유롭게 이어져 있다.
가로 130m, 폭 30m, 높이 55m의 미술관 건물은 좌, 우, 앞, 뒤, 위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관람자들에게 안기고 있다. 이 때문에 빌바오 구겐하임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강변에 떠 있는 거대한 한 척의 배와 같기도 하고 강 건너에서 관찰하면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느낌이 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꽃송이 같기도 한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디자인의 위력은 외관을 뒤덮고 있는 금속재료에 이르면 감동의 열기가 더욱 뜨겁게 올라간다. 미술관 외관 전면을 감싸고 있는 금속재료는 항공기 외장재인 티타늄이다. 네르비온 강에 노니는 물고기의 비늘을 닮았고 청명한 빌바오의 하늘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철강 산업도시 빌바오의 옛 영광을 기리는 소재이기도 하다.
빌바오시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역사성을 티타늄이라는 금속재료에 녹여낸 게리의 발상이 놀랍다. 내식 및 내열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티타늄은 빛이 나는 흰색으로 화창한 날에는 금빛을, 흐린 날에는 은빛을 띠는 등 날씨와 시간, 보는 방향에 따라 색상과 형태가 달라져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외벽 장식에 동원된 티타늄 패널은 모두 3만 3000여 장으로 무게만 60톤이다. 강물에 비치는 미술관 모습과 야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빌바오 구겐하임 광장에 설치된 제프 쿤스의 작품 ‘Puppy’ ©Zarateman│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경제적 가치와 주요 소장품
해마다 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 행렬로 개관 5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한 빌바오 구겐하임은 도시 내 호텔 증축과 상권 번성, 취업률 증가 등 지속적인 경제효과를 유발하며 문화관광도시 빌바오를 상징하는 핵심 브랜드로 이미지를 굳혔다.
소장품은 미니멀리즘,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개념미술 등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현대미술 작품 위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미술관 광장에 설치된 제프 쿤스(1955~)의 꽃 강아지 작품 ‘퍼피’와 산책로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대형 거미 구조물 ‘마망’의 인기가 높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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