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는 ‘Ctrl+Z’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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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스네일
일로 만난 사람과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할 때 내가 항상 서두에 밑밥처럼 깔곤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편이라 말이야.”
나는 자칭 ‘선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주위 인간관계를 친밀도 단계별로 마음속으로 분류하고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기도 한다. 이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거나 경계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웬만큼 친해지기 전에는 이런 성향을 티 내지는 않는 편이지만. 각설하고 그만큼 관계에서 ‘선’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직장을 다니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게 내 기준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스스럼없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 1위로 ‘상사나 동료와 인간관계’를 꼽았으며 퇴사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조사에서도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일보다 사람이 싫어 회사를 떠난다고 답했다. 결국 업무 자체보다는 관계의 어려움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건 상사나 동료의 행동이 선을 넘는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워질 때부터였다.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고, 어디부터는 내 권리를 주장해도 되는 것인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점차 넘으면 안 되는 선에 대한 기준이 흐릿해져 갔다. 회사에서는 이미 내 기준으로 상식을 벗어난 일이 너무 많이 벌어졌고 선 넘는 행동을 여러 번 참고 넘기다 보니 급기야 언제 ‘선을 넘었다’라고 느껴야 되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흐릿해진 선만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유연성을 배우고 있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선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 한 번 넘은 선을 뒤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오프라인 세상에는 Ctrl+Z(컴퓨터에서 작업 실행을 취소하는 단축키)도 없고 뱉은 말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기능도 없다. 그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선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맺고 끊을지, 어떻게 긋고 지킬지, 어느 시점에 얼마큼씩 넘어가도 되는지. 서로가 한 번씩만 더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나만의 선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묘안을 오늘도 곰곰이 궁리해본다.
댄싱스네일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_ 외 두 권의 에세이를 썼고 다수의 도서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매일 그리고 쓰는 자가 치유를 생활화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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