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잃은 입맛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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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 보리밥
▶형제식당 보리밥세트
/보/리/밥/
살려 보려고 노력해도 통 입맛이 돌아오지 않을 때가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다. 저릿저릿 시원한 맛, 칼칼한 맛, 향신료 범벅인 향긋한 맛 등 별별 음식이 백약무효다. 이럴 땐 보리밥에 열무 같은 푸성귀 얹고 된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딱이다. 구수하고 상큼하기도 하다. 데굴데굴 돌아다니는 보리알이 씹는 재미까지 준다. 낱낱이 돌아다니니 비비기도 쉽다. 시원한 오이냉국까지 곁들이면 열기가 내려 소화도 잘된다.
햇보리 수확이 모두 끝난 시점이다. 아무리 북쪽 밭이라도 지금은 보리를 걷고 메밀을 심어놓았다. 보통은 5월 5일 입하(入夏)가 지나면 보리를 걷기 시작한다. 에선 곡우를 지나 입하에 들면 맥량(麥凉)이라 해서 비로소 보리가 익는다 했다.
보리(대맥)는 메소포타미아 삼각주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와 양쯔강 상류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인류의 주곡 중 하나다. 아시아의 쌀, 만주의 콩, 유럽의 밀, 북방의 수수, 신대륙의 옥수수와 함께 기원전부터 인류를 먹여 살려온 생명 줄이다. 그 역사를 약 1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선 주몽신화에 처음 보리가 언급된다.
하지만 어디서든 보리를 밀이나 쌀보다 하찮게 여겼다. 쌀밥 보리밥 놀이에서도 그렇다. 어디서나 잡곡(雜穀)이다. 중국어로는 따마이. 일본에선 무기라 부른다. 영어로는 바를리(barley), 특히 영국 발음은 ‘발리’에 가까워 우연하게도 우리 발음 ‘보리’와 비슷하다.
보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겉보리와 쌀보리 두 종류를 심는다. 논에서 나는 쌀보리로는 밥을 짓고 밭에 심는 겉보리는 주로 사료나 장을 담그는 용도로 쓴다.
보리밥은 맛있게 짓기도 어렵다. 미리 충분히 불려놓아야 한다. 보리밥 전문점에선 미리 보리를 불려놓아 부드럽게 밥을 짓는다. 화력 좋은 장작불 가마솥에다 물을 충분히 잡아 오래 짓는 방법도 있다.
보리는 백미보다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많고 특히 다이어트에 좋아 요즘엔 젊은 층으로부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춘궁기의 보릿고개를 겪었던 노년층은 보리밥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지만 추억을 되살려 좋다는 이들도 많다.
보리밥은 그냥 먹는 것보다 비빔밥에 딱 어울린다. 구수한 향기가 된장과도 산나물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전국 산 입구에 보리밥집이 모여 있는 이유다. 돼지불고기 등이 있다면 쌈채와 곁들여 싸 먹어도 좋다. 찰기가 없어 요즘 같은 날씨에 술술 넘어간다.
만년 잡곡 취급받던 보리가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곡물로 다시금 인정받은 것은 위스키와 맥주가 발명되면서부터다. 맥아(malt)를 주원료로 하는 이 두 술이 나오며 존재감이 올랐다. 보리에 싹을 틔운 후 바로 건조시킨 것이 맥아다. 보리[麥] 싹[芽]이란 뜻이다. 순우리말로 엿기름이다. 식혜나 고추장을 담글 때 쓰는 엿기름은 기름 종류가 아니다. 기름(oil)이 아니고 보리가 싹을 틔우도록 ‘기르다’ 할 때의 기름(raise)이다. 엿은 단맛이 난다는 뜻이다.
수메르인이나 고대 이집트인들이 처음 맥주를 만들 때는 맥아를 쓰지 않았다. 보리를 갈아 빵 반죽을 만든 후 이를 발효시켜 맥주를 담갔다.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맥주는 술이라기 보다는 죽처럼 걸쭉한 상태로 추정된다. 맥주는 곧 빵이었다.
위스키에도 보리(맥아)를 쓴다. 맥아를 증류해 알코올을 생성시키고 이를 증류하는 양조법을 개발했다. 세상 모든 액상 재화 중에서 용량 대비 값이 비싸기로는 위스키가 상위에 있다. 허드레 잡곡 보리가 위스키 양조에 쓰이면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갖게 됐다. 인생 유전이라더니 곡물 유전이다. 마침 휴가철인 요즘 산과 계곡에 햇보리를 맛나게 즐길 수 있는 식당이 깔려 있다.
전국의 보리밥 맛집
★의왕옛날보리밥
경기 의왕시에도 보리밥 골목이 있다. 보리밥과 나물을 한 상 가득 차린다. 다양한 나물 찬을 취향대로 올리고 참기름, 고추장에 쓱쓱 비비면 향취가 싱그럽다. 별도 쌈채도 나온다. 보리밥은 잘 흩어지니 성미 급한 이도 곧잘 비빈다. 입에 넣으면 아삭한 쌈과 부드러운 나물, 낱낱이 흩어지는 보리알의 식감이 좋다.
★팔도강산
광주 무등산 보리밥 마을에 있는 이 집은 남도 식탁답게 황송할 정도로 푸짐하다. 제철 나물 찬과 장아찌, 젓갈, 김치 등을 동그란 쟁반에 빼곡히 차려내고 돼지불고기와 달걀찜 등 든든한 단백질 반찬을 곁들여 낸다. 보들보들한 보리밥은 나물에 비벼 먹기 딱 좋다. 참기름과 고추장도 별미지만 넣지 않아도 그럭저럭 맛나다. 된장국도 허투루 낸 맛이 아니다.
★형제식당
서울 회현역 인근 남대문시장에 유명한 보리밥 골목이 있다. 하나같이 보리밥과 칼국수, 냉면을 판다. 콩나물, 상추, 무생채 등 반찬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주문 즉시 쓱쓱 얹어 준다. 쌀과 보리를 반반 넣은 보리밥이다. 보리밥을 주문해도 비빔냉면, 칼국수를 맛보기로 준다. 반대로 주문해도 마찬가지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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