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가 침묵을 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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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갈비뼈 아래에 위치한 간은 신비로운 곳이다. 무게가 1.5㎏ 정도인데 인체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장기다. 간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을 분해하고 합성한다. 지방간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체는 남는 에너지를 모두 지방으로 저장하기에 살이 찌면 간에도 기름이 낀다. 간은 영양소만 아니라 각종 호르몬의 균형도 맞춘다. 약, 술 심지어 독까지 해독한다. 알코올의 경우 간에서 독성이 있는 아세트알데히드가 됐다가 독성이 없는 아세트산으로 분해된다. 숙취가 생기는 건 알코올 분해의 중간단계인 아세트알데히드 때문이다.
간은 이렇게 각종 물질의 합성과 대사, 분해를 담당하기에 몸의 화학공장이라고 한다. 간의 다재다능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 <별주부전>이 있다. 중병에 걸린 용왕이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라를 보내 토끼를 속여서 바다로 데려온다. 하지만 잡혀 온 토끼가 임기응변을 발휘해 간을 육지에 떼놓고 왔다며 목숨을 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옛날이야기로 오늘날 <별주부전>을 다시 쓴다면 토끼는 용왕에게 간의 일부를 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신장(콩팥)은 두 개라서 이식수술을 할 때 하나만 떼주면 된다. 하지만 간은 하나인데도 간이식을 받는 사람도, 간이식을 하는 사람도 모두 산다. 간을 이식할 때 간의 대략 40~50%를 떼어서 주는데 수술만 잘되면 수여자나 공여자 모두 아무 이상 없이 잘산다.
그렇게 간은 전체의 30%만 있어도 정상 기능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간의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변이나 간암의 경우 간의 70% 이상이 파괴되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상이 생겨서 병원에 오는 경우는 이미 회복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상황이 흔하다. 그래서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한다. 실제로 암으로 인한 사망률 1위가 폐암이고 2위가 간암이다. 간을 위해서라면 술, 지방은 삼가야 한다.
이가 있으면 잇몸이 있고 간이 있으면 쓸개(담낭)가 있다. 간 밑에 달린 엄지손가락만한 쓸개는 간에서 만든 담즙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담즙은 지방의 분해를 돕는다. 아직도 비싼 돈을 주고 곰의 쓸개인 웅담을 먹는 사람이 있는데 웅담은 기껏해야 지방 분해를 돕는 소화제 정도에 불과하다. 간 기능을 도와 피로를 푼다는 영양제도 많지만 피로의 원인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영양제 한 알 먹어선 피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간이 안 좋아서 몸이 피로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이 간의 70% 이상이 파괴된 상황까지 왔다면 영양제 한 알로 좋아질 수는 없다.
간은 침묵의 장기다. ‘조용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라는 말이 있듯이 간이 침묵을 깨고 비명을 지르기 전에 간을 아끼고 보호해줘야 한다. 간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다면 뭔가를 먹는 게 아니라 먹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몸도 그렇지만 간도 무리하면 쉬는 게 최고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빛나는 외모만큼 눈부신 마음을 가진 의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주치의〉를 비롯해 7권의 책을 썼다. 의사가 아니라 작가로 돈을 벌어서 환자 한 명당 진료를 30분씩 보는 게 꿈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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