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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주자 10여명뿐 비파 명맥 살리기 어깨 무겁지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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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연주가 정영범
생김새는 기타를 닮았고 소리는 가야금을 닮았다. ‘비파(琵琶)’는 삼국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현재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악기다. 가야금, 거문고와 함께 삼현(三絃)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궁중 안팎에서 널리 연주됐으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명맥이 끊겼다. 비파가 복원된 건 1988년에 이르러서다. 본격적으로 악기와 연주법이 복원되고 연주자 육성이 이뤄진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파의 역사는커녕 비파라는 악기 자체가 생소한 사람이 더 많다.
비파 연주자 정영범(33) 씨는 어깨가 무겁다. 비파의 명맥을 잇고 비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비파 연주자는 10명이 조금 넘는다. 더 많은 무대에 올라 비파의 매력을 알리면 더 많은 연주자가 나오고 비파를 접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이런 바람으로 정 씨는 오늘도 비파 줄을 튕긴다. 올해로 19년째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그와 비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비파는 어떤 악기인가?
비파는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현악기다. 물방울 모양의 몸통에 긴 목이 달렸다.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견고한 밤나무로 만들며 줄은 명주실을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비파는 중국의 악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서역에서 들어와 오랜 세월 우리 고유의 악기로 발전했다.

비파에도 종류가 있나?
우리나라 비파는 세 종류가 있는데 향비파와 당비파, 월금이다. 향비파는 줄이 5개고 목이 직선이다. 당비파는 줄이 4개고 목이 뒤로 꺾여 있다. 월금은 향비파나 당비파와 달리 몸통이 달처럼 둥글다. 줄의 수나 생김새에 따라 비파의 음색이 다르고 연주하는 음악도 다르다. 현대에 들어 전통음악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줄 수나 음판을 늘린 개량 비파도 있다.

비파는 언제 처음 접했나?
중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악기 교실에서였다. 바이올린과 플루트, 가야금, 비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비파라는 낯선 악기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생김새도 소리도 특이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비파로 동요와 아리랑 등 익숙한 노래들을 연주했는데 원래 알던 노래를 비파로 연주하니 새롭고 신기하게 들렸다. 방과 후 교실을 통해 비파를 접한 뒤 어느덧 따로 배우고 싶을 만큼 비파가 좋아졌다.

그러다 비파를 전공하기로 한 건가?
원래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다. 한때는 요리사를 꿈꿨다. 악기를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예술고등학교를 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면서 비파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특이한 악기라서 전공자가 많지 않았지만 비파를 계속 배우고 연주하고 싶었다. 국립전통예술고에서 비파를 전공하고 서울예대 한국음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연주 실력을 키우고 싶어 중국 북경국립중앙음악학원에 진학했다.

비파를 전공하고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명맥이 끊어졌던 비파를 복원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을 뿐더러 비파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전공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비파 전공자를 육성하는 대학도 서울예대와 중앙대 2곳뿐이다. 비파를 전공하고 현재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1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책임감이 크겠다.
전공자가 많지 않아 비파의 명맥을 잇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 많이 느낀다. 끊어진 명맥을 다시 잇는 일이 쉽진 않다. 여전히 비파를 복원하고 체계를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다 해놓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지금이 즐겁다. ‘비파의 미래가 너에게 달렸다’는 소리를 들을 땐 보람도 느낀다.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대학에 갔을 때만 해도 국악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왜 중국 악기를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비파 전공인데 주전공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비파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도 늘면서 응원을 많이 받는다.

비파를 배우는 사람이 많은가?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특히 20~30대가 많다. 왜 비파를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면 악기 모양이 예뻐서, 우연히 들어본 소리에 반했다고 한다. 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악기를 배워보고 싶었다는 분들도 있다.

이쯤되면 비파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비파의 매력은 연주할 때 나온다. 비파는 악기를 안고 연주를 한다. 연주를 하다보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소리도 매력적이다. 가야금의 명랑한 소리와 거문고의 둔탁한 소리의 중간쯤이랄까? 두드리면 타악기 느낌도 난다. 연주법도 다양하고 전통음악을 넘어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멜로디와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평소 연습은 얼마나 하나?
연주 연습은 매일 3시간 정도, 많으면 6시간까지 한다. 따로 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악기를 잡고 있는 편이다. 연주 감각을 잃지 않도록.

악기 관리도 중요할 텐데.
비파는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인 만큼 줄 관리가 중요하다. 공연 전에 반드시 줄에 상처가 있지 않은지 만져보며 확인하고 흠이 있으면 미리 갈아준다. 또 줄을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거나 송진을 발라 줄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공연은 자주 하나?
몇 년 전만 해도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비파는 생소한 악기였다. 그러나 비주류 악기를 발굴하고 무대에 올리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비파 연주를 할 기회가 많아졌다. 대중들도 비파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즐긴다. 다른 악기와의 앙상블 무대도 늘었다. 최근에는 공연을 직접 기획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비파를 자주 접하기는 쉽지 않다.
공연장의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공연장에 일부러 가지 않더라도 비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할 것 같다. 거리공연(버스킹)도 방법이다. 거리에서 비파를 쉽게 접하다 보면 공연장을 찾는 분들이 늘지 않을까? 그런 기회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는?
내년이면 비파를 시작한 지 20년이다. 조금은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아직 국내에 비파만 연주한 전문 앨범이 전무하다. 비파의 매력을 듬뿍 담은 연주 앨범을 만드는 게 목표다. 기념 연주회도 하고 싶다. 이런 활동이 결국 비파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주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비파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게 교육용 악기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흔히 유통되는 중국 비파는 10만 원에도 구할 수 있지만 한국 비파는 저렴한 것도 100만 원이 넘는다. 초보가 구입하기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입문용 악기를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고 싶다. 비파 연주곡도 만들고 있다. 이제 겨우 4~5곡에 불과한데 나만의 비파 연주곡을 더 만들어볼 계획이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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