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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을 확립한 사운드의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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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음악을 작곡해온 이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처음으로 음악평론에 도입한 이는 바로 마이클 니만이었다.

주로 추상회화 등의 표현에 이용되던 미니멀리즘의 개념은 음악에서는 최소한의 노트와 소리를 사용하여 패턴화 된 음을 반복시키는 형태를 지칭하는 의미를 가진다. 

1960년대 무렵부터 활발하게 증식해 나간 미니멀 음악은 1968년 마이클 니만이 영국 잡지 스펙터에 전위음악가 코넬리우스 카듀를 다룬 원고에서 ‘미니멀리스트’라 지칭하면서 음악적 스타일이 하나의 장르로 굳혀졌다. 

마이클 니만은 이후 1974년 자신의 저서 에서 미니멀 음악의 정의를 확장했다.

영국 작곡가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이 2009년 3월 카타니아의 마시모 극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44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그리고 음악학자인 마이클 니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에 강렬한 서정성을 융합해내면서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때로는 그의 음악이 필립 글래스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좀 더 감정을 지니고 있었고 보다 고전적인 맛이 있었다. 

다른 미니멀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마이클 니만의 음악 또한 여러 엄격한 규칙을 설정하고 따르는 프로세스로 운용됐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바로크 중심의 작곡법과 음악사를 공부한 마이클 니만은 루마니아의 민속음악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슈톡하우젠을 비롯한 당시의 조류에 친숙해지지 못하면서 작곡활동을 잠시 접고 평론가로서 글을 기고했다. 

이후 1976년 브라이언 이노의 레이블 옵스큐어를 통해 을 내놓으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리게 되며, 자신의 오케스트라 ‘마이클 니만 밴드’를 결성한다. 

마이클 니만은 세세한 조각들이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들을 주로 그렸고, 이 균일함은 냉담할 정도로 감상적이었다. 이것은 일부러 감정을 쥐어짜내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마음을 울리는 악곡들이었다.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와 마이클 니만은 영화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감독/작곡가 콤비일 것이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 그리고 <프로스페로의 서재> 등이 도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결과물들은 화면과 음향이 서로를 보완하며 완벽하게 결합해갔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수학적인 영화들을 만들어온 피터 그리너웨이의 거의 모든 음악을 담당해온 마이클 니만은 자신의 주특기인 바로크를 비롯한 기존 고전들을 기반으로 미니멀리즘의 기술을 이식해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음악의 역할을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2007년 해운대 스펀지 컨퍼런스 룸에서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영국의 거장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마이클 니만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단연 제인 캠피온의 영화 <피아노>의 사운드트랙이었지만 기존 마이클 니만 팬들은 그가 <피아노>의 영화음악가 정도로 오해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심지어 <피아노>는 기존 마이클 니만의 스타일과도 비교적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영화 속에서 말을 할 수 없는 주인공 아이다가 극중 연주하는 음악은 전문 음악인이나 피아니스트의 방식보다는 아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니까 마이클 니만이 쓴 음악은 영화 자체보다는 주인공 아이다와 더 가까운 위치에 놓여있던 셈이다.

<피아노>는 마이클 니만의 과거 경력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결국 할리우드에서까지 본격적으로 그에게 영화음악을 의뢰했다. 

이미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업물에서부터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전달해온 마이클 니만이었지만 이후 영화음악들에서 감정적인 부분들은 유독 두드러졌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작품들, 그리고 <가타카>, <애수>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는 구조나 실험보다는 감정과 선율에 집중했고 다수의 사람들은 대체로 마이클 니만의 이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 

마이클 니만은 <피아노>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도 왔다 갔는데, 2004년 내한하여 지가 베르토프의 무성영화 <무비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공연했다. 

영화음악 이외에도 다수의 오페라와 발레음악, 가곡집,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의 94 파리 컬렉션 음악, 프랑스 고속철도 TGV 개통을 기념한 악곡 등을 광범위하게 작업해왔다. 

마이클 니만의 음악은 급진적인 실험과 엄격한 구조, 그리고 낭만적인 선율을 과감하게 포괄해 내고 있다. 때문에 딱딱한 구조에 집중하게 되는 한편 무심결에 아득한 정경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단순한 멜로디가 수차례 반복되면서 파도가 형성되고 말미에는 자연스럽게 귀에 울리는 효과를 거치면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16분음표 아르페지오나 드론이 아닌, 여유와 침묵의 미니멀리즘이다.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일절 제거하고 극한까지 심플하게 밀어붙이지만 그럼에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남겨진다. 

많은 팝 음악이 포스트 미니멀리즘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에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을 즐기지 않더라도 마이클 니만의 음악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블러의 데이먼 알반, 마크 알몬드, 그리고 디바인 코미디 등이 이들을 추종하면서 함께 작업하거나 커버하곤 했다.

그저 단순히 차분한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도 마이클 니만의 음악은 추천할 만하다. 그의 작업물들은 친숙하고 애틋한 멜로디의 보고이며, 감상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창의성과 발상에 대해 경탄하게끔 만든다. 

표면적으로 감지되는 음의 수는 적을지 모르나 이를 받아들이는 감정의 총량은 가히 압도적이다.

☞ 추천 음반

◆ Decay Music (1976 / Obscure)

앨범의 A면 ‘1-100’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동명의 단편영화를 위해 쓰여진 곡이었다.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순서에 따라 편집한 영화에 감독은 이런 산술적인 연속성을 잘 정리한 리듬을 요구했고, 마이클 니만은 단조롭게 누적되어가는 체계를 떠올리게 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빈틈없이 100소절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그는 마찬가지로 100소절의 구조가 완성될 때까지 서서히 작품을 조립해 나간다. 

각 단계마다 일정한 규칙이 존재했고, 수의 누적에 따라 화음의 농도와 구성이 일치하도록 디자인해 놓았다. 하지만 이 결과 영화의 길이를 초과해버리면서 결국 영화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원곡은 27분, 후에는 조금 더 빠른 버전의 13분짜리 ‘1-100 (Faster Decay)’가 CD에 보너스로 수록되기도 했다. 좌우 스테레오 분할이 심한 편으로 가급적이면 조용한 환경에서 헤드폰으로 감상하면 좋다.

◆ Wonderland (1999 / Venture, Virgin)

마이클 니만은 <피아노> 이후 정서적인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고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 <원더랜드>의 사운드트랙은 그런 일련의 악곡집 중 가히 정점이라 할만하다. 

화려한 런던의 밤거리 뒤에 가려진 애절함과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마이클 니만은 실험적인 신고전주의 음악인이기도 하지만 선율적이고 따뜻한 음악 또한 잘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음반을 통해 증명해 냈다. 숭고하고 마음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사운드트랙.

한상철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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