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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면적의 4.5배 바다 지키기 “오늘도 묵묵히 파도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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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멀티플레이어, 해양경찰청 윤명수 경감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그만큼 지켜야 할 해양영토도 넓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안선의 길이는 1만 4962㎞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30배에 달한다. 해양경찰이 지키는 바다의 면적은 45만㎢로 육지면적보다 약 4.5배 크다. 우리 해양영토를 책임지고 있는 해양경찰이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았다.
해양경찰은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3년 12월 내무부 치안국 소속 해양경찰대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부산 앞바다를 수시로 침범했던 일본 불법조업 어선을 단속하고 북한의 공작원 남파 방지를 막는 역할을 했다.
해양경찰이 하는 일은 의외로 다양하다. 섬 주민 중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바다에서 조업하던 선박에 문제가 생겨도, 낚시하던 시민이 조난을 당해도 해양경찰이 달려간다. 우리 바다를 침범하는 불법어선을 막고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처럼 긴급상황 때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해양경찰의 몫이다. 그야말로 ‘바다 위의 멀티플레이어’다.
거친 파도와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삶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최근 해양경찰청 감사담당관실 윤명수 경감이 〈해양경찰이라서 다행이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경비정 정장으로 근무했던 윤 경감이 해양경찰이 하는 일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겪었던 일화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윤 경감은 2004년 순경으로 해양경찰 근무를 시작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00톤급 경비정의 정장을 역임한 뒤 해양경찰청감사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다.
해양경찰이 가장 바쁜 계절이 왔다. 무더위가 시작된 6월,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윤 경감을 만났다. 그곳에 그가 탔던 경비정이 정박해 있었다.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는 100톤급뿐 아니라 500톤, 1000톤, 3000톤급 대형 경비함들도 보였다. 윤 경감은 동해와 제주 서귀포 쪽에 함정 중 가장 큰 규모인 5000톤급 선박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경감이 정장으로 근무했던 경비정은 100톤급이다. 함정 중에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윤 경감이 직접 경비함정 내부를 안내했다. 두꺼운 철제 수밀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좁은 공간이 작은 식당, 정장실, 조타실, 숙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모두 11명이 근무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해양경찰이 하는 일을 잘 모른다. 해양경찰이 하는 주 업무는 무엇인가?
해양경찰은 해양경찰법 제14조에 명시된 업무를 하고 있다. 해양영토 주권을 수호하고 해양사고 대응 등 바다의 안전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또한 바다로 나온 선박의 교통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해양경찰청이 있는 인천은 서해 접경지역이라 해군과 해양경찰이 협조하는 일도 많다. 지금도 해군과 해양경찰이 주기적으로 어선이나 선박이 북상하는 것을 차단하는 월선선박 차단훈련을 함께하고 있다. 또한 육상경찰과 마찬가지로 경찰관직무집행법의 적용을 받는 국가직 경찰공무원이다. 육상에서 발생한 사건에도 사안에 따라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2022년까지 100톤급 경비정에서 근무했다고 들었다. 경비정에서 근무할 때는 어떤 일을 했나?
함정마다 각자 맡은 경비구역이 있다. 그 구역에서 위험요소나 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이 큰 곳을 중심으로 순찰임무를 맡는다. 순찰을 돌다보면 어선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선박 기관이 고장난다거나 항해 중에 선박이 어망에 걸리는 등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순찰을 돌면서 이런 위급한 상황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100톤급 경비정은 한번 바다에 나가면 3박 4일간 출동을 나간다. 3박 4일간 관할 구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고 육지로 돌아온다.

함정에서 겪었던 일 중 잊지 못하는 일이 있나?
2022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인천 옹진군 덕적도에서 경비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급하게 상황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낚시꾼이 “사람 살려”라는 소리를 듣고 신고한 것이다. 신고받은 근처 해수욕장 부근으로 이동하는데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밤에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연안이라 함정으로는 이동하기 힘들어서 고무보트를 타고 수색한 끝에 구조에 성공했다. 구조자는 캠핑객이었는데 더워서 바다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진 것이다. 바다에서 생존수영을 하면서 버티다 밤이 되자 휴대폰 불빛을 켜고 해경에게 계속 위치를 알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전율이 흐른다. 바다에 여행 오는 분들이 구명조끼 없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니 주의해야 한다.

함정순찰을 하면 섬 주민들과도 가까워질 것 같다.
어촌계장, 이장들이 해양경찰 업무를 많이 도와준다. 그분들이 중심을 잘 잡아서 민원이 빠르게 해결될 수 있다. 고마운 분들이다. 많은 섬들 중 제일 마음의 위안을 얻었던 섬이 덕적도다. 바다에서 경비활동을 하다가 기상이 나쁘거나 항해가 어려울 때 피항할 수 있는 섬이다. 함정순찰을 하면서 덕적고에 야구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빡빡머리인 학생이 배가 아파서 함정에 실려온 적이 있다. 덕적고 야구부라고 하더라. 그 이후로 야구부 이야기만 들어도 반갑다.

섬 주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안전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은 일도 많았겠다.
바다에서는 분단선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느 위치부터 항해가 안되는 구역이고 우리가 흔히 북방한계선(NLL)이라 하지만 해도상이나 레이더 화면, 그림으로만 볼 수 있다. NLL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진 것은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때였다. 당시 해양경찰 경비함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250톤급 경비함에서 조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 함정은 연평도보다 더 먼 덕적도 서쪽바다에 있는 어로한계선에서 우리 어선들의 조업을 지키고 상황대응을 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연평도는 늘 특수한 상황을 겪는 곳이라 주민들의 걱정이 많겠다.
100톤급 경비정 정장으로서 연평도를 다시 찾은 적이 있다. 연평도는 꽃게가 유명하다. 해마다 4월 1일부터 연평도에서 꽃게잡이가 시작되는데 그때마다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이 출몰한다. 그래서 꽃게잡이철이면 연평도 부근에 경비세력을 증가배치하고 있다.

불법조업 중국어선으로 피해보는 지역은 연평도뿐만이 아니다.
백령도 역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백령도는 독도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본토 기준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이다. 백령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북한의 장산곶인데 여기까지 거리가 약 1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민감한 지역이기도 하다. 당시 백령도 순찰을 나가니 레이더에 점 수백 개가 찍혀 있었다. 전부 불법조업 중국어선이었다. 그 어선들과 우리 경비함정이 밤새 밀고 당기기를 했다. 배타적경제수역(EEZ)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다가가면 도망가고 멀어지면 다시 들어오는 식이다. 요즘도 500톤급, 1000톤급 이상의 대형 경비함들이 상시로 EEZ까지 지키고 있다.

위급한 상황을 겪으면 바다가 두려울 때가 많겠다.
바다가 두려운 것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 나갈 때마다 자연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파도가 칠 때 순찰을 나간 적이 있는데 주변에 있는 물품들이 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함정이 크게 흔들렸다. 그때 두려웠다. 정장으로서 같이 근무하는 승조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제발 이 순간이 무사히 지나가길, 우리를 돌봐달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직원들이 불안해 할까봐 절대 내색하지는 않는다.

100톤급 경비정이 3박 4일간 순찰을 나가면 승조원들끼리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겠다.
직원들을 바다 위의 가족이라고 부른다. 특히 승조원들을 비롯해 함정까지 생명을 건 운명을 함께하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부분이 많다. 코로나19 때 함정근무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시 덕적도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된 엄마와 세 살배기 아이를 응급 후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함정 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이 높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했다. 환자를 이송해야 할 때면 격리를 철저히 하고 음압장비와 방호복까지 잘 챙겨야 했다.

올해로 해양경찰로 근무한 지 20년이 됐다. 바다 근무가 어렵지 않았나?
갈수록 바다가 중요해지고 있다. 바다가 중요해지면 해양경찰이 해야 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실제로 주변국이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등이 먼바다에서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지 않나. 최근 국립해양과학관 같은 기관에서 먼바다에 과학조사를 나가거나 할 때 협조를 구한다. 해경은 사람을 구조하는 일뿐만 아니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을 보면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해경도 바다를 지키는 전문가로서 역량을 펼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양경찰로 근무하면서 뿌듯했던 순간은?
바다에서는 멀티플레이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바다에서 경찰관의 업무는 기본이고 소방관이나 군인의 임무도 수행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해양경찰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쉽지 않은 직업이지만 그만큼 임무를 마치면 뿌듯하다. 응급환자가 바다 후송을 마치고 무사히 육지에서 119구급차에 올라타는 모습, 암초에 좌초된 배가 무사히 이초돼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 해양경찰이라는 자체가 자랑스럽다.

올해로 해양경찰 창설 70주년이 됐다. 국민에게 해양경찰이 어떤 존재로 비쳐지길 바라나?
해양경찰은 지금도 묵묵히 파도와 싸우며 맡은 임무를 다하고 있다. 해양경찰은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되 꼭 필요한 물, 공기 같은 물질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해양경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이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장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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