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사회의 재난 디지털 블랙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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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 보안 대응체계를 점검하고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주요 통신사업자와 시큐아이, 한국통신인터넷기술 등 정보보호 전문서비스 기업의 전문가들과 5월부터 6월까지 5회에 걸쳐 주제별로 ‘사이버보안 역량 강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가졌다. 디지털 블랙아웃을 예방하고, 디지털 핵심 인프라인 인터넷 서비스의 사이버보안 체계를 고도화하겠다는 취지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사이버보안의 중요성을 엄중히 인식하고 국민 생활과 국가의 안정을 위해 높은 수준의 보안체계를 구축·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재난으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블랙아웃의 정체는 무엇일까?
초연결 사회의 그늘, 통신 끊기면 세상과 단절
블랙아웃(Blackout)은 도시나 넓은 지역의 전기가 일시에 끊기는 대규모의 ‘정전’을 의미한다. ‘정전 등으로 보이지 않게 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차용한 표현이다. 보통 블랙아웃은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나 전력망 설계의 취약성 때문에 발생한다. 전기는 저장이 안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넘는 순간 해당 지역은 자칫 정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전기가 1초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정에서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만 산업현장은 상황이 다르다. 정유나 석유화학 공정은 순간 정전에도 막대한 손해가 발생한다. 1초 정전에도 공장 파이프라인을 통해 흘러가는 중간제품들이 곧 굳어버린다. 전력 공급이 재개돼도 파이프를 해체하거나 열을 가해 고체화된 제품을 치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2011년 9월 15일, 대한민국 전국이 대규모 정전, 이른바 ‘블랙아웃’이 됐다. 과거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이러한 정전사태는 없었다. 이로 인해 무려 1415만 가구와 5775개의 기업체가 단전사태를 경험했다. 도심 곳곳의 신호등이 꺼졌고 건물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은행의 자동화기기(ATM)는 물론 입출금 자체가 불가능해져 은행이 마비됐다. 병원에서도 진료가 중단되는 대란이 발생했다.
반면 ‘디지털 블랙아웃’은 모든 전기가 차단되는 정전은 아니다. 디지털(Digital)과 블랙아웃(Blackout)의 합성어인 디지털 블랙아웃은 디지털 기기들의 작동이 중단돼 통신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말한다. 자연 재난, 사회 재난, 복합적 재난 등으로 발생한다.
현대사회는 모든 인프라가 네트워크라는 통신망으로 연결돼 있는 초연결 시대다. 사람, 프로세스, 데이터, 사물, 치안, 의료, 교통 시스템 등 사람과 기기, 생활과 물질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이로 인해 모든 산업 분야에서 물리적 거리의 한계가 사라지고 모든 게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편의성을 제공한다.
반대로 디지털 변환으로 인한 초연결 사회는 우리의 일상을 ‘초고속 단절’로 바꿔버릴 수 있다. 네트워크 먹통 사고인 디지털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단순 통신장애 수준을 넘어 국가적 기능 마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22년 10월 15일 발생한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로 통신 시스템들이 마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순간의 통신 마비로 카카오 결제·택시·게임·음악·계정 인증 등 카카오와 연동된 모든 서비스가 전체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2021년에는 KT 유·무선 인터넷망이 마비됐다. 사고 발생 시 KT는 디도스 공격(특정 인터넷에 트래픽을 몰리게 해 서버를 다운시킴)이라고 했지만 라우팅 오류(네트워크 경로를 잘못 설정해 발생함)라고 정정했다. 네이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글, 유튜브 등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기업 역시 여러 번의 송수신 장애를 겪은 바 있다.
블랙아웃의 대표적 방안은 통신망 이원화
디지털 기기의 의존도가 높은 현대사회에서 디지털 블랙아웃의 공포는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디지털 블랙아웃의 예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은 디지털 블랙아웃을 새로운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디지털 블랙아웃이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에 따라 비상용 네트워크를 작동하는 안전 대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음성 통신이 가능한 ‘비상용 네트워크(ACN)’, 국가 비상 상황에도 주요 시설 간 통신 연결이 가능한 ‘정부 비상 통신 서비스(GETS)’, 재해 복구 인원에게 통신 우선권을 주는 ‘우선 접속 서비스(PAS)’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과기정통부도 카카오톡 사태를 겪은 2022년 10월 30일 ‘디지털재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센터·부가통신서비스의 재난 대비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이번 다섯 차례의 간담회도 그 일환이다.
디지털 블랙아웃에 대비하는 대표적 방안은 하나의 통신망이 마비될 경우 백업용으로 연결된 다른 통신망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통신망 이원화다. 지상의 인프라가 파괴돼도 통신 연결이 가능하도록 데이터 백업과 이중 보관용 사이트를 구축한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경우 대부분 이원화가 진행된 상태고 정부도 망 이원화에 힘쓰는 중이다. 과기정통부의 ‘2022년 제4차 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에 따르면 KT·LG유플러스·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등 통신 4사는 2022년 말까지 대상 시설 96.9%의 통신망 이원화와 95.5%의 전력공급망이 완료됐고 2023년 신규 지정된 시설에 대해서는 올해 안에 모두 이원화를 완료할 예정이다.
세상은 우리가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초연결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망 이원화, 망 공동이용 등을 통한 체계적 관리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끊기지 않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초연결 디지털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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