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만난 행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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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작은 한옥집에 살게 되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이 소중해졌다. 이사 오면서 블록으로 벽을 가리던 높은 담장을 허물고 거기에 작은 화단을 만들었더니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물론 옆집 가정교회(역시 한옥집이다)에 오시는 분들까지 꽃과 나무 덕분에 골목길이 환해졌다며 칭찬을 하신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저절로 밖으로 나가 골목을 점검하고 청소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좀 더 깨끗하고 정다운 골목을 만들고 싶어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 사람의 웃음소리가 나는 골목이야말로 내가 가장 바라는 동네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 바람대로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인사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골목 끝 집 아저씨는 단 한번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다. 어쩌다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쳐 내가 인사를 건네면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답례를 하고는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몹시 내성적인 성격이거나 어려서부터 친화적인 언어와 몸짓을 익히지 못해서일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건 그 맞은편 집에 사는 대학생이다. 그 대학생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마주칠 때마다 먼 산을 바라보고 그냥 지나친다. 아내와 나 모두 그 집 어른들과 잘 지내는 사이고 인사도 잘 나누며 지내기에 더욱 황당하다. 그렇다고 “나 때는 말이야.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당연히 인사를 하고 그랬는데…”라고 꼰대 짓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그냥 한 번 인사를 텄으면 그다음부터는 무심하게 미소만 지어도 될 것을 그 기회를 놓쳐 저렇게 곤혹스러운 표정을 매번 지어야 하다니.
그러다가 우리 집에 워크숍을 하러 오는 어떤 예비 작가의 글이 생각났다. 누군가 못된 말을 하거나 얄밉게 구는 것을 보고 화를 내기보다는 ‘저 사람은 아픈 거야. 아파서 그래’라고 생각해보라는 구절 말이다. 그 친구가 혹시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이해와 연민의 눈으로 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022년 영국에서 출간된 <언에이징(Unaging)>이라는 책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네 가지 핵심 요소인 인지 활동, 신체 활동, 심리 활동, 사회 활동을 반드시 실천하라고 권한다. 인지 활동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고 신체 활동은 운동이다. 그리고 세 번째 요소인 ‘심리 활동’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더 잘 돌보고 사랑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배우자는 물론 독서 클럽 회원, 운동 친구 등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시작해도 마지막 사회 활동은 저절로 해결된다. 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행복의 조건인 것이다.
골목길에서 시작해 너무 멀리 나간 건 아닐까? 아니다. 공동체 가입 전에 길에서 무심하게 나누는 목례 하나만으로도 삶의 윤기는 달라진다. 인사를 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버스 기사님이 건네는 인사에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같이 인사하는 사람과 그냥 인상을 쓰고 타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 인생을 살 것 같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편성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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