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툴빼툴 희귀·난치질환 ‘꼬마작가’ 그림을 ‘희망’의 굿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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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사회적기업 ‘민들레마음’ 손유린 대표
“이 캐릭터는 알약을 먹어주는 양 ‘바바’예요. 알약을 잘 삼키지 못하는 아이가 누군가 자기 대신 약을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죠. 그 옆에 ‘콩이’라는 캐릭터는 또 다른 친구가 집에 있는 강아지를 그리워하며 그렸어요. 입원 치료를 하는 아이들은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과 반려동물을 몹시 보고 싶어 해요.”
손유린 대표가 양손 가득 건넨 굿즈(팬 상품)마다 귀여운 동물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토끼·강아지·해파리·곰…. 환히 웃고 있는 색색의 캐릭터들은 바바·콩이·토토·봉구·파리 등 제각각 이름도 지녔다. 모두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이라고 했다.
‘민들레마음’은 희귀·중증난치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활용해 수첩·펜·자석·스티커 등 다양한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고용노동부 인증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손 대표는 그렇게 만들어진 굿즈의 판매수익 가운데 절반을 다시 어린이병원에 후원한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그것을 다시 아이들을 위해 쓰는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이 이 기업의 비전이다. 바람에 널리 퍼지는 민들레 씨처럼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파급력을 가지길 바랐다. ‘민들레마음’이란 기업명에는 이 같은 소망이 담겼다.
손 대표는 수익창출만큼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그 행위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중증의 난치질환을 앓는 이들은 길어지는 병원 치료에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림 그리기 같은 활동은 병을 치료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라고 한다. 완화의료는 병원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서비스로, 제대로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희귀·중증난치질환 아이에게는 필수지만 국내엔 인식과 인프라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손 대표는 완화의료의 일환으로 서울아산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9곳과 협력을 맺고 아이들과 병원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상상나라 그림교실’을 운영한다. ‘바바’와 ‘콩이’의 출생지가 바로 이 그림교실이다.
그림교실의 선생님이기도 한 손 대표는 경영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다. 졸업도 전에 창업에 나선 이유가 있다. 그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병원 안에서 마주했다고 털어놨다.
병원 봉사활동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남들보다 7년 늦게 대학에 갔다. 늦게 입학한 만큼 대학생활을 알차게 하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취직하면 못할 것 같아 지금 할 수 있을 만큼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처음 간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반갑다고 달려온 아이들의 몸엔 링거와 각종 의료기기가 부착돼 있었다. 놀란 내색을 감추고 놀아주는데 계속 옆에서 “삐삐” 하는 기계음이 났다. 신난 아이들의 표정과 대비되는 상황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경중은 달라도 모두 희귀·중증난치질환을 앓는 아이들인데 그들의 지상 최대 과제는 ‘어떻게 하면 더 신나게 놀까’였다. 대학생들은 1주일에 세 시간 놀아주는 게 전부지만 아이들은 그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시험기간과 겹쳐 못 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1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거다. 그게 너무 미안해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고 싶었나?
어른들은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치료비 적게 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완전히 다르다. 병원에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 안에서 교육도 잘 받아야 하고 정서적인 안정감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병원 안에서 치료와 교육, 놀이, 생활이 다 함께 이뤄져야 하는 거다. 그게 ‘소아청소년 완화의료’의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어린이병원 가운데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데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도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했지만 여전히 많은 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봉사자·관리자 수가 턱없이 모자라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렵다. 완화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에 대한 기반이 마련되려면 정부 지원도 중요할 듯하다.
완화의료가 시범사업으로 도입된 게 2018년인데 여전히 11곳의 병원에서 시범사업 형태로만 운영되고 있다. 국내 희귀·중증난치질환 환아가 13만여 명에 이른다는 걸 감안하면 양적·질적으로 모든 게 무척 부족한 실정이다. 완화의료를 도입하려는 병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의료인력을 필수로 둬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높은 요구 수준에 비해 정부 지원은 2억 원 정도밖에 안되니 참여하려는 병원이 적을 수밖에 없다. 완화의료를 도입하는 순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필수의료서비스로서 완화의료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희귀·중증난치질환 환아들은 어떤 것을 힘들어 하나?
내가 만난 아이들 중 과반은 소아암이었다. 아이들은 계속 몸이 성장하기 때문에 암세포도 빨리 자란다. 성인과 달리 전이 형태도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주만 해도 잘 놀던 아이가 며칠 만에 피부색이 달라질 정도로 병색이 짙어진 모습도 봤다. 또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 많다 보니 쉽게 무력해진다. 완치까지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부모들은 병이 유전질환이라는 생각에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조부모 등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는 경우도 봤다. 특히 환자 대부분이 6인 병동에서 생활하는데 90% 이상 엄마 보호자가 함께한다. 즉 어린이병동은 12명이 언제나 함께 생활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병동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 병원 안에서 할 게 없으니 먹고 자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보고 하는 게 전부다. 온 가족이 아픈 식구에게 전념하니 환아의 형제는 소외되기 쉽다. 아이뿐 아니라 가족을 위한 완화의료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그림’을 통해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했나?
창업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었다. 첫째, 아이들이 직접 문제해결에 참여하도록 하자. 둘째, 아이들의 희망차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자. 즉 ‘감성팔이’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던 중 한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후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등 아홉 개 상급종합병원과 협력을 맺고 ‘상상나라 그림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거기서 나온 작품을 활용해 다양한 굿즈를 만든다. 주제 없이 아이들이 그리고 싶은 걸 자유롭게 그리도록 한다. 이게 고양이인지, 지렁이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상품이 된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중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 아이들의 그림으로 만든 100여 개의 굿즈는 네이버·카카오톡 스마트스토어, 전국 15여 개 업체에서 판매하고 있다. 수익의 절반은 어린이병원에 기부한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다시 아이들 자신을 돕는다는 데 의미가 크다.
그림을 상품화하는 것만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위안을 받는 게 느껴진다. 처음 만나면 부끄러워 말을 못하는 아이도 그림을 통해서는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잘하는 것 등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한다. 말보다 그림을 더 편하게 여기는 거다. 코로나19로 그림교실을 열지 못했을 땐 드로잉 키트(꾸러미)를 보내줬다. 봄엔 스티커로 꽃 만들기, 여름엔 부채 만들기 키트 같은 것들을 담았다. 눈비 맞을 일 없고 늘 온도와 습도가 일정한 병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계절을 선물하고 싶었다. 작품을 제출한 아이에게는 상장과 명함을 수여한다. 명함에는 이름과 함께 ‘작가님’이라고 써주는데 그걸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눠주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누군가 ‘몇 학년이니’ 하고 물어보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난감해한다. 병원이 삶의 중심이 된 아이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데 ‘꼬마작가’ 명함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수 임영웅의 전국투어콘서트 굿즈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향후 사업의 방향성이 궁금해진다.
우리의 주 고객은 10~20대 여성이라 임영웅 씨 쪽에서 제안이 왔을 땐 놀랐다. 나중에야 느낀 건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거다. 즉 ‘민들레마음’이 추구하는 가치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다양한 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이유다. ‘한 아이를 온전히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지 않나. 희귀·중증난치질환과 싸우는 아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 함께 관심을 갖고 이들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해주길 바란다.
조윤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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