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 창고가 동네 거실로 삶이 쌓이고 이야기가 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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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중림창고
‘중림창고’에 도착하자마자 웃음이 났다. 처음 가는 곳이라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했는데 도착해보니 ‘중림창고’ 바로 아래 단골 카페가 있는 것 아닌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번 와본 골목이었다. 서울 중구 충정로에 위치한 중림창고 주변은 광화문과 서울역, 신촌을 오가며 잘 아는 동네였지만 헤매고 싶지 않아 지도를 보며 찾아온 터였다.
오면서도 전혀 몰랐다. 대로변을 따라 즐비한 고층빌딩과는 상반된 복고풍의 아기자기한 골목에 감탄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 아파트 담벼락이며 모퉁이 화단, 가게 앞에 놓인 화분까지 골목 안은 지천이 장미라 그저 신기했다. 도착해서야 여러 번 와본 곳임을 알아차리고 어이가 없었다. 목적지에만 함몰돼 있었나 싶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이정표도 확인하곤 했는데 분명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서울 지하철로 중림창고에 가려면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충정로역이 가장 가깝다. 자주 다니던 단골 카페는 5호선 출구를 이용했다. 그리고 도착지를 중림창고로 설정한 길찾기 앱을 따라온 이번에는 2호선 출구 쪽이었다. 평소 다니던 길의 반대편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익숙한 주변 풍경에 방향 감각이 돌아왔지만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진입 방향에 따라 골목의 풍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중에 알았다. 본디 골목이란 다채로운 모습과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공간임을. 지금도 골목 안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없이 다양한 삶이 교차하고 있다. 도시의 묘미인 동시에 도시를 살 만한 공간으로 완성시키는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중림창고는 창고로서 본래 역할뿐 아니라 골목의 생명을 지키는 든든한 존재였다. 나는 누구보다 그 골목을, 중림창고를 제대로 본 것이다.
지극히 역사적인 무허가 창고
중림창고는 2019년 11월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하 1층~지상 2층(연면적 267.26㎡) 규모로 주민공동이용시설과 전시 및 판매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원래 50년도 더 된 낡은 무허가 판자창고의 대변신이다.
중림창고의 장소적 기원은 중림시장에서 기인한다. 서소문 밖에 위치하던 중림시장은 조선시대 종가(鍾街:종로)·이현(梨峴)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칠패시장이었다. 칠패란 포도청 순라군이 감찰하는 여덟 개의 패(牌) 가운데 남대문 밖에서 연지(蓮池)까지 순라를 도는 칠패가 주둔하는 곳에서 유래했다. 특히 어물전(魚物廛)이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해 근대에는 경성수산시장으로 불리며 1980년대까지 번창하던 수산시장이었다. 가락시장과 노량진시장도 모두 이곳에서 파생했다.
시장은 새벽에 열렸는데 점포가 없는 상인들이 장사를 마치고 남은 물건을 인근 언덕배기 자투리땅에 얼기설기 건물을 지어 보관하던 곳이 바로 오늘의 중림창고였다. 언제 철거돼도 이상하지 않을 무허가 창고라고 치부하기에는 깨나 뼈대 있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의 기능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어갔고 시장 역시 노량진으로 가락동으로 이전하자 중림시장은 급속도로 쇄락하며 창고 또한 버려지고 말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규모는 축소되고 모습은 변했을지언정 시장의 기능만큼은 수백 년 역사를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다. 창고가 버려졌어도 헐리지 않았고, 시장이 쇠락했다고 언덕배기 골목길이 없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조선시대 칠패시장으로 불리던 중림시장까지 ‘깜짝시장’이란 별칭으로 여전히 2023년의 첫 새벽을 깨우며 열리고 있었다. 변하되 변하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동네 거실 된 어물전 창고
다시 중림창고가 있는 골목으로 가보자. 현재 길의 정식 명칭은 ‘성요셉문화거리’다. 서울로7017, 주변 지역 7개 길(중림1·2길, 서계1·2길, 후암1·2길, 회현길)과 연결돼 걷고 싶은 길로 재단장됐다. 성요셉이란 좁은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중림창고와 마주하고 있는 성요셉아파트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요셉아파트는 1970년 지어진 주상복합아파트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신축 당시에는 아파트 바로 뒤에 있는 중림동 약현성당 소유로 성직자들이 거주했다. 이후 민간에 매각돼 오늘에 이른다. 빛바랜 분홍색 페인트의 외관이 주변의 최신식 고층빌딩들과 대비돼 마치 컬러로 복원된 흑백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골목의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길게 휘어진 건물의 독특한 형태와 함께 1970년대 주거 환경까지 살펴볼 수 있어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중림동 약현성당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성당으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명동성당보다 2년이나 빠른 준공이다.
골목은 가장 인간적인 길이다. 도로가 빠르게 대량 수송을 하는 자동차의 길이라면 골목은 머물거나 멈춰 있을 수 있는 사람의 길이다. 그래서 골목은 성요셉문화거리처럼 과거의 흔적이 많다. 역사는 물론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곳이 골목이다. 모두 인간적인 것들이다. 설사 모양만 골목이라도 대문이 굳게 닫혀 있거나 자동차가 그곳을 점령하고 있다면 골목이라 할 수 없다. 골목은 어디까지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이 교차되는 곳이어야 한다.
길이 55m, 좁은 폭은 1.5m, 넓은 폭은 6m, 대지고저차 8m의 길가에 위치한 중림창고는 골목을 압축해놓은 공간이었다. 건물 내부의 폭은 좁지만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건너다 보일 만큼 깊다. 이런 깊이감은 외부공간과 수직 동선으로 연결됐다 끊어지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공간·시각적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골목의 모양을 따라 휘어진 성요셉아파트와 결을 같이한다. 거기다 땅이 길가에 길게 면해 있기 때문에 거리에 서면 건물의 형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다. 단골 카페를 오가면서도 중림창고의 전체를 의식하지 못한 이유다.
다만 중림창고는 이 같은 특징을 적극 활용했다. 모든 면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으며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밖에서 다 보일 수 있도록 1층을 전면 개방했다. 건물에 머무는 사람도, 지나가는 사람도 서로를 불러들이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어물전 창고가 동네 거실이 돼 사람과 사람의 삶을 품고 있다.
도시를 완성하는 골목의 힘
4m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중림창고와 성요셉아파트가 자아내는 독특한 풍경은 요즘 뜨고 있는 여타의 골목과는 매우 다르다. 오랜 세월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들쑥날쑥한 경계, 삐죽빼죽 튀어나온 가게들이 인상적인 아파트 앞길, 그 동선을 물 흐르듯 이어가는 중림창고의 개방성은 골목을 하나의 뮤지컬 무대처럼 만든다.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절로 든다.
이처럼 진짜 골목에는 경관의 변화를 다양하게 만드는 장치가 가득하다. 현재 중림창고 1층은 골목책방 ‘여기서울 149쪽’과 함께 2층에는 과거 판자창고 시절부터 있던 수선집과 지하 주민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운영되며 주민들은 안방처럼 편안하게 드나든다. 책방 이름의 149쪽은 성요셉아파트 번지수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외부공간이 있다. 바로 건물과 도로 사이의 경사지에서 건물로 진입하기 위해 붉은 벽돌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만든 단이다. 언뜻 보면 계단이나 벤치, 작은 툇마루 같다. 성요셉아파트 주민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언덕을 올라가다 잠시 쉬었다 간다. 때때로 대로변에 있는 높은 빌딩의 직장인들이 잠깐 나와 쉬거나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늘 사람들이 있는 골목을 만들어주는 장치인 셈이다.
도시가 건강하려면 골목이 있어야 한다. 빌딩과 아파트만 있는 곳은 도시일 수 없고, 골목만 있는 곳도 도시일 수 없다. 도시의 핵심은 다양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진짜 이야기는 가장 인간적인 길, 골목을 타고 흐른다. 성요셉아파트가 비록 낡고 빛바랬지만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골목이 지켜졌고,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림창고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다. 물론 보관은 언제나처럼 중림창고의 몫이다.
강은진 객원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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