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녹아든 ‘정오의 트레비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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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라고 하면 ‘역사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종교의 도시’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로마를 찾은 사람들은 광장마다 건물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물을 뿜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기쁨과 활력을 느낀다.
사실 로마의 중심지 안에서만 ‘족보’ 있는 분수만 꼽아 봐도 100개가 넘으니, ‘분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로마를 본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한 영국의 시인 셸리의 말에 수긍이 간다. 그렇다면 로마에 또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면 ‘분수의 도시’도 적절하지 않을까.
로마의 분수와 관련된 음악이라면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O. Respighi 1879-1946)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네 개의 로마의 분수가 주는 인상을 시로 묘사했는데 이 시를 글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썼다. 그래서 이것을 교향시(symphonic poem)라고 한다.
이 교향시의 제목은 ‘로마의 분수(Le Fontane di Roma)’로 <새벽의 발레 줄리아의 분수>, <아침의 트리톤 분수>, <정오의 트레비 분수>, <황혼의 빌라 메디치 분수>로 구성되어 있다. 네 곡 전체 연주시간은 대략 15분 정도 되며 1917년 로마에서 초연되었다.
이 네 개의 분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는 단연 트레비 분수이다. ‘낭만의 로마’를 대표하는 이 분수는 건축과 조각과 물이 한데 어울려 역동적인 무대를 이루고 있는 후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이 분수의 물은 그냥 수돗물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물이다.
기원전 19년에 건설된 ‘처녀수로’라고 하는 지하수로를 통하여 로마에서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산악지대의 수원에서부터 흘러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수로를 건설한 장본인은 로마제국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던 아그리파. 아그리파라면 우리가 미술시간에 석고 데생할 때 많이 보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는 이 수로를 이용하여 로마 시내에 자그마치 160개나 되는 분수를 만들었다. 그럼 왜 이 수로의 이름이 ‘아그리파 수로’가 아니라 ‘처녀수로’가 되었을까? 또 이 처녀의 정체는?
사실 이 처녀는 이름도 성도 모른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 공병들이 땡볕아래에서 수원을 찾다가 기진맥진했는데 웬 처녀가 나타나 물이 솟는 곳으로 이들을 인도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 수로를 ‘처녀수로’라고 한다. 트레비 분수의 배경을 이루는 벽면을 보면 윗부분에 이 전설의 내용을 담은 두 개의 조각이 좌우에 있다. 왼쪽은 아그리파가 수로 건설 계획을 검토하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처녀가 로마 공병들을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 모습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수원과 트레비 분수 사이의 낙차는 불과 4미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수로의 경사는 1킬로미터 당 평균 2.5센티미터도 안 되는 셈이다. 2000여 년 전에 이 정도로 ‘아슬아슬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이토록 긴 지하수로를 건설할 수 있었으니 로마인들의 측량기술과 시공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수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8세기에 한번 복원되었으며, 또 오랜 세월이 지난 1453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후 많은 세월이 흐른 1730년에 새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2세는 로마를 더욱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트레비 지역 개발 설계 공모전을 열었다. 당선작은 30세의 젊은 건축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안이었다. 이리하여 트레비 분수는 1732년에 착공되었다.
하지만 공사 중 공사비 부족으로 공사가 여러 번 지연되고 니콜라 살비는 공사 중 이런저런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175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이 분수는 다른 건축가와 조각가의 손을 거쳐 1762년에야 오늘날과 같은 황홀한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비 분수를 보면 하얀 조각상들이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듯하다. 풍요의 여신과 건강의 여신 사이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가 마치 개선 마차에 올라탄 듯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다. 두 마리의 말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끌고 있는데 각각 격동의 바다와 고요한 바다를,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은 바다를 상징한다.
매끄럽게 깎은 돌 수반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강한 대비를 이루며 분수의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수반에 흘러내리고, 흘러내리는 물 위에는 한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반사된다. <정오의 트레비 분수>에서는 바로 이런 격렬하고 역동적인 인상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열린 박물관’이다. 따라서 시대, 종교, 인종, 국적, 문화, 사회계급, 언어 등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는 분수 소리가 들리는 거리와 광장에서는 잊고 있던 삶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또 로마를 떠날 때는 트레비 분수에 와서 등 뒤로 동전을 던진다.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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