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83세 폐지 줍는 노인들을 작가로 ‘풍파 마스터’ 지혜에 청년들도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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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
‘젊잔애, 해뜰날 온다’, ‘기왕에 태어났으니까 멋지게 살아봐’, ‘그럴수잇어 사람이니까’, ‘힘내라 힘내. 할매가 응원해’….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맞지 않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별말 아닌 것 같은 단순한 메시지인데 자꾸만 곱씹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글 옆에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아이가 그린 것 같은데 ‘할매’? 물음표를 줄줄이 안고 다시 들여다보니 그림 한쪽에 ‘신이어마’이라고 쓰여 있다. 신이어? 시니어! 이 ‘할매’들은 대체 누굴까?
평균 나이 83세, 사원증 받은 16명 어르신
그 정체를 찾아 따라간 끝에는 30대 초반의 청년이 있었다.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의 심현보 대표다. ‘신이어마’은 2030세대가 제품을 기획하고 어르신들이 제품을 제작·포장해 만드는 아립앤위립의 디자인 브랜드다. 즉 어르신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이를 심 대표와 직원들이 노트, 엽서, 지갑 등 다양한 굿즈(팬 상품)로 개발한다. 그중엔 ‘할매가 그린 손그림 화투’, ‘24절기 손그림 달력’, ‘인생꿀팁: 오늘을 담다’ 스티커와 같이 기발한 아이디가 담긴 것이 많다. 공통점은 ‘할매’의 특징을 담았다는 것. 젊은이들은 할매들의 꼬부랑 글씨, 서툰 그림을 보고 “귀엽다”며 환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이어마 네이버 스토어 관심고객 1만 7000여 명 가운데 대부분은 20대 여성이다. 뷰티브랜드 스킨푸드, 항공사 에어로케이, 영어회화 브랜드 민병철유폰 등 어르신과 전혀 상관없는 듯한 기업에서도 협업제안이 쏟아졌다. 할매들의 그림은 화장품 패키지에 새겨졌고 그 목소리는 항공사 기내방송에 흘러나왔다. ‘의외의 것과의 조합’, ‘새로운 가치 창출’은 심 대표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다.
심 대표는 자신의 할머니를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어느 날 할머니댁에 갔는데 할머니께서 폐지를 주워 모으고 계셨어요. 비록 취미로 하는 거였지만 무척 마음이 아팠죠. 할머니 주변엔 생계수단으로 폐지를 줍는 분들도 많았어요. 어릴 때 할머니 손에 자라 모두 친할머니와도 같은 분들이었죠. 하루 종일 수레 한가득 폐지를 모아도 손에 쥐는 건 고작 몇 천 원. 이래선 안되겠다,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기업에서 기획·마케팅을 하던 심 대표는 그날로 창업을 결심했지만 의욕과 달리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젊은 애가 뭘 뜯어먹으려고 왔냐”며 의심을 사기 십상이었다. 1년 넘게 지역구 복지관을 설득한 끝에야 겨우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노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일자리가 뭘까’,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대화 소재가 고갈됐다. 그때 떠올린 게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며 장난치고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그린 그 ‘못생긴’ 그림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틀린 글자도, 칠하다 만 그림도,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 신이어마의 상품이 됐다.
수레 대신 색연필을 손에 쥔 16명의 어르신은 그렇게 새 일자리를 얻었다. 평균 연령 83세. 막내가 78세, ‘왕언니’가 90세다. 사원증도 있다. 심 대표는 어르신들을 ‘은미님’, ‘옥자님’, ‘복순님’ 하고 부른다. 그들이 한 명의 직원으로, 한 명의 작가로 오롯이 섰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기업명 아립앤위립은 ‘나(아·我)를 세우고(립·立) 우리(위·we)를 세운다(립)’는 뜻이다.
“폐지 수거는 공공 역할, 노인 일자리는 ‘관여도’ 높아야”
6명의 어르신 직원은 매주 수요일에 복지관에 모여 그림을 그린다. 나머지 10명은 포장을 담당한다. 그림이 굿즈로 제작되면 어르신들은 한 점당 1만~5만 원의 저작료를 받는다. 한 달 임금으로 치면 15만 원 정도다. 여기에 3개월마다 판매 수익의 10%를 추가로 받는다. 실제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얼마나 있을까? 더 이상 폐지 줍는 일을 그만둔 이도 있지만 여전히 계속 수레를 끄는 이도 있다. 심 대표의 바람은 더욱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폐지 줍는 일을 그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정규직을 늘려나가는 게 목표다. 일각에선 폐지 줍는 노인들이 자원순환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하기도 하지만 일자리 측면에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폐지 수거가 자원순환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만 노인들을 통한 민간의 기여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수익과 일자리 안정성도 떨어지고요. 폐지 수거는 공공에서 맡아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완전한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저희도 임금과 노동 시간을 늘려야 해요. 최근 한 명의 시니어정직원을 채용했지만 여전히 15명의 어르신은 파트타이머 형태로 일하고 있어요. 노인 일자리는 작업과정에 어르신들이 최대한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관여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기계가 할 수 있는 공정을 사람이 하게 하는 거죠.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노인들이 성취감과 사회적 효용감을 갖게 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게 사회적기업이 할 일이죠.”
16명의 어르신이 얻은 건 일자리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감도 얻었다. ‘내가 뭘 그릴 줄 안다고’ 했던 이들은 이제는 ‘상품이 언제 나오냐’며 먼저 묻는다. 자신의 작품을 주변에 선물하고 그림 그려 번 돈을 친구들에게 용돈 삼아 나눠주기도 한다. 소속감도 생겼다. 복지관에 모여 얼굴 맞대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다. 고립감은 폐지 줍는 노인을 비롯한 노년층이 겪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된다.
“죽으나 사나 해봐”… ‘신이어상담소’도 인기
일을 통해 일어선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위한 위로에도 나섰다. 매년 10월 2일로 지정된 ‘노인의 날’을 전후해 개최하는 ‘신이어상담소’를 통해서다. 젊은이들이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고민을 올리면 어르신들이 일일이 답변을 해준다. ‘연차가 쌓일수록 맡을 일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는 고민에는 ‘일을 못해 노는 사람이 많은데 일을 할 수 있어 복 중에 복이요’라는 답이,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돼 걱정이 많다’는 하소연에는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게 어디 있어. 걱정이 되면 더 연습을 해야지’라는 따끔한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80년 세월의 지혜가 어디 가겠는가. ‘죽으나 사나 해보는 거야’라는 단순한 한마디에 청춘들은 열광했고 어느 눈 밝은 편집자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다. <일단 살아 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카멜북스)>라는 책으로, ‘풍파 마스터 어르신들의 삐뚤빼뚤 고민 상담’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심 대표는 고민을 나누면서 청년과 기성세대 사이에 존재했던 편견이 사라지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청년과 어르신 세대는 실제로 마주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어요. 청년들은 어르신 세대를 고집 세고 뻔뻔한 사람들로, 어르신 세대는 청년들을 이기적이고 때로는 무섭기까지하다고 생각하죠. 모두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에요. 저는 늘 어르신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걸 배웁니다. 사업하면서 조급해지기 쉬운데 세상사 순리가 있다, 좀 기다리면 좋을 날 올 거라며 위로해주시죠. 청년들은 어르신들과 말하는 걸 어렵게 느끼는데 일단 이야기만 들어드려도 대화가 쉬워져요. 생각보다 참 귀여우시거든요.”
조윤 기자
박스기사
폐지 줍는 노인들 전국 약 1만 5000여 명 시급 948원 최저임금 10분의 1 수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의 숫자는 전국적으로 1만 5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2021년 12월~2022년 2월). 서울에는 25개 구마다 약 100명이 존재한다.
이들은 하루 평균 약 11시간 20분을 일했으며 이동거리는 12.3㎞에 달했다. 10명에게 위성항법장치(GPS) 목걸이를 부착해 동선을 추석한 결과다. 일평균 수입은 1만 428원이었다. 시간당 948원을 버는 셈이다. 조사 기간인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당장 생계가 달려 있어서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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