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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홀대받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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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착해 보이세요.”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면 상대는 나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끼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요즘에는 착하다는 표현이 칭찬이 아닌 상대에게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쓰는 말이 됐기 때문이다. 자기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나 남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라 하는 줏대 없는 사람을 착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자신이 착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도, 누군가를 착한 사람으로 부르는 것도 망설여진다.
착하다는 말이 처음부터 이렇게 쓰였던 건 아니다. 착하다는 뜻인 ‘선(善)’은 산양을 뜻하는 ‘양(羊)’과 눈을 의미하는 ‘목(目)’이 결합한 회의 문자다. 양은 고대 유라시아 지역에서 제사를 위해 제물로 쓰이던 신성한 동물이었다. 신성한 동물의 눈은 인간이 풀기 힘든 문제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양의 눈을 가졌다는 뜻의 ‘선인(善人)’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정의롭고 현명한 존재만이 들을 수 있는 존칭이었다.
선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고대 철학자 맹자였다. 그는 4단(端)이란 개념을 만들어 선이 얼마나 중요한 도덕적 가치인지를 설명한다. 4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달려가 구하는 마음이 측은지심이고, 잘못한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수오지심이라 하며, 상대를 배려해서 사양하는 마음을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을 시비지심이라고 한다. 4단의 마음을 잘 성장시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을 때 천하를 다스리는 힘과 지혜가 생긴다고 맹자는 힘줘 말한다. 주목할 점은 4단이 만들어진 때가 춘추전국시대였다는 점이다. 춘추전국시대는 동생이 형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배신하며 전쟁과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던 혼돈의 도가니였다. 이런 무질서를 해결하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세기의 철학자가 내린 통찰의 결과가 ‘착하게 살자’라는 것은 뜻밖의 결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격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 역시 귀담아들어야 할 조언이기도 하다. 우리는 착함을 외면한 대가로 늘 불안하고 고독한 삶을 살게 됐다. 타인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기거나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혹시 나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지, 불안해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게 됐다. 눈앞의 실리를 쫓다 보니 타인과는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힘든 겉도는 관계가 되고 만다.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어디에도 내 편은 없고 경계하고 외면해야 할 상대만 가득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가 돼간다. 이런 고립무원의 상황을 벗어나려면 다시 선한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도 중요하지만,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좀 더 도덕적인 가치에 마음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둬야 한다. 이때의 선함은 그 어원이 가리키는 것처럼 옳고 그름을 가려내어 내가 선택한 옳음을 따를 수 있는 현명한 용기를 말한다. 탐욕과 실리를 떠나 상대를 배려하고 아우를 수 있는 이타적인 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착한 사람으로 불리는 게 싫지 않다. 다만 그 착함이 무기력하고 복종적이며 온순하기만 한 것이 아닌 신성한 양의 눈이 되기를 노력할 뿐이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uling) 대표이자 ‘마음 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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