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잊고 장인으로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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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챔피언 최창성 파티시에
지난 3월 프랑스 메스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제10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 우리나라 선수 34명이 출전해 31명의 선수가 금메달 1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9개를 획득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에는 전 세계 장애인 기술인이 참가해 컴퓨터수리·용접·양장·요리 등 다양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룬다. 2016년 이후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7년 만에 열렸다.
제과 직종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창성 파티시에도 영광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특히 제과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값진 승리를 거뒀다. 프랑스 선수 2명, 프랑스인 심사위원장이란 불리한 상황 속에서 그는 2위와 엄청난 점수 차이를 보여줬다. 결과 발표가 나지 않았는데도 프랑스인 심사위원이 그를 향해 엄지를 들어올렸다. 우승을 직감한 순간이었다.
대회 주제는 ‘세계 평화’. 최 파티시에는 폭격으로 화상을 입은 여인과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세계 평화를 이루자는 뜻을 공예품에 담았다. 동시에 아픔을 딛고 나아가면 아름다운 꽃, 즉 희망이 피어난다는 메시지를 디저트로 표현했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가운데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최 파티시에의 인생과도 유사했다.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네 차례의 수술과 어려운 재활 과정을 거쳤다. 발목에 장애가 남았지만 제과에 계속 도전해 제과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하고 월드초콜릿마스터스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그는 아픔을 딛고 꽃을 피워낸 모습 그 자체였다.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기보다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눈앞의 정상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 그는 ‘무엇이든 도전하라’고 권한다.
불의의 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입게 됐다고요. 그때의 심정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벌써 15년이 됐네요.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음주운전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사고 후 눈을 떠보니 28군데가 부러지고 발목이 돌아갔대요. 발목 신경이 끊어져 서 있는 것조차 고통이었어요. 병원에 1년 반 정도 있으면서 전신마취하는 큰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고요. 낮에는 가족이 보고 있으니 차마 내색하지 못하고 밤마다 혼자 많이 울었어요. 그러다 계속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혼자 앉고 걷는 게 안되니 침대 난간을 붙잡고 앉는 연습부터 했습니다. 엉덩방아를 수도 없이 찧었죠. 밤이면 혼자 복도 손잡이를 잡고 서는 것부터 걷는 것으로 나아갔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합니다.
앞으로의 삶이 걱정됐을 것도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그동안 해온 제과 일을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인데 문화센터나 복지관에서 강의라도 한다면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기능장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실무로 터득한 기술로 빵을 만들다가 이론 공부를 시작한 거죠.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책이 찢어질 정도로 달달 외웠습니다. 낮에는 공부와 치료를 하고 밤에는 홀로 재활 훈련을 한 거죠. 결국 시험도 합격하고 조금씩 걸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용기를 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선택을 한 거군요.
중도 장애인이 되리라는 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평소 운동도 많이 하고 태권도, 복싱도 했는데 이제는 못하게 됐잖아요, 그 자리를 초콜릿이 채워줬어요. 초콜릿 만드는 데 푹 빠져 각종 대회에 나가고 상도 받다 보니 월드초콜릿마스터스에서 국가대표로 뽑혔어요.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오직 실력으로 겨룬 대회였습니다.
초콜릿의 매력은 뭔가요?
초콜릿은 정말 정직해요. 온도가 1도라도 안 맞으면 굳지 않아요. 겉으로는 굳은 것 같아도 손으로 만지면 녹고 광도 안 나요. 꾸밈이 없죠.
이번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도 주특기인 초콜릿을 살려 제과 직종 대표로 나갔죠?
제빵 직종에 더 관심이 있는데 주변의 권유로 제과로 출전했어요. 제빵은 이스트(빵효모)를 넣고 제과는 베이킹소다나 파우더로 빵을 부풀리는 거예요. 제과는 예술도 반영해야 돼서 어려워요. 대회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오전·오후 3시간씩 6시간 진행됐습니다. 두 개의 모듈을 제작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되 모듈1은 무게 35~40g의 미니 케이크 15~20개, 모듈2는 80㎝ 이상의 초콜릿 조각을 만드는 게 주제였어요. 원래 2022년 5월 러시아에서 개최하기로 한 대회였는데 취소된 거예요. 러시아 대회 주제는 ‘바닷가 풍경’이라 서핑하는 아이들 모습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개최국이 프랑스로 바뀌고 그해 12월에야 규정이 새로 나왔어요. 3~4개월 남은 시점이었는데 다시 작품을 구상하고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전쟁으로 인해 화상 입은 여인의 얼굴을 표현했어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선수들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일 테니 출발선이 똑같다고 여겼어요.
다른 선수들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고민도 많았겠습니다.
저만의 기법이 있었어요. 여인의 얼굴에 화상 자국을 다크초콜릿으로 표현했는데, 열풍기를 세게 돌려 옆으로 녹으면서 퍼지게 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잘 시도하지 않는데 초콜릿에 자신이 있어 가능한 기법이었습니다. 또한 연습할 때 초콜릿과 설탕이 녹는 시간을 기록하며 시간 계산부터 철저히 했어요. 처음에는 작품을 끝내는 데 9~10시간 걸리더니 나중에는 7시간까지 줄어들더군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동시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초콜릿은 차가워야 굳고 조립할 때 잘 붙어요. 설탕은 뜨겁게 달궈 녹으면서 붙고요. 성질이 완전 반대죠. 저는 초콜릿과 설탕을 동시에 녹여 굳힌 다음 조립해가는 방식을 택했어요. 초콜릿에 설탕을 식히면서 올리는 다른 선수들보다 시간이 남을 수밖에요. 손이 비니까 디저트 크림도 만들고 녹였다 식혔다를 반복하며 광택이 더 나도록 했고요. 결국 마지막에는 40분 정도 시간이 남더군요.
어떤 각오로 대회에 임했나요?
제가 메달을 따고 관심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유럽이 제과·제빵의 강자지만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걸, 세계적 선수들과 겨뤄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메달을 못 따면 다음 선수들도 좌절할 것 같았거든요. ‘기능장도 못했는데 우리도 못할 거야’라며 도전조차 꺼릴까봐 걱정했죠. 저는 그 문을 열어주는 역할만 한 거예요. 그다음은 준비된 다른 선수들이 팍팍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요.
개최국인 프랑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죠?
프랑스 선수가 2명 출전했고 심사장이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심사위원에도 프랑스인이 있고요. 프랑스가 제과·제빵 직종에 자부심이 엄청나요. 그래서인지 견제도 심했습니다. 예를 들어 꽃을 만들어 연결하고 있는데 만드는 걸 못 봤다고 꽃을 떼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다른 심사위원이 봤다고 인정해주면서 넘어갔지만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됐어요. 총성 없는 전쟁터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는 일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금메달을 거머쥐었는데 우승을 직감한 순간이 있습니까?
선수별로 부스가 가로막혀 있어 서로 볼 수 없어요. 정작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몰라요. 심사위원만 돌아다니면서 보는 거죠. 어느 순간 관중석에서 하나둘 ‘오우’ 하는 탄식이 들렸어요. 다른 선수들의 작품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저는 하나씩 굳은 걸 연결해갔지만 다른 선수들은 초콜릿에 뜨거운 설탕을 올리면서 녹아버린 거예요. 취재진과 카메라가 점점 제 부스 앞으로 모였어요. 끝나갈 때쯤 프랑스 심사위원이 제게 엄지를 들어올리더군요. ‘앞서고 있구나’ 감이 왔어요. 마무리를 하자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팔에 화상 자국이 꽤 보이네요.
설탕은 180~200도에서 녹아요. 뜨거운 물은 팔에 튀어도 툭툭 털면 떨어지지만 설탕은 달라요. 잘 달라붙어 화상으로 이어지죠. 대회 당시에도 설탕이 손에 튀는 바람에 손가락이 부었어요. 살이 익고 고름이 나와 장갑이 안 들어갔을 정도로요. 팀 닥터가 괴사가 올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정도 아픔은 예전에 비해 견딜 만했어요. 더구나 아프다고 소홀히 하면 저를 위해 멀리까지 함께 온 스태프들에게 폐가 될 수 있잖아요.
불편한 다리로 대회에 임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다른 선수들이 지닌 핸디캡과 차이가 있었을 텐데.
사실 서 있는 자체가 힘들었어요. 고성능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 선수나 팔에 화상을 입은 선수보다 불리한 상황이었겠죠. 그래도 막상 집중하다 보면 힘든 건 잊어집디다. 대회는 어떻게든 끝냈으나 더 힘든 건 다음날이었어요. 다른 선수의 대회를 응원하러 갔는데 수많은 사람이 기념촬영과 사인을 요청했어요. 유명 셰프들이 ‘챔피언’이라고 부르며 모자나 앞치마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했고요.
5월 9일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받아 윤석열 대통령과 오찬을 했죠.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초콜릿을 준비했다고요.
기념될 만한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취임 1주년이라 축하하는 의미에서 초콜릿을 준비했습니다. 초콜릿이 등장하자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나비부터 장식한 밧줄까지 모두 초콜릿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나이가 돼도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건 너무 멋있어서 먹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고요. 며칠을 준비한 보람이 있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성취해나간 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꿈은 두드리면 반드시 이뤄집니다. 물론 꿈을 꾸기만 할 게 아니라 키워가야죠. 꿈을 키워가는 건 나의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안된다고 좌절하는 건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는 거예요. 장애가 있다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면 진짜 못하게 돼요. 저는 ‘장애인’이기보다 ‘애’를 빼고 ‘장인’이란 생각으로 할 수 있다고 되뇌었어요. 한 번에 올라가는 사람은 없어요. 계단을 밟듯 하나씩 올라가야죠. 조금씩 오르다 보면 눈앞에 정상이 보일 거예요. 다른 분들도 무엇이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선수현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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