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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개 업체가 원팀 매일의 실패가 모여 성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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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만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젊은 과학자들
‘시간이 녹아있는 곳.’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최영환 체계종합팀장은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의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만 보면 MDC도 여타 제어실과 크게 다른 점 없이 평범한 곳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직접 발을 디뎌보면 MDC에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이 직접 느껴집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는지 쏟은 시간과 열정을 느낄 수 있어요.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열정도 그만큼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최 팀장 역시 10여 년간 누리호 제작에 참여해왔다. 최 팀장뿐 아니다. 손종운 발사체생산팀 과장은 10년째 액체로켓 조립에 매달려왔다. 5월 25일 3차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를 우주로 올려보낸 엔진 중 2단 엔진이 손 과장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정규진 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도 엔진의 추력측정장치나 엔진공급계 핵심밸브류를 개발하면서 누리호 엔진제작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김태령 체계관리팀장은 2010년부터 엔진시험을 위한 설비 개발을 담당하다 2022년 1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형발사체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되면서 누리호 체계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말하자면 이들 네 사람이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는 일이 벌써 세 번째라는 얘기다. 그러나 ‘3’이라는 숫자도 이들에게 긴장을 늦춰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매 순간이 기도하는 기분이었다”는 네 사람은 발사가 성공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누리호 2차 발사(2022년 6월 21일)가 성공했기 때문에 3차 발사에 대한 부담감은 좀 덜하지 않았나?
손종운 과장(이하 ‘손’)
2차 발사 때와 같은 엔진을 납품해서 3차 발사 때는 좀 덜 떨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오니 달랐다. 발사의 모든 과정이 까다롭지만 발사체 각 단이 분리되고 엔진이 점화되는 과정이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발사체가 발사되고 1단, 2단이 분리되며 엔진이 점화되는 순간에는 사실 잘 쳐다보지도 못했다.
최영환 팀장(이하 ‘최’) 누리호 자체에는 37만 개 부품이 들어간다. 발사대를 만드는 데도 수많은 구성품이 필요하다. 바람이나 날씨는 또 다른 문제다. 발사체 발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맞물려야 한다. 37만 개 부품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발사를 미루거나 실패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니 2차 발사가 성공했다고 해서 3차 발사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발사가 반복될수록 긴장은 더 커지는 것 같다.
1, 2차 발사 때는 구성품을 납품하는 다른 300여 개 참여기업과 동일한 입장에서 국민과 함께 발사 성공을 기원하면서 발사 당일을 보냈다. 그러나 3차 발사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됐다. 체계종합기업이란 발사체 제작을 총괄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함께 발사 운용을 하는 기업이다. 본격적인 체계종합기업으로서 역할은 4차 발사 때부터 맡지만 3차 발사 때도 2023년 2월부터 발사체 제작에 참여하고 발사지휘센터에 들어가 참관하는 등 역할이 확대됐다. 그러니 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체계종합기업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누리호 4호기부터 6호기까지 제작에 대한 총괄을 맡아 역량을 기른다는 얘기다. 지금껏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던 업체들은 지금처럼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다만 제작 과정에서 구성품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하고 엔진을 조립하며 발사체 전체를 조립하고 발사체에 대한 시험평가를 하는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곳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누리호를 직접 쏘아올리는 발사 운용은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함께한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된 셈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됐다고 해서 누리호 제작과 발사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혼자만의 힘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아니다. 누리호 발사는 ‘원팀’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다. 300개 참여 업체와 항우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힘을 합쳐야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려운 점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신경쓸 일이 생겼다. 앞으로 기술 이전을 받게 될 우리가 얼마만큼의 속도로 기존의 업무를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김태령 팀장(이하 ‘김’)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막바지 발사 준비를 하는 상황에서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 궁금한 점을 해결하면 언제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이런 점이다. 지금껏 민간기업이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엔진을 처음 개발하던 때처럼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막힘없이 인터뷰에 임하던 네 사람의 말문이 닫힌 것은 3차 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물었을 때였다.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영환 팀장이 먼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웃었다. “발사체를 개발하는 그 어려운 작업에 힘든 점이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점이 신기하다”고 말하자 “육체적으로 좀 피로가 쌓였던 것을 제외하면 힘든 점이 없었다”, “조금 힘들어도 이내 이겨낼 수 있었다”고 답했다. 김태령 팀장은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일을 너무 좋아하고 보람있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팀장이 “굳이 힘든 점이 있다면 나로우주센터가 외진 곳에 있다보니 매일 뭘 먹을까 고민하는 일이었다”고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모든 과정이 힘들었을 테지만 이들은 그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나?
발사체에는 매우 많은 구성품이 복잡하게 들어가는데 이 중 하나가 이상을 일으켜 문제가 되는 경우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할 때가 있다. 실제로 엔진 고압탱크의 압력을 높여 시험하는 과정이 있는데 압력을 높여 안정화시키는 데만 반나절 정도가 걸린다. 그렇게 어렵게 시험 환경을 만들어 놓았는데 압력이 계속 떨어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 네댓 번 반복해도 같은 문제가 발생해서 항우연 연구원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1주일 내내 그것만 쳐다본 적이 있었다. 자면서도 도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걸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딱 해결한 순간 희열을 느꼈다. 그런 경험이 무척 많다.
정규진 연구원(이하 ‘정’) 아마 엔지니어들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는 것 같다. 발사체를 개발하다 보면 실패는 있어도 결국 성공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딘가에는 답이 있다.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는 어떻게 ‘답’을 얻었나?
보통 기술을 개발할 때는 선진 기술이나 비슷한 기술력을 배우고 시험평가해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런데 발사체 제작 과정에서는 참고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어느 나라도 핵심 기술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 연구, 추론이 많이 이뤄진다.
추력측정장치를 예로 들면 수평형과 수직형이 있는데 발사체용인 수직형으로 개발된 것이 없었다. 이걸 개발할 당시에 유럽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관련 장비 사진을 보고 추론해내기도 했다. 논문이라도 나와 있으면 데이터를 참고해 개발해낼 수 있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구글에서 검색해 나온 사진 한 장을 가지고 확대해 추론하는 거다.
밸브를 개발할 때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 발사체 엔진의 핵심 중 하나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터보펌프다. 이 터보펌프 배관을 연결하는 실(seal) 하나를 개발하는 일도 새로 시작해야 했다. 보통 테프론을 많이 사용하는데 업체마다 고유한 소재를 개발해 내세우고 있다. 한때는 외국 업체 제품을 수입해 썼다. 그러나 우리도 뭔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테프론을 분사해 실을 만들어낸 적이 있었다. 누리호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기존에는 없던 아이디어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엔지니어의 몫이다. 이렇게 답을 찾아가는 작업에는 언제나 성취감이 뒤따른다.



누리호 엔진은 어떻게 개발된 것인가?
기본적으로 누리호 엔진과 같은 액체로켓 엔진은 추진제라고 하는 액체산소와 연료를 별도로 실어서 공급해줘야 한다. 우리 몸의 혈관과 같은 시스템을 엔진이 가지고 있어야 해서 매우 복잡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낮은 압력으로 연료를 보관하고 있다가 터보펌프로 대기압의 90~110배가 되는 매우 높은 압력을 만들어 연소기로 쏟아붓는다. 그 과정에서 만약 조그마한 불꽃이라도 일어나면 폭발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엔진을 개발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누리호 1단에는 추력 75톤 엔진 4기가 묶여 들어가고 2단에는 75톤 엔진 1기, 3단은 7톤급 엔진 1기가 있다. 이 엔진들은 각각 미션이 다르다. 엔진에 들어가는 배관이 70개 정도인데 이 배관 하나하나 하는 일이 다 다르다. 배관뿐만 아니라 연소기, 터보펌프, 수십 종의 밸브류까지 모든 구성품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시 조립하고 시험하고, 조립하고 시험하는 걸 반복했다. 맨 처음에는 엔진 조립을 하는 데 3개월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5개월, 6개월까지 늘어났다.
엔진 설계는 항우연이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제작과 조립을 맡았는데 설계와 제작, 조립은 결국 하나로 움직인다. 엔지니어는 단지 공학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협업 없이는 개발이 이뤄지지 못한다. 제작 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설계를 담당하는 항우연이 다 모여서 머리를 맞대야 하나의 비행모델(FM)을 만들 수 있다.

‘원팀’이 됐기 때문에 누리호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가?
정확히 그렇다. 이를 테면 계속해 설계를 변경하면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 세금으로 개발하는데 낭비 없이 정해진 일정 내에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그런 책임감에 맞는 간절함, 절박함 같은 자세를 항우연 연구진이 먼저 주도적으로 보여줬다. 연구진이 앞장서 개인 시간을 희생하고 몇 년씩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민간 기업들도 그에 맞는 자세를 가지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2차, 3차 발사에서 성공했듯이 원활하게 기술 이전을 해서 완벽한 발사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사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에서도 성공률을 높여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고 싶다.
그와 관련해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기술 트렌드에 맞춰갈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액체로켓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을 실현했으니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무척 자부심을 느낀다. 지금처럼 누리호 6호기까지 문제없이 개발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고, 차세대 발사체의 엔진도 성공적으로 개발해내고 싶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1
누리호 3차 발사 타임라인

5월 25일 오후 6시 24분 발사
+ 2분 3초 1단 분리
3분 50초 페어링 분리
4분 27초 2단 분리
13분 13초 위성 1차 분리(차세대 소형위성 2호)
13분 23초 위성 2차 분리(져스텍) ※신호 미확인
13분 43초 위성 3차 분리(루미르)
14분 3초 위성 4차 분리(카이로스페이스)
14분 23초 위성 5차 분리 시작(도요샛 1~4호)
※도요샛 3호 ‘다솔’ 사출 실패 추정
18분 58초 누리호 비행 임무 종료
5월 25일 오후 7시 50분 누리호 3차 발사
성공 발표

박스기사2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
민간이 끌고 정부가 밀고 ‘뉴 스페이스 시대’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은 2027년까지 687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민간 체계종합기업이 주도하는 발사체 제작 사업이다. 2023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한국형발사체, 즉 누리호의 제작을 총괄하게 되는데 이 체계종합기업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선정됐다.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체계종합기업으로 누리호의 제작을 주관하면서 설계와 시험, 발사 운영 등 발사체 개발 전반에 대한 기술을 이전받게 됐다.
민간기업이 우주개발을 이끄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1월 28일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이 보유한 우주기술을 민간에 이전하고 세계 시장을 선도할 민간우주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전용 펀드를 만들어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을 발표하면서 “누리호의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누리호보다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추진,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기업과 연구기관이 다양한 시도와 비즈니스 모델을 펼쳐나갈 수 있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기반을 마련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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