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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발견한 대저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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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엔 사시사철 대문이 굳게 닫힌 대저택이 있었다. 담쟁이넝쿨이 어지럽게 엉켜 있던 높은 담장 안엔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하고 심지어 무서운 거인 할아버지가 산다는 소문까지 있어 마을 아이 누구도 안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봄꽃이 피었다 지고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 함박눈이 쌓여도 저택의 대문은 좀처럼 열릴 줄 몰랐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는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평범하고 작은 집이었을까?
그런데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동네 친구 집에 뭘 전해주러 갔다가 어릴 적 봤던 것과 똑같은 저택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이미 다 컸는데도 집이 큰 걸 보니 이번 집은 정말 큰 것 같았다. 역시 담장이 높았지만 의외로 대문이 열려 있었고 문패 옆엔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문을 빼꼼 열고 들어가니 파란 잔디밭이 붙은 현관이 있었고 집 안에는 도서관 직원인 중년 여성 두 분이 계셨다.
“안녕하세요?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진짜 도서관이에요?”
“네. 여기는 서울 성북구와 종로구 주민들을 위한 마을 도서관입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거실 책꽂이엔 어린이 그림책부터 세계명작소설, 우리나라 소설들이 빼곡했다. “와. 이건 오래전에 절판된 책인데! 다신 못 볼 줄 알았어”하고 출판기획자인 아내가 반가워했다. 이렇게 좋은 집을 도서관으로 내놓은 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어느 철강그룹 회장님이 살던 곳인데 아들이 물려받으면서 도서관으로 개조했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아들은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직원들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답 대신 종로구와 성북구 거주자라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는 환호작약하며 회원 가입 원서를 작성하고 직원분이 회원증을 만드는 동안 2층으로 올라가 다른 책들을 구경했다. 회원증을 받고 책을 한 권 빌리면서(다른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반납한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빌렸다) 혹시 책 기증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깨끗한 책을 가져오면 내부에서 판단해 받거나 다른 곳에 기증한다고 했다. 아내가 “우리가 쓴 책도 기증하자”라고 내게 말하는 걸 듣고 직원분이 “작가님들이시구나”라고 하자 아내가 “작가는 아니고요…”라며 말끝을 흐렸고 나는 “아니, 책을 냈으면 작가지. 무슨 소리야”라며 속없이 그녀 편을 들었다.
빌린 책을 들고 나오며 다시 한번 도서관을 바라봤다. 어렸을 때 들었던 거인이 사는 신비한 저택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내놓은 어느 철강그룹 회장님은 이미 내겐 그 어떤 거인보다 위대한 인물이었다. 아울러 좋은 동네에 산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도서관이 궁금한 분들은 대학로에서 성북동 쪽으로 걸어오다가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을 찾으시라. 바로 그 옆에 있으니까.


편성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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